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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年09月14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5年9月14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詩編(시편) 62編 6(5)~8(7)節
〇讃    頌    讃頌歌 28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55 (詩編127編 )
〇讃    頌    讃頌歌 302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마태복음)
         13章 53~58節
〇説   教    「故郷を越えて (고향을 넘어서)」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325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6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5年 9月 14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故郷を越えて」
         マタイによる福音書 13章 53~58節


 マタイによる福音書13章には、7つの譬え話がありますが、この譬え話を語り終えられた後、イエスさまは弟子たちにこのようにお尋ねになりました。「あなたがたは、これらのことがみな分かったか」(51節)。これに対して、弟子たちは何と答えたかと言いますと、「分かりました」と答えています。
 しかし、弟子たちはイエスさまが語られたことを本当にすべて分かったのでしょうか。決して、そうではないと思います。この弟子たちの「分かりました」という言葉の意味は、すべて正しく理解したという意味ではなく、正直なところ、分からないところもあるけれど、イエスさまの言われることを受け入れます。イエスさまを信じますという意味だと思います。


 私たちは聖書を読む時に、神さまの言葉として、読んでいます。正直、聖書の言葉は分からないことばかります。時には、分かったつもりになっていることもあります。けれども、この弟子たちのように私たちも、「分かりました」と答えていきたいと思うのです。分からなくても神さまの言葉として信じます。すべてを受け入れますと答えたいと思うのです。


 さて、今日の聖書箇所は、イエスさまが故郷のナザレに帰られたのですが、故郷の人々がイエスさまを受け入れなかった、イエスさまに躓いたという内容です。ここで問題となっているのが、人々の「分かりました」「分かっている」ということなのです。


 ナザレの人々はこう言っています。54節です。「この人は、このような知恵と奇跡を行う力をどこから得たのだろう」(54節)。
 イエスさまは、故郷であるナザレで、神さまの言葉を語られ、力ある御業を行われました。そのことを見て、聞いて、人々は大変驚いて、そのような知恵と奇跡を行う力をどこから得たのか、と言ったのです。


 続いて、人々は、このようなことも言っています。55節です。「この人は大工の息子ではないか。母親はマリアといい、兄弟はヤコブ、ヨセフ、シモン、ユダではないか。姉妹たちは皆、我々と一緒に住んでいるではないか」(55-56節)。
 人々は、イエスさまのことを知っているし、その家族のことも知っている、と言っているのです。
 そして、繰り返し、こう言いました。「この人はこんなことをすべて、いったいどこから得たのだろう」(56節)。


 「どこから得たのだろう」と、人々は言いながらも、「どこから」ということを真剣に考えることはしなかったようです。それは、次の言葉から分かります。57節です。「このように、人々はイエスにつまずいた。」(57節)
 「人々はイエスにつまずいた」とあります。「イエスにつまずいた」というのは、イエスさまが語った知恵、行なった業、それがどこから来たのか、そのことが分からないままであった、ということです。


 イエスさまの故郷であるナザレの人々は、イエスさまを神の国をもたらす神の子として受け入れ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昔ながらによく知っている「イエスちゃん」ぐらいにしか見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わけです。イエスさまの語る言葉が優れた教えだと思ったかも知れませんが、それによってナザレの人々の人生が変わるようなことは起こりませんでした。本当の「理解」には至らなかったわけです。


 このように、ナザレではイエスさまが隠された宝のままであったということです。それが見出されるのはイエスさまが復活なさった後になります。弟子たちにしても本当の信仰の歩みはイエスさまが復活なさった後で聖霊をいただいてからです。イエスさまは隠された宝としてこの世におられましたし、また、今でもそうかも知れません。不信仰な人々の間にあっては、イエスさまが宝物とは思えないのが現実です。人々がその宝に気づくのは、神さまのもとから聖霊が送られてきた時です。


 私たちは幸いにも、イエスさまが語った知恵、行なった業、それがどこから来たのかを知っています。神さまから来たことであると知っている、信じています。しかし、私たちの「知っている」ということも、どれほどのものでしょうか。むしろ、聖書について、神さまについて、知らないことの方が多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だから、私たちは、信仰生活って、イエスさまを信じて生きる人生なんて、まあ、こんなものだ、と言って、悟ったようなことは言えないと思います。もっともっと、イエスさまを知っ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神さまの恵みがどれほどのものか、知っ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


 そのために、私たちは、まず、イエスを信じた私たちが、すべてのものを投げ捨ててでも手にしたい、という程の大切な宝をイエスさまの内に見出し、驚きと喜びをもって、イエスさまの御言葉に従って歩んで行きたいと思います。そして、わかったつもりで留まらないで、常にイエスさまの言葉を自分の人生に当てはめて、それがどのように力を持つのかということを確かめながら、聖書に学び続けることが必要です。
 皆さん、信仰というのは、神さまの御言葉を信じて、それを自ら実践して行かなければ、真理は分からないのです。「敵をも愛せよ」という言葉も、そんなこと無理に決まっていると遠ざけてしまえば、イエスさまの言葉の真理はわからないままです。無理だと思いながらもそれに向かって行く。破れるかも知れませんけれども試みて行く。イエスさまが弟子たちに求めたのは、まさにそうした信仰であったのです。


 イエスさまにつまずいた故郷の人たちについて、イエスさまは、このように言われました。57節です。「預言者が敬われないのは、その故郷、家族の間だけである」(57節)。そして、58節には「人々が不信仰だったので、そこではあまり奇跡をなさらなかった」(58節)とあります。
 ナザレの人々は、自分の故郷に、また、自分の家族にイエスさまを迎え入れませんでした。少し前に読んだマタイによる福音書12章49~50節で、イエスさまは弟子たちにこのようなことを言われました。「見なさい。ここにわたしの母、わたしの兄弟がいる。だれでも、わたしの天の父の御心を行う人が、わたしの兄弟、姉妹、また母である」(12章49-50節)。
 この時、イエスさまの母と兄弟たちが、イエスさまと話したいと外にいました。それで、ある人が、イエスさまに、あなたの母と兄弟たちが話したいと外にいますよ、と言ったのです。それに対して、イエスさまは、このように言われました。「だれでも、わたしの天の父の御心を行う人が、わたしの兄弟、姉妹、また母である」(12章50)。それは、神さまのみ心を受け入れる人、神さまのみ子であるイエスさまを受け入れる人がイエスさまの家族なのです。
 イエスさまは、ナザレに帰られて、ここは私の故郷、この人たちは私の家族、そのように言いたかっ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けれども、人々はイエスさまを受け入れなかったのです。


 皆さん、私の故郷、あるいは私の住んでいる地、そこは、イエスさまの故郷、イエスさまの住んでいる地でもあるのです。私の家族、それは、イエスさまの家族であり、イエスさまはここにおられます。イエスさまが一緒におられる。そのことを信じていく時、そこで私たちは、神さまの知恵と力、神さまの愛の御業を知ることができる、体験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2025년 9월 14일 주일예배(요약판)】

      “고향을 넘어서” 
                            마태복음 13장 53~58절

  마태복음 13장에는 일곱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이 비유들을 다 말씀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51절). 이에 제자들은 “그러하오이다”라고, 깨달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과연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모두 바르게 깨달았던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그러하오이다”라는 말은 모든 것을 정확히 이해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솔직히 다는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라는 의미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지만, 솔직히 성경 말씀은 알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때로는 알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잘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제자들처럼 “깨달았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다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에 돌아가셨을 때,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걸려 넘어졌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문제된 것은 바로 사람들의 “깨달았다”, “알고 있다”는 태도였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54절).
  예수님은 고향 나사렛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능력 있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들은 사람들이 크게 놀라며, 이런 지혜와 능력을 어디서 얻었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55-56절).
  즉, 그들은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고, 가족까지 알고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거듭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56절).


  그들은 “어디서 났느냐”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어디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가 57절입니다. “예수를 배척한지라”(57절). 즉, 예수님이 말씀하신 지혜, 행하신 능력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끝내 깨닫지 못한 채였다는 것입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신 분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옛날부터 알던 “동네 아이 예수” 정도로밖에 보지 못한 것입니다. 말씀을 훌륭한 가르침이라 생각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해 삶이 변화되지는 않았습니다. 참된 깨달음에는 이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나사렛에서는 예수님이 숨겨진 보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이 드러난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입니다. 제자들도 참된 믿음의 걸음을 시작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성령을 받은 후였습니다. 예수님은 숨겨진 보물로 이 땅에 계셨고, 지금도 불신앙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물로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람들이 그 보물을 깨닫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실 때입니다.


  저희는 다행히도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신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안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확실한 것일까요? 오히려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 모르는 것이 훨씬 많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우리는 “믿음 생활이란 이런 거다, 다 알았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더 알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더 알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예수님 안에 우리의 모든 것을 버려서라도 얻고 싶은 보물이 있음을 깨닫고, 놀라움과 기쁨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알았다고 멈추지 말고, 언제나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에 비추어 보며, 그것이 실제로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확인하며 계속 성경에서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것을 실천할 때에야 비로소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그건 도저히 불가능하다”며 멀리한다면 그 말씀의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불가능해 보여도 그것을 향해 나아가며, 때로는 실패하더라도 시도해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원하셨던 믿음은 바로 그런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한 고향 사람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57절). 
  그리고 58절에는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자기들의 고향, 자기 가족에게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금 앞서 읽었던 마태복음 12장 49~50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12장 49-50절).
  즉,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이야말로 예수님의 가족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에 돌아가셨을 때, 사실은 “여기가 내 고향이고, 이 사람들이 내 가족이다”라고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고향, 우리의 삶의 자리, 그곳은 곧 예수님의 고향이며,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 곳입니다. 우리의 가족은 곧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것을 믿을 때, 우리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사랑의 역사를 깨닫고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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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日:2025年09月14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