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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年09月21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5年9月21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詩編(시편) 34編 8(9)~10(11)節
〇讃    頌    讃頌歌 29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57 (詩編130編 )
〇讃    頌    讃頌歌 369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마태복음)
         14章 1~21節
〇説   教    「キリストの祝宴 (고그리스도의 잔치)」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434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6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5年 9月 21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キリストの祝宴」
          マタイによる福音書 14章 1~21節


 今日の聖書箇所には、「洗礼者ヨハネが殺された話」と「イエスさまがパン五つと魚二匹で五千人もの人たちを満腹にした話」の2つが記されています。この2つは関連のない話のように思えますが、この二つの話はつながっていて、そこに対比的な意味が込められているように思います。


 さて、今日の前半の聖書個所から見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が、ここには領主ヘロデが洗礼者ヨハネを殺した経緯が記されています。
 ヘロデは自分の兄弟の妻であったヘロディアと不倫を犯して、自分の妻を追い出して彼女を新しい妻にしてしまいました。このことは政治問題にも発展して、後には戦争が起こるのですが、その前に洗礼者ヨハネが王の結婚は宗教的にも違法だと批判したわけです。
 それでヘロデはヨハネに対し怒り、捕らえ牢に入れていました。ヘロデはヨハネを殺したいと思っていたようですが、彼を預言者と認める民衆の手前それが出来ないでいました。実際、ヨハネを殺そうと強く願ったのは、新しい妻のヘロディアの方だったようです。
 ヘロデは自分の誕生祝賀会で、ヘロディアの娘が舞台で踊るのを見て喜び、たぶん酔いも廻っていたせいか、「願うものは何でもやろう」という軽はずみな約束をします。そこへ母親のヘロディアが入れ知恵をして、娘にヨハネの首をはねることを求めさせます。誓いは解こうと思えば解けるのですが、客の手前もあって、王が約束を果たさないなど恥ずかしいことですから、娘の願いどおり、ヨハネの首を盆にのせて運ばせることとなりました。


 このヨハネの死は、イエスさまの十字架に匹敵するほどの凄惨なものです。これは、真の神さまへの立ち返りを求めて、神さまのもとから送られてきた預言者を、イスラエルの民が拒否し続けて来たその歴史を集約しているように思います。愚かな権力者、自分の欲望のために娘を利用する母親の醜さ、それに対し従順に従い、人間の生首を平然と持つことの出来る娘の残酷さ、それを喜んで見ている人々のおぞましさ、これが神さまに逆らう者たちの世界です。この暗闇の世界に神さまは、多くの預言者を送り、暗闇の世界に光りを放とうとしましたが、この世界は預言者たちを葬って来ました。聖書では、まさに最後の預言者として、洗礼者ヨハネが描かれています。


 本来なら、領主ヘロデの誕生日の祝宴の席ですから、皆が喜び祝い、それを分かち合うような席であるはずなのに、いとも簡単に人の命が扱われ、祝宴の席が、何とも血なまぐさいことになってしまったのです。
 イエスさまは、洗礼者ヨハネが殺されたことを聞くと人々の前から退かれようとされました。13節にはこうあります。「イエスはこれを聞くと、舟に乗ってそこを去り、ひとり人里離れた所に退かれた。しかし、群衆はそのことを聞き、方々の町から歩いて後を追った」(13節)。


 イエスさまにとってヨハネは神さまの救いを、福音を伝える同志であり、従兄弟でもありますから、ヨハネの死を大変悲しまれたことでしょう。けれども、イエスさまは、独り、悲しみの時を過ごすことも許されないまま、また、人々と向き合うことになります。
 14節をお読みします。「イエスは舟から上がり、大勢の群衆を見て深く憐れみ、その中の病人をいやされた。」(14節)
 ここで印象的なのは、「大勢の群衆を見て深く憐れみ」ということです。イエスさまは、人々を見て深く憐れまれたのです。イエスさまは、深い憐れみから、病にある人を癒されました。そして、イエスさまのこの深い憐れみは、「五千人の人たちを満腹にさせた話」へとつながって行きます。


 イエスさまのもとに大勢の人々が集まってきました。イエスさまは、彼らに福音を語られたことでしょう。いつの間にか、夕方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そこで、イエスさまの弟子たちは、イエスさまにこのような提案をします。「ここは人里離れた所で、もう時間もたちました。群衆を解散させてください。そうすれば、自分で村へ食べ物を買いに行くでしょう」(15節)。すると、イエスさまは、こう言われました。「行かせることはない。あなたがたが彼らに食べる物を与えなさい」(16節。


 ここには、男だけで五千人はいます。女子どもを含めたら、それこそ一万人を超える人数です。それなのに、イエスさまは自分たちに食べる物を与えなさいと言われます。当然、弟子たちは驚き、自分たちの持っているものは「パン五つと魚二匹しかない」と反論しました。
 それでも、エスさまは、弟子たちが持ってきたパンと魚を取り、天を仰いで賛美の祈りを唱え、パンを裂いて、弟子たちに渡されました。弟子たちはそのパンを群衆に与えました。「天を仰いで賛美の祈りを唱え」(19節)とあります。イエスさまは、神さまを見上げ、賛美をささげたのでしょう。そして、そこに集まっている群衆を祝福されたのです。
 そこから、起こった出来事が、パンと魚がそこに集まっていたすべての人たちに行きわたり、満腹した、ということでした。「ここにはパン五つと魚二匹しかありません」。そのわずかな、その小さなものが、神さまによって用いられたのです。


 弟子たちは、「自分たちには、五つのパンと二匹の魚しかありません」と、率直に訴えました。イエスさまの前に立つ時、私たちはこの弟子たちのように、自分のありのままを申し上げたらよいと思います。しかし、そこで留まってはなりません。イエスさまは、弟子たちこのように言われました。「それをここに持って来なさい」(18節)。
 「それ」とは何でしょうか。五つのパンと二匹の魚です。それが自分の持っているすべてでした。自分の弱さ、小ささを含む、自分のすべてを主のもとに持っていくのです。そうするならば、主なる神さまは、小さな、弱い私たちを用いてくださいます。


 今日の説教題を「キリストの祝宴」と付けました。今日の聖書個所の前半は、ヘロデの祝宴と言える内容でした。ヘロデの祝宴というのは、自分を祝う、自分の栄光を求める、そして、命を奪う、それがヘロデの祝宴でした。
 しかし、キリストの祝宴とは、神さまをお祝いする、神さまの栄光を賛美する、そして、命を与える、それが、キリストの祝宴です。この祝宴を私たち教会は、これまでずっと続けてきました。毎週、ささげる礼拝もそうですし、愛餐会もそうです。特に、聖餐式はキリストの祝宴を表しています。そして、聖餐式が意味すること、それは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です。主イエス・キリストは、私たちが生きるために、ご自分の肉を裂かれ、血を流されました。そのことによって、私たちは罪から救われ、永遠の命に与かる者とされたのです。


 そして、ここで忘れてはいけないイエスさまの言葉があります。それが16節の言葉です。「あなたがたが食べさせなさい」。
 この奇跡はここから始まっているのです。弟子たちが持っているのは。わずか五つのパンと二匹の魚に過ぎませんでした。けれども、弟子たちが、すなわち自分のすべてのものを献げた時に、イエスさまはこれを神さまの祝福の力によって有り余るほど豊かなものに増やされて、弟子たちにお与えになりました。それは、それを必要とする人々のところに分け与えるためです。

 皆さん、一人ひとりの賜物は異なってはいても、それぞれが五つのパンと二匹の魚ほどの小さな物をもっているのだと思います。それは、私たち自身がさささげることのできる献身のしるしです。それを主のもとにささげていくときに、そこに奇跡が起こり、そこがキリストの祝宴となるのです。


【2025년 9월 21일 주일예배(요약판)】

      “그리스도의 잔치” 
                            마태복음 14장 1~21절


  오늘 본문에는 “세례 요한이 죽임을 당한 이야기”와 “예수님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이야기”, 이 두 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핏 보면 서로 관계없는 두 사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안에 대조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전반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분봉왕 헤롯이 세례 요한을 죽이게 된 경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헤롯 왕은 자기 형제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와 불륜을 저지르고, 자기 아내를 내쫓고 그녀를 새로운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이 일은 정치적 문제로까지 발전하였고, 결국 전쟁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세례 요한이 왕의 결혼은 율법적으로 옳지 않다고 비판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헤롯은 요한에게 분노하여 그를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사실 헤롯은 요한을 죽이고자 하였지만,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던 많은 무리들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요한을 죽이고자 한 것은 새로운 아내 헤로디아 쪽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헤롯의 생일 잔치에서 헤로디아의 딸이 무대에서 춤을 추었고, 헤롯은 그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아마 술에 취한 탓도 있었을 터,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라는 경솔한 맹세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머니 헤로디아가 딸에게 요한의 머리를 구하도록 시켰습니다. 맹세는 철회할 수도 있었지만, 많은 손님들 앞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기에, 결국 요한의 목을 베어 쟁반에 담아 딸에게 주고, 그것이 어머니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이 세례 요한의 죽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견줄 만큼 참혹한 일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참된 회개를 선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를, 이스라엘 백성이 거듭 거부해 온 역사를 응축해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권력자, 자신의 욕망을 위해 딸을 이용한 어머니의 추악함, 그에 순종하여 사람의 머리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든 딸의 잔혹함, 그것을 기꺼이 구경하는 사람들의 끔찍함, 이것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들의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어두운 세상 가운데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빛을 비추고자 하셨으나, 세상은 그 선지자들을 계속해서 죽여 왔습니다. 성경은 세례 요한을 바로 그 마지막 선지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헤롯 왕의 생일 잔치 자리이기 때문에 모두가 다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나누는 자리가 되어야 할 텐데, 오히려 생명이 가볍게 다루어지고, 잔치 자리가 순식간에 피비린내 나는 장소로 변해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사람들 앞에서 물러나려 하셨습니다. 13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시니 무리가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13절).


  예수님께 요한은 하나님의 구원, 곧 복음을 전하는 동역자였으며, 또한 친족이기도 하셨으므로, 요한의 죽음을 깊이 슬퍼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홀로 슬픔의 시간을 보낼 겨를조차 없이, 다시 무리와 마주하게 되셨습니다.
  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14절).
  여기서 인상적인 것은,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깊은 긍휼을 가지셨습니다. 그리하여 병든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긍휼은 이어지는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으로 연결됩니다.


  예수님께는 수많은 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을 것입니다. 어느새 날이 저물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아뢰었습니다. “이 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15절).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16절).


  그 자리에 있던 남자만 해도 오천 명이었습니다. 여자와 어린아이들까지 합치면 만 명을 훨씬 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을 먹이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당연히 놀라며, 자신들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라고 아뢰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가져온 그 떡과 물고기를 가지시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무리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19절).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해 감사와 찬양을 드리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무리를 축복하셨습니다.
  그 후 일어난 일은, 떡과 물고기가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지고, 모두가 배불리 먹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라는 제자들의 고백은,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때는 놀라운 역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아뢰었습니다. 우리도 주님 앞에 설 때, 제자들처럼 있는 그대로를 고백하면 됩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18절).
  “그것”은 무엇입니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습니다. 그것이 제자들이 가진 전부였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연약함과 작은 것까지 포함하여, 모든 것을 주님 앞에 가져와야 합니다. 그럴 때 주 하나님께서는 작은 우리를 사용하여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오늘의 설교 제목을 “그리스도의 잔치”라고 붙였습니다. 본문의 전반부는 헤롯의 잔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헤롯의 잔치는 자기 자신을 높이고, 자기의 영광을 구하며, 생명을 빼앗는 잔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잔치는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생명을 주시는 잔치입니다. 교회는 이 그리스도의 잔치를 계속 이어오고 있습니다. 매주 드리는 예배가 그렇고, 함께하는 애찬도 그렇습니다. 특히 성찬식은 그리스도의 잔치를 가장 잘 나타냅니다. 그리고 성찬이 의미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살도록 자기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고 영생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16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16절).
  이 기적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 것입니다. 제자들이 가진 것은 고작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렸을 때, 예수님은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넘치도록 풍성하게 하셔서 제자들에게 다시 주셨습니다. 그것은 곧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각자가 가진 은사는 다르지만, 누구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 해당하는 작은 것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헌신의 표시입니다. 그것을 주님 앞에 드릴 때, 그 자리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그 자리가 곧 그리스도의 잔치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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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日:2025年09月21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