2026年04月05日 復活節主日礼拝 式順・説教
2026年4月5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ヨハネ(요한복음) 11章 25~26節
〇讃 頌 讃頌歌 159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133(復活節② )
〇讃 頌 讃頌歌 160
〇聖書奉読 ヨハネによる福音書 (누가복음)
20章 1~18節
〇讃 揚
○説 教 「振り向いて生きる
(사랑의 시선 가운데서)」
〇祈 祷
〇聖 礼 典 聖餐式
○讃 頌 讃頌歌 161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164(1・4節)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6年 4月 5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振り向いて生きる」
ヨハネによる福音書 20章 1~18節
イースター、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ヨハネによる福音書において、復活されたイエスさまと最初に出会ったのは、マグダラのマリアであることが証言されています。
マリアはガリラヤからずっとイエスさまに仕え、共に旅をして来ました。彼女はもともと、七つの悪霊に取り憑かれ、人々から見放された人でした。それがイエスさまの力によってその悪霊が追い出され、イエスさまに従う様になりました。マリアはイエスさまと共に、互いに愛しあうことを伝える活動をしていて、他の弟子たちが逃げ惑う中、最後まで裏切らず、逃げずに従ったのです。そして、イエスさまの十字架を最後まで見届けました。福音書のすべてに、マリアが見届けたとあります。
しかし一方で、それはマリアにとって、大きな心の負担になったはずです。マリアは残酷な十字架を見なければいけませんでした。マリアはイエスさまの無残な死に方を直接見てしまいました。痛み、苦しみ、渇き、流れる血、その姿をすべて見て、受け取ってしまったのです。きっとマリアはそれに強い衝撃を受け、それはトラウマになったはずです。彼女はそのようにイエスさまの最も近い弟子であり、十字架の姿を見てしまった一人でした。きっとイエスさまの死は、マリアにとって他のどの弟子よりも衝撃的で、悲しみの深いものだったでしょう。
マリアはイエスさまの死を受け入れられません。彼女は日曜日の朝、まだ暗いうちにイエスさまの墓に行きました。しかし、彼女は墓で、イエスさまの遺体がないことに気づきます。彼女は遺体がどこに置いてあるのかわからないと混乱しました。
彼女は深い悲しみの中で何とか死を受け入れようとしておりました。イエスさまの遺体に触れ、最後の別れをしたいと思っていたのです。それなのに、イエスさまの遺体がありません。また死を受け入れることができなくなってしまいました。
「わたしの主が取り去られました。どこに置かれているのか、わたしたちにはわかりません。」(13節)
それは彼女の気持ちをよく表しています。もう、分からない。彼女は自分の悲しみをどこに置いたらよいのか、わからなくなってしまったのです。彼女はどのように悲しんだら良いか、どのように心の整理を付けたらよいかわからなくなってしまったのです。11節に「マリアは墓の外に立って泣いていた」とあります。これは彼女の感情をよく示しています。どのように受け止めたらよいかわからず、立ち尽くし泣いたのです。
深い悲しみの中、涙のとまらないマリア、そのマリアにイエスさまは一番最初に現れました。神さまはこのように悲しむ者のもとに現れるのです。悲しみを受け入れた先に神さまが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深い悲しみの底に、もっとも悲しみの深い最中に神さまは現れてくださるのです。
イエスさまはそっと現れました。14節にマリアが「後ろを振り向くと、イエスの立っておられるのが見えた」とあります。いつからそこにいたのかわかりません。でもイエスさまはきっと、ずっと涙する者のそばにいました。悲しむ者と共にいました。それまでマリアは後ろに誰かがいることに気づいていませんでした。しかしイエスさまはずっとそばにいました。一番悲しみの深い人と共に、イエスさまはいました。
イエスさまはなぜ泣くのかと聞きます。きっとそれは、もう泣かなくていいという声です。私がずっと一緒にいるのだから、泣く必要はないという意味の言葉です。
でも、マリアはそれがイエスさまだとは分かりませんでした。まだ彼女はイエスさまが共にいることに気づいていません。彼女がそれに気づいたのは、イエスさまが「マリア」と彼女の名前を呼びかけた時でした。イエスさまに自分の名前を呼ばれて、それがイエスさまだと気づいたのです。それはまるで羊と羊飼いの様です。羊が自分の羊飼いの声を聞きわけるように、マリアはイエス様の声を聞き分かることができました。そしてイエスさまは羊飼いの様です。1匹の迷った羊飼いを探すように、マリアの元に現れたのです。
そして、イエスさまはマリアにこう告げました。17節「わたしにすがりつくのはよしなさい。まだ父のもとへ上っていないのだから。わたしの兄弟たちのところへ行って、こう言いなさい。『わたしの父であり、あなたがたの父である方、また、わたしの神であり、あなたがたの神である方のところへわたしは上る』と。」(17節)
このイエスさまの言葉は、マリアを突き放しているように思えます。でも、そのようにしてマリアは立ち上げられて行きます。イエスさまはそのように、マリアをもう一度仲間たちの元に派遣して行くのです。そして、彼女から全世界へと復活が伝えられていったのです。
皆さん、復活の主が最初になさったことは、この悲しむ者と共にいてくださったということなのです。そして、復活の主は悲しむ者にとっては一見わからないような形で、すぐ後ろに、共にいて下さるお方なのです。そして、主は迷った羊を探す羊飼いのように、悲しむ者に声をかけてくださいます。名前を呼んでくださいます。
「一緒にいるよ、だから立ち上がって、前に進もう」と言ってくださるのです。そして、もう一度私たちを仲間のもとに派遣します。
私たちはイエスさまの復活を伝える、イエスさまが悲しむ者といつも共にいることを伝える、その愛を伝えるために、派遣されてゆくのです。
復活とは、人間の死が無くな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その悲しみの中にイエスさまが共にいて下さったということなのです。悲しみの中に主が共にいて下さることが、主が復活されたということなのです。
私たちの人生でも、きっとそのようなことが主の復活が起こるはずです。私たちの人生には悲しみの時、苦しい時、神さまに見放されたような出来事に出会う時があります。なかなか立ち直れないかもしれません。でも、イエスさまは復活し、私たちが悲しむ時に私たちと共にいて下さいます。イエスさまは悲しむ人の後ろにそっと復活して下さいます。
振り返ると、すぐそこに復活した主が私たちと共にいて下さいます。私たちは今日、そのことを覚えたいと思います。そして、悲しみと出会う時、振り返るようにしましょう。イエスさまは復活し、私たちと共にいて下さいます。だから泣く必要はない、前を向いて歩こうと、そのように私たちを新たなところへと派遣し、幸いへと向けて導いてくださいます。
【2026년 4월 5일 주일예배(요약판)】
“돌이켜 살아가기”
요한복음 20장 1~18
부활절을 축하드립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였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갈릴리에서부터 줄곧 예수님을 섬기며 함께 길을 걸어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원래 일곱 귀신에 사로잡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던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능력으로 그 귀신들이 쫓겨나고, 이후로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과 함께 서로 사랑하라는 소식을 전하는 사역에 참여하였고, 다른 제자들이 도망칠 때에도 끝까지 배신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끝까지 지켜본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복음서가 이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리아에게 큰 마음의 짐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그 잔혹한 십자가를 직접 보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참혹한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했습니다. 고통과 괴로움, 갈증, 흘러내리는 피—그 모든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분명 그것은 마리아에게 큰 충격이 되었고, 깊은 상처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제자 중 한 사람이었고, 그 십자가의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죽음은 다른 어떤 제자보다도 더 큰 충격과 깊은 슬픔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주일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그녀는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신이 없는 것을 발견합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알 수 없어 혼란에 빠집니다.
그녀는 깊은 슬픔 속에서 어떻게든 죽음을 받아들이려 했습니다. 시신에 손을 대며 마지막 작별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신이 없습니다. 다시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3절)
이 말은 그녀의 마음을 잘 드러냅니다. 이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의 슬픔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조차 알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슬퍼해야 할지, 어떻게 마음을 정리해야 할지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11절에는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그녀의 상태를 잘 보여줍니다. 받아들일 수 없어 그저 서서 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깊은 슬픔 속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가장 먼저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슬퍼하는 자에게 찾아오십니다. 슬픔을 다 극복한 뒤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깊은 슬픔의 한가운데, 바로 그때 하나님은 나타나십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나타나셨습니다. 14절에 마리아가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라고 되어 있습니다. 언제부터 그곳에 계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 눈물 흘리는 자 곁에 계속 계셨을 것입니다. 슬퍼하는 자와 함께 계셨습니다. 마리아는 뒤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늘 그 곁에 계셨습니다. 가장 깊이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우느냐고 물으십니다. 그것은 이제 울지 않아도 된다는 부르심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더 이상 울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분이 예수님인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직 함께 계심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녀가 그것을 깨달은 것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이름을 부르셨을 때였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 비로소 예수님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는 마치 양과 목자의 관계와 같습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듯이, 마리아는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들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는 목자처럼 마리아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17절)
이 말씀은 마치 마리아를 밀어내는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말씀을 통해 마리아는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다시 공동체로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온 세상에 부활의 소식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슬퍼하는 자와 함께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은 슬퍼하는 이에게는 쉽게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바로 등 뒤에서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길 잃은 양을 찾는 목자처럼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의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그러니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자.” 이렇게 말씀하시며 우리를 다시 공동체로, 세상으로 파송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자, 슬퍼하는 자와 늘 함께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자로 부름받았습니다.
부활이란 인간에게서 죽음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슬픔 속에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그 사실이 주님의 부활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그런 순간이 반드시 있습니다. 슬픔과 고통의 때,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쉽게 일어설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우리가 슬퍼할 때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등 뒤에 조용히 서 계십니다.
돌이켜 보면, 바로 그 자리에 부활하신 주님이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그 사실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슬픔을 만날 때, 한 번 뒤를 돌아보십시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울 필요가 없습니다. 앞을 향해 걸어갑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자리로 보내시며, 참된 행복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