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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年05月03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6年5月3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ガラテヤ(갈라디아서) 3章 26~28節
〇讃    頌    讃頌歌 32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20 (詩編 33編 )
〇讃    頌    讃頌歌 533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 (마태복음)
                    22章 1~14節
〇説   教    「天の御国への招待
         (천국으로의 초대)」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279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1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6年 5月 3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天の御国への招待」
                    マタイによる福音書 22章 1~14節


 イエスさまが神殿で祭司長や長老たちに語られた「結婚披露宴の譬え」は、天の御国への招待について語っておられるものです。
 では、「結婚披露宴の譬え」を詳しく見ていこうと思いますが、この譬えは五つの場面に分けることができます。


 第一の場面(2~4節)は、結婚披露宴への二度の招待です。一度目は、宴会を催すことを知らせ、二度目は宴会の準備が整った後、宴会の開始時間を知らせるものでした。この譬えでは、王子の結婚披露宴ですから、時間に遅れることなど許されません。ところが招待された者たちは、時間に遅れることを心配するどころか、行くこと自体を渋っています。


 それから第二の場面(5~6節)は、王の招待に対する完全な拒絶です。王は来たがらない招待者たちのために、「さあ、婚宴においでください」(4節)と、へりくだって別の家来たちを遣わしました。家来たちは「牛や肥えた家畜も屠って」と最高のもてなしをすることを告げ、彼らの出足を促そうとしました。
 ところが、彼らは王に対して全く失礼な態度を取ります。彼らにとって、王の招待など興味がありません。王のことも王子のことも全く関心がないのです。彼らは王と王子に対し、全く無関心でした。彼らの関心事は世俗のことしかなく、儲けること、お金のことだけです。王に対し、無礼を働いたという意識もありません。


 そして、無関心よりももっと悪い人たちが登場しています。王の家来たちを捕まえて乱暴し、殺してしまったのです。
 王は何度も家来を遣わして、心暖かく忍耐をもって祝宴に招いています。神さまも同じように私たちを愛と忍耐とをもって天の御国に招いておられるのです。しかし、イスラエルの指導者たちは、神さまの招きに応えるどころか、無関心または敵対心を露わにしました。


 彼らの無関心と敵対心は、王に対する反逆行為です。当然、王は怒って、軍隊を送り、彼らは滅ぼされ、町も焼き払われました。それが第三の場面(7~8節)です。


 こうして、天の御国への招待は、最初に招待された人々、すなわち神さまの招きに自分たちは相応しいと自負し、神さまの招き自体を軽んじていたユダヤ人たちから、神さまの招きは違う人々へと移されることになります。それが第四の場面(9~10節)です。
 王は家来たちに命じます。「町の大通りに出て、見かけた者はだれでも婚宴に連れて来なさい。」(9節)
 そこで家来たちは「通りに出て、見かけた人は善人も悪人も皆集めて」来ました。そのため婚宴は客で一杯になったと言います。王子の婚宴は、本来招かれる筈も無い多くの人々によって満席となりました。王子の婚宴、すなわち天の御国には、実に気前よくどんな人でも招かれるのです。
 ここで、言わんとしていることは、今や、神さまは全世界の人々を天の御国に招いておられるということです。どの国の人であっても、どの民族に属していても、どの階層であっても、誰でもキリストを信じる信仰によって神の民とされる。天の御国の祝福に与ることができると言うことです。


 そして、最後の第五の場面(11~13節)は、王子の婚宴に新たに招かれた客で一杯になったのですが、その中に婚礼の礼服を着ていない人がいて、その人は「外の暗闇」に放り出されてしまうというものです。
 これはどういうことでしょうか。ちょっと不思議に思います。なぜなら、通りにいる人をそのまま婚宴の席に招いたわけですから、礼服に着替える余裕もなかったかも知れませんし、そもそも礼服を持っていないのかも知れません。そして、通りにいる全ての人、善人も悪人も関係なく、招くような心の広い王が、礼服を着ていないことを咎め、外に放り出すなんて、少しおかしな気がするからです。


 ただ問題は、通りにいて婚宴に招かれた人は、この人以外全員、婚礼の服を着ていたようです。そうすると、この婚礼の服は婚宴に参席する全員に支給されたと考えられます。しかし、この一人の人は、その婚礼の礼服を着ることを拒んだということですね。
 それは12節の彼の沈黙からも分かります。彼は婚礼の礼服を着て出席できたのに、敢えて着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す。彼は王子の婚礼に、王が用意した服ではなく、自分の好きな恰好で出ようとしました。王の条件ではなくて、自分の好き勝手な条件で婚礼に出席したのです。


 そのため彼は、「王の側近の者たち」によって、「外の暗闇」に放り出されました。先に招かれたユダヤ人たちは「ふさわしくない」と言われて退けられました。けれども、後で招かれた者たちであっても「礼服を着ないで婚礼に来た」者たちはふさわしくないとされて退けられます。ユダヤ人に起こったことが、キリスト教会にも同じように当てはまる、ということです。


 では、ここで言われている「婚礼の礼服」とは、一体何でしょうか。それは「信仰の実」と言うことです。イエスさまは先に21章43節で「神の国はあなたたちから取り上げられ、それにふさわしい実を結ぶ民族に与えられる」と言われました。つまり、この「礼服」は、信仰にふさわしい実りということです。


 神さまは「ふわさしい実を結ぶ」人々をキリストのもとに呼び集めます。心から罪を悔い改めて、キリストの言葉に導かれて生きる、新しい人々です。
 ある人たちは、神さまはあわれみ深い方だから、誰でも天の御国に救い入れてくれるだろうと主張します。確かに神さまは、すべての国のすべての人を天の御国に招いてくださるお方です。けれども、天の御国に入るには、すなわち、救われるには、条件があるのです。その条件とは、ただ二つです。それは、罪の悔い改めと、イエス・キリストを罪からの救い主として信じます、という信仰です。


 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ことが不可欠な理由は、天の御国はキリストが治める国であるということともに、罪の問題が解決されないまま、天の御国に入ることは不可能だからです。
 まず、私たちは主の十字架の前で自分自身の罪を悔い改め、その罪を完全に贖うためにキリストが十字架に命をささげられたことを心から感謝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して、主イエス・キリストに従う者にな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れが「婚礼の礼服」を着るということであり、神さまからの招待に正しく応答することなのです。


 皆さん、天の御国への招待は、これ以上ないという招待です。これを拒む理由はないはずです。お祝い金もいりません。天の御国に入るための必要な代価はすべて、イエス・キリストが十字架の上で支払ってくださいました。私たちはただ、悔い改めと信仰とをもって、天の御国の祝宴に与ればいいのです。


【2026년 5월 3일 주일예배(요약판)】

     “천국으로의 초대” 
                            마태복음 22장 1~14절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말씀하신 “혼인 잔치의 비유”는 천국으로의 초대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제 이 비유를 자세히 살펴보면, 크게 다섯 장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장면(2~4절)은 혼인 잔치에 대한 두 번의 초대입니다. 
  첫 번째는 잔치가 열릴 것을 알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모든 준비가 끝난 후 시작 시간을 알리는 초대입니다. 왕자의 혼인 잔치이기 때문에 시간에 늦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초대받은 사람들은 늦을까 염려하기는커녕, 아예 가는 것 자체를 꺼리고 있습니다.


  두 번째 장면(5~6절)은 왕의 초대에 대한 완전한 거절입니다.
  왕은 오기를 꺼리는 사람들을 위해 다시 한 번 “혼인 잔치에 오십시오”(4절)라고 낮아진 태도로 다른 종들을 보냅니다. 종들은 “소와 살진 짐승을 잡았다”고 하며 최고의 대접이 준비되어 있음을 알리고, 그들의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왕에게 매우 무례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들에게 왕의 초대는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왕과 왕자에게도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세상적인 것, 곧 이익과 돈뿐입니다. 왕에게 무례를 범했다는 의식조차 없습니다.


  더 나아가, 무관심보다 더 악한 사람들도 등장합니다. 그들은 왕의 종들을 붙잡아 학대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합니다.
  왕은 여러 번 종들을 보내며 따뜻한 마음과 인내로 잔치에 초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와 같이 사랑과 인내로 우리를 천국으로 초대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그 초대에 응답하기는커녕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냈습니다.


  그들의 무관심과 적대감은 곧 왕에 대한 반역입니다. 결국 왕은 진노하여 군대를 보내 그들을 멸하고, 그들의 도시까지 불태워 버립니다. 이것이 세 번째 장면(7~8절)입니다.


  이렇게 해서 천국으로의 초대는 처음 초대받았던 사람들, 즉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여기며 하나님의 초대를 가볍게 여겼던 유대인들에게서 다른 사람들에게로 옮겨지게 됩니다. 이것이 네 번째 장면(9~10절)입니다.


  왕은 종들에게 명령합니다.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하라.”(9절)
  그래서 종들은 길에 나가 만나는 사람들을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모두 데려왔고, 그 결과 잔치는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왕자의 혼인 잔치, 곧 천국은 원래 초대받을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천국은 누구에게나 아낌없이 열려 있는 자리입니다.
  여기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천국으로 초대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어떤 민족이든, 어떤 계층이든 상관없이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으며, 천국의 축복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장면(11~13절)은 조금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잔치 자리는 새로 초대된 사람들로 가득 찼지만, 그 중에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었고, 그는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길에서 그대로 데려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복으로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을 수도 있고, 애초에 예복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을 넓은 마음으로 초대한 왕이 예복을 입지 않았다고 내쫓는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예복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잔치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예복이 제공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만 그 예복 입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그 사실은 12절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는 예복을 입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입지 않았습니다. 왕이 준비한 옷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대로 잔치에 참여하려 했던 것입니다. 즉, 왕의 조건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의 조건으로 잔치에 참여하려 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왕의 명령에 따라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납니다. 먼저 초대받았던 유대인들은 “합당하지 않다” 하여 거절되었고, 나중에 초대받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역시 합당하지 않다고 여겨져 쫓겨났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에게 일어난 일이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혼인 예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믿음의 열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21장 43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 예복은 믿음에 합당한 삶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부르십니다.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새로운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비로우시기 때문에 누구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천국으로 초대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곧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분명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은 단 두 가지입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구주로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천국이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일 뿐만 아니라,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는 결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죄를 완전히 속죄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주셨음을 마음 깊이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혼인 예복을 입는다”는 의미이며, 하나님의 초대에 올바르게 응답하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천국으로의 초대는 이보다 더 귀한 초대가 없습니다. 이 초대를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축의금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대가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치르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회개와 믿음으로 이 천국의 잔치에 참여하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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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日:2026年05月03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