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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年08月31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5年8月31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マタイによる福音書(마태복음) 17章 20節
〇讃    頌    讃頌歌 26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51 (詩編118編 )
〇讃    頌    讃頌歌 539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마태복음)
         13章 31~35節
〇説   教    「からし種とパン種の譬え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288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6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5年 8月 31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からし種とパン種のたとえ」
         マタイによる福音書 13章 31~35節


 マタイによる福音書13章には、天の国について7つの譬え話がありますが、今日の聖書箇所もその譬えのうちの二つです。


 まず、「からし種」の譬えの意味を考えてみます。31節です。「天の国はからし種に似ている。人がこれを取って畑に蒔けば、どんな種よりも小さいのに、成長するとどの野菜よりも大きくなり、空の鳥が来て枝に巣を作るほどになる。」(31-32節)
 ここでイエスさまが言われる「天の国」というのは、人が死んでから行くと信じられている「天国」の事ではありません。マルコによる福音書やルカによる福音書では、「神の国」と言われているものです。神さまが支配するところを意味します。ルカによる福音書17章20~21節にこうあります。「ファリサイ派の人々が、神の国はいつ来るのかと尋ねたので、イエスは答えて言われた。神の国は見える形では来ない。『ここにある』、『あそこある』と言えるものでもない。実に、あなたがたの間にあるのだ。」(ルカ17:20-21)
 イエスさまが来られて神の国がすでに来ている。神の国は私たちの生活のただ中にあるのだと言われているのです。


 からし種は、1.0㎜にもならない小さな種ですが、その種を地に蒔くと2~3メートルほどの見上げるような大きさになります。小さな種からは考えられない成長力です。「神の国」はそのような成長力をもっているとイエスさまは言われます。
 イエスさまはここで福音の種の大きな成長力を語られていますが、それは福音の種が大きく成長したら、そこが神の国になるとおっしゃっ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福音の種は蒔かれました。神の国、すなわち神さまの支配が来ているのです。ですから、私たちは福音の種の大きな成長力を信じて、自分たちのなすべきことをすれば良いのです。


 それから「パン種」の譬えですが、からし種の成長が「神の国」の成長力だとしたら、「パン種」は「神の国」の質を示す譬えのように思われます。
 イエスさまは言われました。33節です。「天の国はパン種に似ている。女がこれを取って三サトンの粉に混ぜると、やがて全体が膨れる。」(33節)
 当時の人々はパンを焼く時、少量の練り粉を次のパン焼きのために取っておきました。その練り粉は保存している間に発酵し、次のパンを焼く時に、それを練り粉に混ぜると、柔らかくふわふわしたパンが出来ます。そして、ここで言われているのは、家庭の台所の話ではありません。「三サトンの粉」というのは、150人分のパンを作れる量を表しています。ここでは天国の祝宴が想定されているのです。世界に福音というパン種を混ぜると、その発酵作用により、「神の国」というパンは、大きく、またおいしいものになります。イエスさまが残されたのは、わずか12人の弟子たちでした。しかし、この弟子たちが神の国を形成していくパン種になったのです。だから私たちの教会もこのパン種のような存在になりたいと思います。私たちの教会も真に小さな群れでありますが、パン種となって、この世界を大きく、また、柔らかくするような存在になりたいのです。


 この「からし種」と「パン種」の譬えが教えていることは、この世界に、私たちの心に、イエス・キリストという真に小さなからし種が蒔かれ、その種はパン種のように人々の心を変革する力を持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この種は、本当に小さなもので、これが蒔かれたところでこの世界がどうなるものでもない、何の力も影響もないと思われるようなものです。私たちは今、教会に集められて礼拝をしていますが、一歩教会の外へ出れば、世界は、イエス・キリストとは何の関わりなく、何の関心もなく、そんなことは無視して動いています。
 しかし、私たちは今、この譬えによって、神の国の秘密を示されました。この小さな、取るに足らない、目立たない種が、空の鳥が来て枝に巣を作るほど大きな木になるのです。このパン種が私たちの心という、またこの世界という、まことに頑なな粉を、やわらかく発酵させ、よい香を放つおいしいパンにしていくのです。


 そのために、からし種は蒔かれてその姿を失っていきます。パン種も粉の中に混ぜられ、隠されて、見えなくなります。どちらも、自らの姿を失い、消えうせていくのです。そのことを通して、大きな木が育っていき、おいしいパンが膨らんでいくのです。それは、イエス・キリストが、十字架にかかって死んで下さったことを象徴しています。イエスさまご自身がからし種として、あるいはパン種としてこの世に蒔かれたということは、ただこの世に来られたというだけではなくて、私たちのために、私たちの罪を全て背負って十字架にかかって死んで下さったことを意味しています。


 イエスさまはヨハネによる福音書12章24節でこう言われました。「一粒の麦は、地に落ちて死ななければ、一粒のままである。だが、死ねば、多くの実を結ぶ。」(ヨハネ12:24)
 神の国、神さまの御支配は、この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の死を通して、私たちの中で、育っていくのです。そのことの一つの現れが、私たちが神さまの支配を信じて、洗礼を受け、教会に加えられることです。洗礼を受けるということは、私たちも十字架の前に死ぬということです。そのようにして私たちの中で、神の国、神の支配が進展していくのです。そして、この神さまの御支配は、やがていつか、鳥が巣を作るような大木となり、粉の全体を脹らませ、おいしいパンにします。
 そのことを、私たちはまだ見てはいません。私たちが目にしているのは、小さなからし種であり、ひとつまみのパン種です。しかし、それは神の国の、神の支配の種です。それは神さまによって必ず、大きな木へと成長させられていくし、私たちの心とこの世界全体によい影響を及ぼしていくのです。そのことを信じることが信仰です。


 日本の教会は、その殆どが小さな集まりです。そして、教会員の減少や高齢化といった問題に苦しんでいます。しかし、教会にとって大切なことは、会員の数や献金の額といった、目に見える姿によって決まるのではありません。本当に大切なのは、そこに命が宿っているのかということです。


 「からし種」や「パン種」の成長力の源は、どちらも真の命を持っているという点にあります。逆に言えば、命がなければどんなに水や肥料を与えても、種が芽を出し成長するということは起こらないのです。しかし、そこに本物の命が宿っているなら、たとえ今、目に見えている姿が小さく、みすぼらしくても、それはいつの日か大きな実りへと成長していく力を秘めているのです。
 教会がどんなに小さくて、弱々しいとしても、そこに本物の命が宿っているなら、その教会は、地上の神の国であり、やがて世の終わりの日にそれが完成される時には、今の姿からは想像もできないような豊かな実りへと成長するのです。


 今、私たちが見る世界は、毒麦だらけにように見えます。しかし、神さまは今も確かにこの世界に働きかけておられ、神の国は広がっているのです。ただ、それが私たちの目では確かめることが出来ません。そのため、信仰の苦しみや闘いが生まれます。
 この世界を見渡すときに、そこには一体どこに神の国があるのかと問わずにいられない悲惨な現実があります。そして、私たちの人生にも苦しみと涙が絶えることがなく、この辛く厳しい現実の中で、どこに神の国を見い出すことが出来るのかと思わずにはいられません。
 このような私たちの問いに、今日の二つの譬え話は、次のように答えているように思います。「からし種が畑に埋められて見えなくなるように、パン種が粉の中に隠されて分からなくなるように、神の国はあなたがたの何気ない日常の営みの中に隠されている。あなた方はそれぞれの家庭で、職場で、学校で、日々の平凡な暮らしの中において神の国を見出すことが出来る」と。


 私たちが日々の平凡な暮らしの中でこの事実を体験し、喜びの日にも、苦難の時にも、この見えない神の国を信仰によって確信することが出来たなら、この地上においてすでに神の国の祝福の中に生かされているのです。


【2025년 8월 31일 주일예배(요약판)】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마태복음 13장 31~35절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에 관한 일곱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그 가운데 두 가지 비유입니다.


  먼저 “겨자씨”의 비유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31절 말씀입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31-32절).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은, 사람이 죽은 뒤에 간다고 흔히 믿는 “천당”이 아닙니다.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서는 이것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표현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곳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17장 20~21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무가복음 17:20-21).
  즉,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우리의 삶 한가운데에 있는 것입니다.


  겨자씨는 1밀리미터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씨앗입니다. 그러나 땅에 심으면 2~3미터나 되는 큰 나무로 자라납니다. 작은 씨앗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성장력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처럼 놀라운 성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복음의 씨가 커지면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의 씨는 이미 뿌려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다스림은 이미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큰 성장력을 믿고, 그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충실히 감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다음은 “누룩”의 비유입니다. 겨자씨가 하나님의 나라의 성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누룩은 하나님의 나라의 성질을 드러내는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33절입니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33절)
  당시 사람들은 빵을 구울 때, 반죽의 일부를 떼어내어 다음번 빵을 만들기 위해 남겨 두었습니다. 그 반죽은 발효되어, 다음번 빵 반죽에 섞으면 부드럽고 맛있는 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단순히 가정의 작은 일상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가루 서 말”은 무려 150명 분의 빵을 만들 수 있는 양을 가리킵니다. 곧 하나님의 나라의 큰 잔치가 배경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라는 누룩이 세상 속에 들어가면, 그 발효 작용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크게 자라고 풍성해집니다. 예수님께서 남기신 제자는 단 12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누룩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교회도 누룩과 같은 존재가 되고자 합니다. 비록 작은 교회일지라도, 이 세상을 부드럽게 하고 크게 변화시키는 누룩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가 가르쳐 주는 것은, 이 세상과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작은 겨자씨가 심겨지고, 그 씨앗이 누룩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씨앗은 너무도 작아서 세상 사람들은 아무 힘도 영향도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작은 씨앗이 자라 큰 나무가 되고, 누룩처럼 반죽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겨자씨는 땅에 심겨져 보이지 않게 되고, 누룩 역시 반죽 속에 섞여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잃고 사라져야만 큰 나무가 자라고 맛있는 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겨자씨와 누룩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단순히 오셨다는 사실을 넘어,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다스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 가운데서 자라갑니다. 그 한 모습이 우리가 세례를 받고 교회 공동체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란 곧 우리가 십자가 앞에서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는 마침내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들이고, 누룩처럼 반죽 전체를 변화시키며 세상 전체를 부드럽게 만듭니다.
  지금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겨자씨 한 알, 누룩 한 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씨앗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라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과 세상 전체를 변화시켜 가십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일본의 교회들은 대부분 작은 공동체입니다. 또 교인 수의 감소와 고령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가치는 교인 수나 헌금 액수 같은 겉모습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참된 생명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겨자씨와 누룩이 자라는 힘은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없다면 아무리 물과 거름을 주어도 싹이 트고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된 생명이 있다면, 지금은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반드시 언젠가 큰 열매를 맺습니다. 교회가 아무리 작고 연약해 보여도, 그 안에 참된 생명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 땅 위의 하나님의 나라이며, 장차 세상의 마지막 날, 주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에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풍성한 열매로 드러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마치 가라지로 가득한 밭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세상 가운데 일하고 계시며,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히 확장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신앙의 고통과 싸움이 생깁니다. 세상을 바라볼 때, 어디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있습니다. 또 우리의 삶에도 고통과 눈물이 끊이지 않아, 이 현실 속에서 과연 하나님의 나라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오늘의 두 비유는 이렇게 말씀하는 것 같습니다. “겨자씨가 밭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듯, 누룩이 반죽 속에 숨어 알아볼 수 없듯,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의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 있다. 너희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평범한 하루하루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경험하고, 기쁠 때에도 고난의 때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으로 확신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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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日:2025年08月31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