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年03月29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6年3月29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ヨハネ(요한복음) 21章 17節
〇讃 頌 讃頌歌 27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129(棕櫚の主日 )
〇讃 頌 讃頌歌 144
〇聖書奉読 ルカによる福音書 (누가복음)
22章 54~62節
〇説 教 「愛のまなざしの中で
(사랑의 시선 가운데서)」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146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1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6年 3月 29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愛の眼差しの中で」
ルカによる福音書 22章 54~62節
イエスさまが捕らえられた後、弟子たちは逃げ出してしまいました。それでも、ペトロはイエスさまのことが心配で、遠くから見守っていたようです。聖書にはそのペトロの行動を「遠く離れて従った」と表現しています。「遠く離れて従う」、ペトロは逃げ出してしまいました。それでも「従う」と表現されています。
ペトロはどこまでもイエスさまに従って行きたかったのです。でも、怖い。遠く離れて見守るしか出来ませんでした。しかし、それさえも許してもらえないような試練がペトロを襲います。
55節です。「人々が屋敷の中庭の中央に火をたいて、一緒に座っていたので、ペトロも中に混じって腰を下ろした。するとある女中が、ペトロがたき火に照らされて座っているのを目にして、じっと見つめ、『この人も一緒にいました』と言った。」(55-56節)
ペトロはすぐに「わたしはあの人を知らない」と言って、女中の言葉を打ち消しました。
でも、他の人も「お前もあの連中の仲間だ」(58節)と言います。ペトロは慌てて「いや、そうではない」と否認します。
それから、一時間ほど経って、また別の人が、「確かにこの人も一緒だった。ガリラヤの者だから」(59節)と言い張ります。ペトロは、「あなたの言うことは分からない」と言って、これもまた否認します。ペトロはこうして三度イエスさまとの関係を否認するわけですが、その時、突然鶏が鳴きました。
鶏の鳴き声を聞いたとき、ペトロはイエスさまが「今日、鶏が鳴く前に、あなたは三度わたしを知らないと言うだろう」と言われた主の言葉を思い出しました。
その主の言葉は、マタイによる福音書22章31~34節でイエスさまがペトロに語られた言葉でした。「『シモン、シモン、サタンはあなたがたを、小麦のようにふるいにかけることを神に願って聞き入れられた。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のために、信仰が無くならないように祈った。だから、あなたは立ち直ったら、兄弟たちを力づけてやりなさい。』するとシモンは、『主よ、御一緒になら、牢に入っても死んでもよいと覚悟しております』と言った。イエスは言われた。『ペトロ、言っておくが、あなたは今日、鶏が鳴くまでに、三度わたしを知らないと言うだろう。』」(22:31-34)
イエスさまは最後の晩餐の席上で、ペトロが試みに遭うことを予告されました。しかし、ペトロは「主よ、御一緒になら、牢に入っても死んでもよいと覚悟しております」と反論しました。ペトロは「どんなことがあっても、イエスさまから離れません。私はあなたと一緒に死んでもかまいません」と言ったのです。ペトロのこの強い決意、熱い思いは嘘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ペトロは自分の心に誓っていたし、そう出来ると信じていました。
しかし、イエスさまが捉えられた時、ペトロは強い恐れを抱き、三度もイエスさまのことを知らないと言ってしまったのです。まさにイエスさまの言われる通りでした。ペトロは自分を過信していました。自分は出来る、自分は強い、と。
そんなペトロをイエスさまは見つめておられました。ペトロは鶏が鳴いた時に我に返り、イエスさまの言葉を思い出して、激しく泣きました。恐らくペトロはこんなに激しく泣いたことはなかったでしょう。この涙はペトロにとって、自分に対する失望とイエスさまとの関係が途切れたことに対する絶望の涙でした。本来ならもう立ち上がることの出来ない深い挫折の涙でした。
しかし、イエスさまはペトロがそうなることをご存じでした。61節に「主は振り向いてペトロを見つめられた」とあります。この言葉は、ルカによる福音書にしかない言葉です。ルカによる福音書はこの主の眼差しを敢えて強調しています。ペトロはこの後、復活の主との出会いを通して、再び主の弟子として、そして使徒として歩んで行きますが、ペトロが立ち直ることが出来た最大の理由がこの主の眼差しにあったのです。この主の眼差し、深い憐れみがペトロ再び立ち上がらせました。
ペトロは鶏が鳴いた時に、「三度わたしを知らないと言うだろう」という言葉と共に、「わたしはあなたのために、信仰がなくならないように祈った。だから、あなたが立ち直ったら、兄弟たちを力づけてやりなさい」という言葉も思い出したでしょう。
イエスさまはペトロの弱さを決して否定されません。人はいざと言う時、愛する人さえも容易に裏切る罪深い人間です。イエスさまは全てご存じでした。イエスさまはこの弱さを認めることによって、人は強い人間になれるとペトロに教えられているのです。
「わたしはあなたのために、信仰が無くならないように祈った。」(22:32)
私たちの弱さ、罪深さを、イエスさまは全てご存じです。イエスさまが私たちの全てをご存知であるからこそ、私たちは嘘をつくことも、自分を良く見せることも必要ありません。私たちは罪あるままで赦されたのですから、自分を正当化する必要はないし、全てを無かったことのように忘れ去る必要もありません。何よりも、私たちがイエスさまを捨ててもイエスさまは私たちを捨てられません。
これがイエスさまの愛の眼差しであり、この愛の眼差しがペトロに深い悔い改めと、そこから再び立ち上がり、主と共に歩むことを求めたのです。
なぜ、聖書にはペトロがイエスさまを三度否認したことを、こんなに詳しく記しているのかと言いますと、ペトロが他の弟子たちに、自分の失敗を何度も語ったからです。「私はイエスさまを傷つけた。失望させた。それでもなおイエスさまは私を愛し、赦して下さった。イエスさまはあなた方も同じ様に赦してくださる」と。
人は弱く、過ちを犯します。しかし、神さまはその過ちを責められません。自分が弱いことを認め、その弱さをも神さまが受け入れてくださる事を知る時に、人は挫折から立ち直ることが出来るのです。
「だから、あなたは立ち直ったら、兄弟たちを力づけてやりなさい。」(22:32)
祈られている恵み、喜び。愛されている恵み、喜び。赦されている恵み、喜び。それが私たちを立ち直らせるのです。そして、立ち直らされた人は、今度は誰かを立ち直らせるのです。私たちもペトロのように弱さを覚える者ですが、イエスさまの祈り、愛、赦しに生かされていることを覚えたいと思います。私たちも祈り、愛、赦しに生きる者でありたいと願います。
【2026년 3월 29일 주일예배(요약판)】
“사랑의 시선 가운데서”
누가복음 22장 54~62절
예수님께서 붙잡히신 후, 제자들은 모두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이 걱정되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경은 그 베드로의 행동을 “멀찍이 따라갔다”고 표현합니다. “멀찍이 따라간다”, 베드로는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따랐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웠습니다.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것과 같은 시험이 베드로에게 닥쳐옵니다.
55절입니다.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55-56절)
베드로는 곧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고 하며 여종의 말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너도 그 도당이라”(58절)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당황하여 “아니다” 라고 부인합니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나 또 다른 사람이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이 사람도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59절)고 주장합니다. 베드로는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하며 이것도 부인합니다. 이렇게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인하게 되는데, 그때 갑자기 닭이 울었습니다.
닭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라고 하신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그 말씀은 누가복음 22장 31~34절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하시니 그가 말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22:31-34)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베드로가 시험을 당할 것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도, 죽는 데에도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베드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함께 죽어도 좋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 결심과 뜨거운 마음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 베드로는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과신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할 수 있다고, 자신은 강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베드로를 예수님께서는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를 듣고 정신이 들어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통곡했습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그렇게까지 울어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 눈물은 자신에 대한 실망과 예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절망의 눈물이었습니다. 본래라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좌절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베드로가 그렇게 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61절에는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표현입니다. 누가복음은 주님의 이 시선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다시 제자로서, 사도로서 살아가게 되는데,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주님의 시선 때문이었습니다. 이 주님의 시선, 깊은 긍휼이 베드로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베드로는 닭이 울었을 때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라는 말씀과 함께 “내가 너를 위하여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였다. 그러니 돌이킨 후에는 형제들을 굳게 하라”는 말씀도 함께 떠올렸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약함을 결코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조차도 쉽게 배신하는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 약함을 인정할 때 사람이 참으로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베드로에게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다”(22:32)
우리의 연약함과 죄됨을 예수님께서는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거짓으로 자신을 꾸밀 필요도, 더 나은 사람인 척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죄인 된 모습 그대로 용서받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정당화할 필요도 없고, 모든 것을 없었던 일처럼 지워버릴 필요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예수님을 버릴지라도, 예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의 시선입니다. 이 사랑의 시선이 베드로로 하여금 깊은 회개로 나아가게 했고, 다시 일어나 주님과 함께 걷게 했습니다.
왜 성경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사건을 이렇게 자세히 기록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베드로 자신이 다른 제자들에게 자신의 실패를 반복해서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아프게 했다. 실망시켰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용서해 주셨다. 예수님은 여러분도 같은 방식으로 용서하신다.”
사람은 약하고, 실수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실수를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그 약함조차 하나님께서 받아주신다는 것을 알 때, 사람은 좌절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2)
기도받고 있다는 은혜와 기쁨, 사랑받고 있다는 은혜와 기쁨, 용서받았다는 은혜와 기쁨이 우리를 다시 일어나게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일어선 사람은 이제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연약한 존재이지만, 예수님의 기도와 사랑과 용서로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기도하며, 사랑하며, 용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