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年12月07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5年12月7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申命記(신명기) 7章 7~8節
〇讃 頌 讃頌歌 32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116 (待降節 [2] )
〇讃 頌 讃頌歌 101
〇聖書奉読 ルカによる福音書 (누가복음)
1章 46~56節
〇説 教 「目を留めてくださる神さま
(나를 돌아보시는 하나님)」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397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6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5年 12月 7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目を留めてくださる神さま」
ルカによる福音書 1章 46~56節
今日の聖書箇所は、「マリアの賛歌」と呼ばれるものです。ルカによる福音書の特徴的なことは、クリスマスという出来事の中で、神さまから与えられた「みことば」の確かさだけに信頼して生涯を歩んだ、無力な女性たちの姿が描かれていることです。
マリアは、主の天使から聖霊によって身ごもったことを聞き、戸惑いながらも「わたしは主のはしためです。お言葉どおり、この身に成りますように」(38節)と答えています。
神さまの御業というものは、私たちの思いにおかまいなく、はるかに超えて一方的になされます。選ばれて用いられる人は、人間の業から神さまの業へと歩み始める時、断ち切らなければならない苦しみがあります。捨てなければならない痛みが伴うのです。
それでも、そこには神さまの恵みがある、喜びがあるとマリアは悟ったのです。マリアは、言われたように幸いなことが実現したから讃美をしたのではありません。もしかしたら、婚約者に離縁されるかもしれない。ユダヤの人々に石打ちの刑によって殺されるかもしれない。そんな不安が頭の中によぎります。それでもマリアは、「主がおっしゃったことは必ず実現する」と信じたのです。
マリアはそれを確かめるように、親類のエリザベトを訪ねます。エリザベトは、不妊の女と呼ばれ、すでに年を取っておりました。しかし、祭司である夫ザカリアが主の聖所で祭司の務めをしている時に、主の天使が現れ、妻エリザベトが男の子を産むという知らせを受けます。この男の子が後に洗礼者ヨハネとなるわけですが、ザカリアは天使の言葉が信じられずに、しるしを求めました。すると天使は子どもが生まれるまでザカリアの口を利けなくして、それがザカリアに与えられたしるしでした。一方、エリザベトは「主は今こそ、こうして、わたしに目を留め、人々の間からわたしの恥を取り去ってくださいました」(ルカ1:25)と主の御言葉を受け入れ、信じ、喜びました。
様々な不安要素を抱えながらも、神さまの言葉を受け入れ、信じ、喜んだ二人の女性が、ここで出会うわけですが、エリザベトはこのように証言しています。「あなたの挨拶のお声をわたしが耳にしたとき、胎内の子は喜んでおどりました。」(44節)
エリザベトは自分に与えられた神さまの約束の言葉が、少しずつ前進していることを確信しました。そして、エリザベトはこう讃美しました。「主がおっしゃたことは必ず実現すると信じた方は、なんと幸いでしょう。」(45節)
マリアも、エリサベトから信仰による励ましを受けて、神さまを讃美し始めました。それが46~55節にある「マリアの賛歌」と呼ばれるものです。
マリアは自分のことを「身分の低いはしため」と言います。「はしため」というのは、召使いとか女性の奴隷、卑しい女、無力な女という意味です。これは謙遜して言っ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実際に彼女がそのような立場にあったからです。マリアも含めた当時のナザレの人たちはほとんどが農民でした。その生活は厳しく、毎日十分に食べることもできませんでした。借金が重なって、その穴埋めに娘が奴隷とされて家族から引き離されることも珍しくはありませんでした。
そのような厳しい状況を、農民たちは助け合いのシステムを作って生き延びていました。5~6家族が中庭を取り囲むように家を建て、その中庭で共に食事をしました。食べ物や生活用品も共有し、一緒に子どもを育て、何かあった時には助け合っていました。しかし、その助け合いのシステムも、マリアが生きていた時代には崩れつつありました。重い税金のために借金がかさんで農地を失う人たちが増えていったためです。土地を失った人たちは小作人や日雇い労働者になりの家族を守る術もなくなりました。
この状況で真っ先に犠牲になるのは女性と子どもたちです。ですから、マリアは当時の社会においてまさに「身分の低いはしため」だったのです。それと共に、マリアはこの賛歌において彼女と同じように危険に晒されやすい人たち、社会の周辺に置かれ、低い地位に追いやられている人たちと自分を重ねています。ですから、マリアの賛歌は、地域も時代も越えて、神さまが「はしため」のような人たちのために行われたことを讃美しているのです。
マリアはこう歌い始めています。47節です。「わたしの魂は主をあがめ、わたしの霊は救い主である神を喜びたたえます。身分の低い、この主のはしためにも目を留めてくださったからです。」(47-48節)
神さまは「貧しいはしため」に目を留める方です。どんなに小さな存在であっても、世の中でどのように見られていようとも、その一人ひとりに目を留めてくださるのが神さまです。その神さまが約束されたことが、今まさに始まろうとしていることをマリアは知らされました。
何が始まるのかと言いますと、51節です。「主はその腕で力を振るい、思い上がる者を打ち散らし、権力ある者をその座から引き降ろし、身分の低い者を高く上げ、飢えた人を良い物で満たし、富める者を空腹のまま追い返されます。」(51-53節)
貧しい人たち、はしためたちは奪われた人たちです。そんな彼ら、彼女らから奪い、と富を得ていた権力者たちとの立場の逆転が起こるのです。高ぶる者と低められた者、持つ者と持たざる者、強い者と弱い者といったような人類社会の在り方が根底から覆されるという変革が起こるのです。
それが神さまの約束ですが、マリアはこの時点で、そのような社会を見たわけでも体験したわけでもありません。ただ、マリアはエリザベトとの出会い、彼女の励ましの言葉を通して、神さまの約束の言葉が確かに前進していると信じたのです。その信仰を支えたものが、48節の言葉に現れています。「身分の低い、この主のはしためにも目を留めてくださったからです。」(48節)
主なる神さまが、この「はしため」、この「わたし」にも「目を留めてくださった」というこの一点です。様々な不安、恐れが、この「はしため」にも目を留めてくださったと信じた時に、感謝に変えられました。「力のある方が、わたしに偉大なことなさる」ことを知らされて、苦しみや痛みを乗り越える喜びに変えられたのです。
ですから、「わたしは主のはしためです。お言葉通り、この身に成りますように」(38節)と告白することができたのです。
この約束とそのための服従を、マリアは生涯を通して、十字架と復活に至るまで見届けるという大事な務めをいただいたのです。そのために、マリアは未だ何も成し遂げられていない真っ暗闇の時に、自らを「主のはしため」と小さくして、沈黙して釈明もせず、喜びと感謝だけを賛美したのです。
マリアは、神さまがこの私に目を留めてくださった、私を幸いな者としてくださった、と言います。これはマリアだけのことではありません。神さまはここにいる私たちにも目を留めてくださり、幸いな者としてくださっているのです。なぜなら、私たちにもイエスさまを与えてくださったからです。皆さん、私たちも神さまに目を留められた者、幸いな者なのです。
このアドベントの時に、もう一度、マリアの信仰を心に刻みたいと願います。ただ、このはしためにも目を留めて下さったという信仰をもって、まだ見ぬ神さまの約束の言葉が実現されていくことを待ち望みたいとお願います。クリスマスの祝福は、皆さん、一人一人にすでに満ちあふれているのです。
【2025년 12월 7일 주일예배(요약판)】
“나를 돌아보시는 하나님”
누가복음 1장 46~56절
오늘 본문은 흔히 ‘마리아의 찬가’라고 불리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크리스마스라는 거대한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들고 평생을 살아간 힘없는 여성들의 믿음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천사에게서 성령으로 잉태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놀라기도 하고 당황도 했지만, 결국 “(나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 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생각과 상관없이, 우리의 한계를 훨씬 넘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행하시는 은혜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되어 쓰임 받는 사람에게는 인간의 길에서 하나님의 길로 옮겨 가는 과정 가운데 반드시 아픔과 눈물, 끊어내야 하는 고통이 따릅니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그 길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참된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마리아는 눈앞에 복된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찬양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약혼자가 자신을 버릴지도 모릅니다. 유대 사회의 율법에 따라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생명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두려움이 충분히 머릿속을 스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마리아는 “주께서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이 믿음을 확인하듯, 마리아는 친족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엘리사벳은 오래도록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라 불리며 이미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인 남편 사가랴가 성소에서 봉사하던 중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합니다. 이 아들이 훗날 세례 요한이 됩니다. 사가랴는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하고 표징을 구했고, 천사는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그의 입을 막아 버립니다. 이것이 사가랴에게 주어진 표징이었습니다. 반면 엘리사벳은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눅 1:25)고 고백하며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고 기뻐했습니다.
이처럼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고 기뻐한 두 여인이 만난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도다”(44절)
엘리사벳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찬양합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45절)
마리아 역시 엘리사벳의 믿음의 격려를 받고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46-55절에 기록된 마리아의 찬가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비천한 여종”이라고 말합니다. ‘여종’은 단지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당시 사회에서 그녀가 처한 현실적 신분이었습니다. 당시 나사렛의 사람들 대부분은 가난한 농민이었고, 하루하루 먹는 것도 부족한 상황이 흔했습니다. 빚을 갚지 못해 딸을 종으로 팔아야 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가혹한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몇 가정이 함께 중정을 중심으로 집을 짓고 공동체로 살아가며 서로를 돌봤습니다. 음식을 나누고 생활을 공유하며, 어려움이 닥치면 서로 도왔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살던 시대에는 무거운 세금과 빚 때문에 이 공동체 시스템마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땅을 잃은 사람들은 소작농이나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했고, 가족을 지킬 방법이 사라졌습니다.
이때 가장 먼저 희생되는 존재가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따라서 마리아는 당시 사회 구조 안에서 정말로 ‘비천한 여종’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녀는 이 찬가에서 자신뿐 아니라, 사회의 가장 약한 위치에 있는 이들과 자신을 겹쳐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찬가는 시대와 지역을 넘어, 하나님께서 낮고 약한 자들을 위해 행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찬양하는 노래가 된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46-48절)
하나님은 가난한 여종에게도 눈을 두시는 분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목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이 지금 막 시작되고 있음을 마리아는 깨달았습니다.
무엇이 시작되는가? 51-5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여종들’-은 늘 빼앗기기만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강한 자와 약한 자,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위치를 뒤집는 정의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 사회의 불의한 구조가 근본적으로 뒤집히는 하나님의 큰 변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지만, 마리아는 이때 그 사회를 실제로 본 것도 아니고, 체험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엘리사벳과의 만남과 그 격려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믿은 것입니다. 그 믿음을 지탱한 말씀이 바로 48절입니다. “주께서 이 여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48절)
주님이 바로 이 ‘여종’, ‘나’를 돌아보셨다는 이 사실 하나가 모든 두려움과 불안을 감사로 바꾸었습니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마리아는 고통을 넘어서는 기쁨과 감사의 찬양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 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약속과 그에 따른 순종의 길을, 마리아는 평생 걸으며 십자가와 부활에 이르기까지 지켜보는 중요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 일을 위하여, 마리아는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움 속에서도 자신을 낮추고, 변명이나 주장 없이 오직 감사와 찬양만을 드렸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비천한 나를 돌아보시고 나를 복되게 하셨다.”
이것은 마리아만의 고백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기 있는 우리 모두를 돌아보시고, 복된 자로 삼아 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눈을 두신 자, 복 받은 자입니다.
이 대림절에, 다시 한 번 마리아의 믿음을 마음에 새기기를 원합니다. 이 비천한 나에게도 눈을 두신 하나님을 믿으며, 아직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소망하며 기다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크리스마스의 축복은 이미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득 차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