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年04月12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6年4月12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詩編(시편) 19章 2(1)~5(4)節
〇讃 頌 讃頌歌 28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14(詩編24編 )
〇讃 頌 讃頌歌 538
〇聖書奉読 ルカによる福音書 (누가복음)
24章 13~35節
〇説 教 「新しい信仰の世界へ
(새로운 신앙의 세계로)」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481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1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6年 4月 12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新たな信仰の世界へ」
ルカによる福音書 24章 13〜35節
復活の主は、私たちと共におられるのに、私たちはそれに気付かないのです。弟子たちもそうでした。今日の聖書箇所にも、復活の主が共におられるのに、それに気付かない二人の弟子が登場します。
エマオ途上の二人、ひとりはクレオパという名前で、もうひとりの名は記されていません。この二人は、失望の中でエマオへと向かっておりました。彼らもイエスさまの十字架の苦難を目の当たりにして、信仰に生きる意味を完全に見失っていました。
19~24節に、彼らが語った言葉が記されていますが、ここには、彼らの信仰とその時の彼らの心情がよく表れています。
「ナザレのイエスのことです。この方は、神と民全体の前で、行いにも言葉にも力のある預言者でした。それなのに、わたしたちの祭司長たちや議員たちは、死刑にするため引き渡して、十字架につけてしまったのです。わたしたちは、あの方こそイスラエルを解放してくださると望みをかけていました。しかも、そのことがあってから、もう今日で三日目になります。ところが、仲間の婦人たちがわたしたちを驚かせました。婦人たちは朝早く墓へ行きましたが、遺体を見つけずに戻ってきました。そして、天使たちが現れ、『イエスは生きておられる』と告げたと言うのです。仲間の者が何人か墓へ行ったのですが、婦人たちが言ったとおりで、あの方は見当たりませんでした。」(19-24節)
この二人の弟子たちは、イエスさまの遺体がなくなっており、天使が「イエスは生きておられる」と告げたという知らせを聞いても、イエスさまが復活されたことが信じられません。
彼らには、メシアが死ぬなんて、考えられませんでした。ナザレのイエスは自分たちが期待したメシアではなかった。これが彼らの結論でした。決して、イエスさまの十字架が自分たちの罪を赦すために主ご自身が担ってくださったなどとは想像もしておりません。
これに対し、復活の主は、「ああ、物分かりが悪く、心が鈍く預言者たちの言ったことすべてを信じられない者たち」(25節)と彼らに語りかけ、聖書の言葉をもう一度読み聞かせて、彼らを、無知から解放されたのです。
神の御子イエス・キリストが十字架にかけられ、死ななければならないほど、人間の罪はあまりにも深いものです。また、罪は聖書を正しく理解することを妨げ、神さまが支配される世界への視線を遮ってしまうのです。しかし、復活によって死の支配は終わりを告げました。イエス・キリストの復活は神さまの輝かしい勝利です。主イエスさまは、苦しみを受けられた主であると同時に、栄光に満ちた主でもあります。この復活という出来事こそ、聖書の言葉が真実であることを神さまが自ら証明された確かな証拠なのです。
この二人は、この聖書の証言を信じなかったのですが、聖書の証言を信じない者は、人間の証言も信じられません。婦人たち、仲間の者、何人かが復活の証言をしました。複数の者たちが証言しているのに、信じられないのです。そこでは神さまの言葉、聖書の証言についての思考も停まっており、不信仰へと繋がっています。
彼らはもう現実から目を背けるしかありません。現実逃避です。それがエマオへ向かった動機なのです。ゆえに、彼らは復活の恵みと喜びに満たされ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不信仰ゆえの逃避は、彼らの心に深い悲しみと不安をもたらしました。本来ならば歓喜に満たされているはずの現実を、直視できなくさせてしまったのです。
すべてが終わったと思ってエルサレムを離れたクレオパたちに復活の主は現れました。復活の主は、彼らが正しい方向に歩んでいるときではなく、背を向けて去っていくときに現れたのです。
29節からです。「二人が、『一緒にお泊まりください。そろそろ夕方になりますし、もう日も傾いていますから』と言って、無理に引き止めたので、イエスは共に泊まるため家に入られた。一緒に食事の席に着いたとき、イエスはパンを取り、賛美の祈りを唱え、パンを裂いてお渡しになった。すると、二人の目が開け、イエスだと分かったが、その姿は見えなくなった。二人は、『道で話しておられるとき、また聖書を説明してくださったとき、わたしたちの心は燃えていたではないか』と語り合った。そして、時を移さず出発して、エルサレムに戻ってみると、十一人とその仲間が集まって、本当に主は復活して、シモンに現れたと言っていた。二人も、道で起こったことや、パンを裂いてくださったときにイエスだと分かった次第を話した。」(29-35節)
これこそ、神さまが人間の絶望や迷いの中に、真っ先に飛び込んでこられる存在であることの証ではないでしょうか。復活の主は、その姿を通して、絶望の淵にある私たちと「共に歩む神」であることを示されたのです。
このとき、人間は新たな信仰の世界へと招き入れられます。それは、「人生のどん底にあっても、気づかないうちに隣を共に歩いてくれる存在が必ずいる」ということです。復活の主は、私たちがその大いなる愛に気づくようにと、優しく導いてくださるのです。
主の復活は、私たちを新たな信仰の世界へと導きます。それは聖書を正しく理解することから始まりました。さらに、パンを裂くこと、すなわち聖餐による交わりによって彼らの目は開かれ、イエス・キリストを正しく認識するに至ったのです。
そして、それは、「わたしたちの心は燃えていたではないか」と、胸が熱くなるような魂の震えが伴います。この霊的な体験が、信じることができない者を信じる者へと変え、失望から希望と喜びへと変わる体験となるのです。
エルサレムへ戻った二人の弟子を待っていたのは、同じように復活の主に出会った弟子たちの喜びの声でした。彼らはもはや、疑いの中に閉じこもる孤独な存在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復活という一つの事実によって結ばれた、新しい神の家族、キリストの体となったのです。
私たちは今日、このエマオの途上の弟子たちの中に、自分自身の姿を見出すことができます。ある時は、自分の思い描いた理想が崩れ、失望して留まるべき場所であるエルサレムを後にするかもしれません。ある時は、聖書の約束を頭では理解していても、心が追いつかず、不信仰に陥る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主は私たちが正しい道を歩んでいる時だけでなく、むしろ絶望して背を向け、去っていくその背中に、静かに歩み寄ってくださいます。
皆さん、復活の主は、今も私たちの隣におられます。私たちが気づいていないだけです。神さまは、私たちが御言葉に耳を傾けるとき、私たちの冷え切った心を熱く燃やしてくださいます。キリストを死から蘇らせた神さまは、私たちがパンを裂き、共に主を仰ぐとき、私たちの閉ざされた目を開いてくださいます。「エマオ」は、「逃避の場所」から、「出発の場所」、また「新たな使命を受ける場所」へと変えられました。同じように、私たちの「今」、「この場所」も、復活の主との出会いによって、使命の場所へと変えられていきます。主イエスは生きておられます。ゆえに、キリストの復活という事実と、その喜びは、私たちを再び、遣わされたそれぞれの日常へと押し出す力となるのです。
私たちは復活の主と出会い、新たな信仰の世界へと導かれました。今度は私たちが証しする番です。目には見えなくとも、神さまは必ず私たちと共に歩んでくださいます。勇気をもって、復活の主を証しして行きましょう。
主の復活の恵みが、皆さんの歩みの上に豊かにありますよう祈ります。
【2026년 4월 12일 주일예배(요약판)】
“새로운 신앙의 세계로”
누가복음 24장 13〜35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부활의 주님이 함께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두 제자가 등장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 위의 두 사람, 한 사람은 글로바라는 이름이었고 다른 한 사람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두 사람은 깊은 실망 속에서 엠마오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직접 목격하고, 신앙으로 살아가는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19절부터 24절에는 그들이 나눈 말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속에는 그들의 신앙과 당시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자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19-24절)
이 두 제자는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사실과 천사가 “예수님은 살아 계신다”고 전했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메시아가 죽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자신들이 기대했던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자신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친히 짊어지신 것이라는 사실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부활의 주님은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25절)라고 말씀하시며, 성경 말씀을 다시 풀어 설명해 주심으로 그들을 무지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할 만큼 인간의 죄는 매우 깊습니다. 또한 죄는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가리게 합니다. 그러나 부활로 말미암아 죽음의 지배는 끝이 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찬란한 승리입니다. 주님은 고난을 받으신 분이시면서 동시에 영광 가운데 계신 주님이십니다. 이 부활 사건이야말로 성경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친히 증명하신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 두 사람은 이 성경의 증언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증언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인간의 증언도 믿을 수 없습니다. 여인들과 동료들, 여러 사람이 부활을 증언했지만 그들은 믿지 못했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의 증언에 대한 사고가 멈춰 있었고, 그것이 결국 불신앙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결국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현실 도피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엠마오로 향한 이유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부활의 은혜와 기쁨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불신앙에서 비롯된 도피는 그들의 마음에 깊은 슬픔과 불안을 가져왔습니다. 본래라면 기쁨으로 가득해야 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떠났던 글러바와 그 동료에게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올바른 길을 걷고 있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등을 돌리고 떠나가고 있을 때 찾아오셨습니다.
29절부터입니다.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ㅐ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램애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얼려지신 것을 말하더라.”(29-35절)
이 장면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절망과 방황 속으로 가장 먼저 찾아오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부활의 주님은 그 모습을 통해 절망 가운데 있는 우리와 ‘함께 걸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때 인간은 새로운 신앙의 세계로 초대받게 됩니다. 그것은 “인생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도,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곁을 함께 걸어 주시는 분이 반드시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우리가 그 크신 사랑을 깨닫도록 부드럽게 인도해 주십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를 새로운 신앙의 세계로 이끕니다. 그것은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떡을 떼는 것, 곧 성찬의 교제를 통해 그들의 눈이 열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고백합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 영적인 체험이 믿지 못하던 사람을 믿는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절망을 희망과 기쁨으로 바꾸어 줍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두 제자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이미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의 기쁨의 소식이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의심 속에 갇힌 고독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부활이라는 하나의 사실로 하나 된,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 곧 그리스도의 몸이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그려 온 이상이 무너져 실망 가운데 머물러야 할 자리인 예루살렘을 떠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성경의 약속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이 따라가지 못해 불신앙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올바른 길을 걸을 때만이 아니라, 오히려 절망 속에서 등을 돌리고 떠날 때 그 뒤를 따라 조용히 다가오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의 주님은 지금도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식어버린 우리의 마음을 다시 뜨겁게 하십니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떡을 떼며 주님을 바라볼 때 닫힌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십니다. “엠마오”는 더 이상 도피의 장소가 아니라 출발의 장소, 그리고 새로운 사명을 받는 장소로 변화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지금”, “이 자리”도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써 사명의 자리로 바뀌게 됩니다. 주 예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사실과 그 기쁨은 우리를 다시 각자의 삶의 자리로 보내는 힘이 됩니다.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 새로운 신앙의 세계로 인도받았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증언할 차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와 함께 걸어가십니다. 용기를 가지고 부활의 주님을 증언하며 살아갑시다.
주님의 부활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 위에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