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年11月23日 感謝節主日礼拝 式順・説教
2025年11月23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Ⅱコリント(고린도후서) 3章 18節
〇讃 頌 讃頌歌 42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73 (イザヤ65章 )
〇讃 頌 讃頌歌 201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마태복음)
17章 1~13節
〇説 教 「あなたは変えられる
(당신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〇祈 祷
〇聖 礼 典 聖餐式
〇讃 頌 讃頌歌 454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6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5年 11月 23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恵みを分かち合う」
ルカによる福音書 12章 13~21節
1621年、イギリスのピューリタン(清教徒)たちがメイフラワー号に乗ってイギリスからアメリカに渡りました。しかし、船がアメリカに到着したのは冬でした。人々は新天地でまず、厳しい冬を乗り越えることから始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この危機を先住民からの援助によって乗り切り、トウモロコシの種をもらい、栽培方法を教わり、魚や貝の取り方を教わりながら、アメリカで生きる知恵をすべて教えてもらいました。
そして、翌年の秋には、たくさんの収穫を得ることができました。彼らは最初の収穫を先住民と一緒に喜び、分かち合い、神さまに感謝の礼拝を献げました。これが収穫感謝礼拝の起源です。
しかし、それから数年経ちますと、キリスト教の新天地を求めたクリスチャンたちは、どんどんアメリカに来て入植し、最初は100人だったのが、1000人、2000人と人が増えてゆきました。彼らにはより広い土地が必要になります。彼らはどうしたのかと言いますと、自分たちを助けてくれた先住民を追いやっていったのです。先住民の土地を奪い、強い武器で追い払い、殺してしまいました。そして、多くの先住民を捕まえ、奴隷として、売りさばいていったのです。先住民と分かち合う、助け合うという関係はすぐに終わってしまいました。入植したクリスチャンは、先住民の命を売り買いする対象としてしまったのです。
私たちが感謝節を祝うとき、すべての恵みは神さまから来たと感謝するわけですが、そこで、忘れてはいけないことは、その恵みを分かち合うということなのです。そして、お互いの命は神さまが与えた下さったものであり、どんなことがあっても命は人間が好き勝手にしてはいけないということを覚える時であるのです。
神さまに感謝すること、互いの命を感謝し大切にすること、そして、分かち合うこと、このことを覚えながら、今日は礼拝を献げます。
さて、今日、与えられた聖書箇所を見て行きますが、今日は、ルカによる福音書12章13~21節までを読みました。遺産相続の話から始まっています。遺産問題が、兄弟の仲を引き裂きます。この男は、自分の取り分が不満でした。『私の』配分が少ないと言ったのです。配分が不平等だったのでしょうか?それとももっと欲しいという欲望だったのでしょうか。いずれにしてもお金持ちの世界の話です。イエスさまは「だれがわたしを、あなたがたの裁判官や調停人に任命したのか」(14節)と関わろうとしません。
そして、イエスさまは豊作だった畑の譬え話を始めます。これはもともと金持ちだった人の畑が、さらに豊作だったという譬え話です。豊作には様々な条件が揃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まず、天候に恵まれることです。そして、たくさんの収穫のためには、たくさんの人手が必要です。豊作はたくさんの労働者によって支えられています。種をまく人、雑草をむしる人、収穫する人、脱穀する人、蔵に入れる人、市場にもっていく人、いろいろな人が関わって初めて豊作になるのです。いろいろな人が協力した流れの中で初めて豊作となります。この物の流れをサプライチェーンと呼びます。
しかし、この金持ちの考えの中には、協力者たちのことを一切考えていません。「どうしよう、これ以上ため込めない。そうだ、蔵を大きくしよう」と考えます。この金持ちはこの豊作の中で、分かち合う事なんて全く考えていません。豊作の恵みをすべての『私の』ものだとして独占しました。彼は神さまに感謝を献げることもなかったし、分かち合おうなど考えもしませんでした。ただ自分、自分、自分、金、金、金です。
イエスさまはそこで言われました。「愚かな者よ、今夜、お前の命は取り上げられる。お前が用意した物は、いったいだれのものになるのか」(20節)。今日あなたは死ぬ、そうしたらそれは誰のものになるのかと問います。イエスさまはここで単に、財産は天国に持っていけないということを言われ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その豊かな恵みは、元々、誰のものだったのかと問うているのです。
イエスさまは、それはあなただけのものではなかったはずだと言っているのです。「一緒に手伝ってくれた人、支えてくれた人、関わった人、励ましてくれた人、たくさんいたでしょう。感謝してる?分かち合ってる?雑草をむしってくれた人がお腹すかしてない?収穫してくれた人はお腹いっぱいになっている?あなたの蔵にしまったもの、本当はそれ、みんなのものなんじゃないの?あなたが死んだらそれはどうなるの?」と、イエスさまはそう問いかけているのです。
イエスさまは、自分のために富を積んでもしょうがない。共に収穫を感謝し、その収穫を分かち合って、神さまの前に一緒に豊かになろうと言われているのです。それが21節の「神さまの前に豊かになる」ということです。
15節に「人の命は財産によってどうすることもできない」とあります。しかし、この言葉があるにも関わらず奴隷売買は長く続きました。人が人の命を売り買いしました。本来、人は人を買う事はできません。奴隷にしてはいけないのです。これはお金を払えば、命を好き勝手にしてよいという発想です。お金払ったら何をしてもよいという発想です。しかし、神さまは人の自由と尊厳を奪うことを許してはいないのです。
もう一度、私たちが今生きている世界に目を向けますと、私たちは本当に世界と分かち合うことができているでしょうか。そして、収穫に、神さまからの恵みに感謝しているでしょうか。そして、サプライチェーンの人々が豊かになっているでしょうか。
今日は、感謝節礼拝です。私たちはこの手にあるものが、すべて神さまからいただいた恵みであることに感謝しましょう。そして、この手にあるものは多くの人たちの支えによってあることに感謝しましょう。だからこそ、それを神さまに献げ、仲間と世界とそれを分かち合ってゆきましょう。神さまの前で世界が共に豊かになってゆきましょう。
神さまは私たちに感謝するように教えています。神さまが与えて下さった恵み、それを『私の』ものだと蔵にいれるのではなく、神さまに感謝し、仲間と分かち合ってゆきましょう。それが神さまに感謝するということなのです。
【2025년 11월 23일 주일예배(요약판)】
“은혜를 나누며”
누가복음 12장 13~21
1621년, 영국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에서 아메리카로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도착한 때는 혹독한 겨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땅에서 먼저 그 매서운 겨울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이때 그들은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원주민들은 옥수수 씨앗을 나누어 주고, 재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으며, 물고기와 조개를 잡는 법 등, 새로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한 여러 지혜를 아낌없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가을, 청교도들은 풍성한 첫 수확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이 첫 열매를 원주민들과 함께 기뻐하며 나누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 예배의 기원입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새 터전을 찾고자 한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아메리카로 이주하면서, 처음에는 100명에 불과하던 이들이 1000명, 20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사람들은 더 넓은 땅을 원하게 되었고, 결국 자신들을 도왔던 원주민들을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원주민의 땅을 빼앗고, 더 강한 무기로 그들을 쫓아내거나 죽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원주민들이 붙잡혀 노예로 팔려 나갔습니다. 처음에 있었던 ‘함께 나누고 돕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신앙을 이유로 이주한 그리스도인들이, 원주민의 생명을 사고파는 대상으로 삼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절을 지킬 때, 모든 은혜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하고 감사하지만, 동시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그 은혜를 ‘나누는 삶’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인간이 멋대로 할 수 없는 존귀한 것임을 기억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 서로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는 것, 그리고 은혜를 나누는 것, 이를 기억하며 오늘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 주어진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3절부터 21절까지입니다. 한 사람의 ‘유산 상속’ 문제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유산 문제는 형제의 관계를 깨뜨릴 때가 많습니다. 이 남자는 자신의 몫이 적다고 불평했습니다. 정말로 배분이 불공평했을까요? 아니면 더 갖고 싶은 욕심이었을까요? 어떤 이유이든 부유한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14절) 하시며 그 다툼에 관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큰 풍년을 맞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이미 부유했던 사람이 더욱 풍년을 맞은 이야기입니다. 풍년이 들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필요합니다. 좋은 날씨, 그리고 많은 사람의 노동이 필요합니다.
씨를 뿌리는 이, 잡초를 뽑는 이, 추수하는 이, 탈곡하는 이, 곡식을 곳간에 들여놓는 이, 시장에 내다 파는 이, 수많은 사람의 손길이 모여 풍년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이어진 흐름을 오늘날 우리는 ‘공급망(서플라이 체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부자는 이 협력의 흐름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많은 곡식을 더 이상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창고를 더 크게 지어야겠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에게는 ‘나누는 마음’이 단 한순간도 없었습니다. 풍년의 은혜를 모두 ‘나의 것’으로 독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았고, 이웃과 나누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나, 나, 나. 돈, 돈, 돈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20절). 예수님은 단순히 ‘재산은 천국에 가져갈 수 없다’는 의미를 넘어서, 풍년의 은혜가 원래 누구의 것이었는지를 묻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모든 것이 정말로 너 혼자만의 것이었느냐? 함께 수고한 사람들, 너를 도운 사람들, 곁에서 힘이 되어 준 사람들이 있었지 않느냐? 그들에게 감사했느냐? 그들과 나누었느냐? 잡초를 뽑으며 배고파한 사람은 없었느냐? 수확을 도운 사람은 충분히 먹었느냐? 네가 창고에 쌓아 둔 것, 사실은 모두의 것이 아니었느냐? 너는 죽으면 그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예수님은 이렇게 묻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만을 위해 재물을 쌓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함께 추수한 은혜를 감사하고, 그 은혜를 나누며,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함께 풍성해지는 것, 그것이 21절의 “하나님 앞에 부유하게 되는 삶”입니다.
15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있음에도 오랫동안 노예매매가 이어졌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사고파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본래 사람은 사람을 살 수도 없고, 노예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돈을 주었다고 해서 그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빼앗는 일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이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돌아보면, 우리는 정말로 세계와 나누며 살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주신 수확과 은혜에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그리고 이 공급망에 연결된 사람들이 함께 풍성해지고 있는가를 묻게 됩니다.
오늘은 감사절 예배입니다. 우리의 손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임을 감사합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많은 사람의 도움과 수고 속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감사합시다. 그렇기에 그것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이웃과 세계와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 세상이 함께 풍성해지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사의 삶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내 것’이라며 창고에 쌓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감사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