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ゴ

メイン画像

説 教ページ

2025年08月17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5年8月17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イザヤ書(이사야) 6章 9~10節
〇讃    頌    讃頌歌 23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47 (詩編105編 )
〇讃    頌    讃頌歌 278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마태복음)
         13章 10~17節
〇説   教    「平難しい譬え話
          (어려운 비유)」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290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6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5年 8月 17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難しい譬え話」
         マタイによる福音書 13章 10~17節


 今日の聖書箇所は、弟子たちが「どうして、譬えを用いてお話になるのですか」とイエスさまに尋ねた場面です。確かに、イエスさまはお話をするときに、譬え話を多く用いておられます。イエスさまが語った譬え話は、聖書の中に31個もあります。有名なところで言えば「放蕩息子のたとえ」「善きサマリア人のたとえ」「ぶどう園の労働者のたとえ」「迷い出た羊のたとえ」などが挙げられます。


 イエスさまは、人々にとって身近な事柄に当てはめながら、神さまと神の国とは、また、イエスさまご自身とはどんなものであるかを伝えようとされたのです。
 但し、イエスさまの譬え話というのは、一見分かりやすいようでいて、実は理解するのが難しい譬えが多いのです。例えば、「放蕩息子のたとえ」とか「ぶどう園の労働者のたとえ」などは、語られている内容は分かりますが、どうも納得できません。自分が放蕩息子の兄の立場だったら怒るのが当然だし、朝から働いているのに、夕方から働いた人と同じ賃金だなんて納得できません。


 ですから、弟子たちもイエスさまに「なぜ、あの人たちにはたとえを用いてお話しになるのですか」(10節)と尋ねたのです。
 イエスさまの答えは意外なものでした。それが11節です。「あなたがたには天の国の秘密を悟ることが許されているが、あの人たちには許されていないからである。」(11節)
 この言葉は、私たちに重要な真理を伝えています。イエスさまの譬え話しは、「天の国の秘密」を教えているのです。「天の国の秘密」は、単なる知的な理解や学問的な知識で分か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なぜなら、それは神さまからの贈り物、恵みだからです。それを受け取るものは、信仰をもって聞き、受け入れなければ分かるものではないのです。ここでイエスさまが「あの人たち」と言っているのは、イエスさまを疑い、天の国を信じない人のことを指しているのでしょう。
 そして、持っている人、すなわち信じる者には、さらなる祝福が与えられ、持っていない人、すなわち信じない者には、さらなる疑いや躓きが与えられるのです。


 14~15節で、イエスさまはイザヤ書を引用されながら、どうして「譬え話」によって語るのか、その意図が説明されております。14節です。「あなたたちは聞くには聞くが、決して理解せず、見るには見るが、決して認めない。この民の心は鈍り、耳は遠くなり、目は閉じてしまった。こうして、彼らは目で見ることなく、耳で聞くことなく、心で理解せず、悔い改めない。わたしは彼らをいやさない。」
 イザヤ書からの引用とは言っても、イザヤ書の本文とは少し言葉が違います。イザヤ書6章9~10節には、こうあります。「行け、この民に言うがよい/よく聞け、しかし理解するな/よく見よ、しかし悟るな、と。この民の心をかたくなにし/耳を鈍く、目を暗くせよ。目で見ることなく、耳で聞くことなく/その心で理解することなく/悔い改めていやされることのないために。」(イザヤ6:9-10)
 とても難解な文章です。これはイザヤが預言者としての召命を受けたときの言葉なのですが、ここで言われていることは、「聞け、しかし理解するな」、「良く見よ、しかし分かるな」、「目と耳と心を鈍感にせよ」、「癒されることのないように」と言うことです。
 この神さまの言葉は、あまりに理不尽であり、不可解なものです。恐らくこのような意味だと思います。人は理解した、分かったと思ったその瞬間に、興味が薄れ、忘れてしまうものだから、安易に理解したとか、分かったと思うなと言うことだと思います。実際、牧師の説教でも、自分が十分に知っていることだと思っていることには、興味が湧かず、真剣に聞かなくなってしまうものです。「もう私には分かっている」という思いこそ、人間の高ぶりの典型の態度であり、とても危険なものです。それが自分の先入観・固定概念になり、それに私たちは囚われてしまうのです。これがどれ程、事実をゆがませ、真実を覆い隠し、本当のもの(神の真理)から目を反らせてしまうものか、私たちは忘れてはいけません。だから、私たちは安易に分かってはならないし、簡単に「赦し」や「癒し」を得ようとしてはいけません。

 イエスさまの譬えは「天の国の秘密」を教えるものです。簡単に理解できるものでもなく、安易に分かったと思ってもならないものです。それでは、そんなに難しいものなら私には分からないのではないかと思うかも知れません。でも、イエスさまの譬え話は、種まきの話、親、兄弟の話、金持ちと貧乏人、強盗に襲われた人、失われた羊、等々、私たちの日常生活そのものが題材となっています。私たちの日常生活の中にあるものが、天の国の秘密を知る鍵となって訳ですから、それはまさに私たちの日常生活が、天の国(神の国)と繋が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


 イエスさまは言われます。16節です。「しかし、あなたがたの目は見ているから幸いだ。あなたがたの耳は聞いているから幸いだ。」(16節)
 これは「あなたがたの目は、今、わたしを見ているから幸いだ。あなたがたの耳は、今、わたしの言葉を聞いているから幸いだ」とイエスさまは言われているのです。つまり、神の国は、見えない神さまの支配の有様でありますが、私たちの目には、それは隠されております。ただイエスさまの御言葉と歩みを見て(聞くこと)で、その背後にある見えない神の国の息づかいを知るのです。人は分かったと思ったとたんに忘れます。だから、いつも主イエス・キリストに戻って、また繰り返し聞くのです。譬え話は難しいから良いのです。いつも新しく主の言葉に聞くことができるからです。


 人間は、一旦記憶しても、復習などをしなければ、1時間後には半分近くのことを、1ヶ月後には8割のことを忘れてしまうそうです。これは、忘れることができる「能力」だとも言えます。なぜなら、嫌なことも辛いことも、1ヶ月経ったら8割のことを忘れられるのです。だから、どうにか私たちは今を生きられるのです。
 逆に言いますと、それでも「2割」は覚えている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この「2割の記憶」の中に、神さまから頂いた恵みがある人は幸いです。


 イエスさまの譬え話は、当時の人々の心に「2割の記憶」として確かに刻まれ、今を生きる私たちの心にも届いております。そこには神さまの御手、すなわち神の国がどのように伸ばされ、私たちのもとに訪れるかが、現れております。人の記憶は失われ、忘れる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神さまは一つひとつのすべてを覚えておられ、人の心に真の事柄を甦らせます。主イエス・キリストは十字架に付けられ、死んで葬られ、三日目によみがえられました。「忘れない」とは神さまの御手に命が甦り、再び繋げられることなのでしょう。


 「あなたがたの目は見ているから幸いだ。あなたがたの耳は聞いているから幸いだ」と、イエスさまは主を信じる人々を祝福されます。この祝福を心から感謝したいと思います。そして、時に神の言葉と主の譬え話の難しさに悩み躓くことがあっても、それを受け入れて神の国に与る喜びを感じていきましょう。


【2025년 8월 17일 주일예배(요약판)】

     “어려운 비유” 
                             마태복음 13장 10~17절


  오늘 성경 말씀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왜 비유를 사용해서 말씀하십니까”라고 묻는 장면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말씀하실 때 비유를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성경 속에 예수님이 하신 비유는 무려 31개나 나옵니다. 대표적으로는 ‘탕자의 비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포도원 품꾼의 비유’, ‘잃은 양의 비유’ 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일상적인 소재를 들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전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유는 겉보기에는 쉬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탕자의 비유’나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내용은 알겠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탕자의 형이라면 당연히 화가 날 것이고, 아침부터 일한 사람이 해 질 무렵 온 사람과 같은 품삯을 받는 것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예수님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10절)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11절입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11절)
  이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천국의 비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천국의 비밀’은 단순히 지적인 이해나 학문적인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곧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는 믿음으로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들’은 예수님을 의심하고 천국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가진 자, 곧 믿는 자에게는 더 큰 복이 주어지고, 가지지 않은 자, 곧 믿지 않는 자에게는 더 큰 의심과 실족이 주어진다고 하셨습니다.


  14~15절에서 예수님은 이사야서를 인용하시며,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지를 설명하십니다. 14절입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14-15절)
  이사야서의 원문(이사야 6:9~10)과 비교하면 표현이 조금 다릅니다. 이사야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을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데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이사야 6:9-10)
  이 말씀은 매우 난해합니다. 이사야가 선지자로 부름받을 때 주신 말씀인데,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보아도 알지 못한다”, “눈과 귀와 마음을 둔감하게 한다”,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한다”는 내용입니다.
  얼핏 보면 너무나 불합리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이런 뜻일 것입니다. 사람은 ‘이제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흥미를 잃고 곧 잊어버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섣불리 ‘이해했다’, ‘알았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목사님의 설교라도 ‘이건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고 여기면 진지하게 듣지 않게 됩니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인간의 교만한 태도의 전형이며, 위험한 것입니다. 이런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사실을 왜곡하고 진리를 가리고, 하나님의 진리에서 눈을 돌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이해했다고 여기거나, 값싼 ‘용서’와 ‘치유’를 가볍게 얻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천국의 비밀’을 가르칩니다. 결코 쉽게 이해되는 것도 아니고, 쉽게 깨달았다고 생각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어렵다면 나는 결코 알 수 없겠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비유는 씨 뿌리는 이야기, 부모와 형제 이야기, 부자와 가난한 자, 강도를 만난 사람, 잃은 양 이야기 등 우리의 일상 속 소재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천국의 비밀을 풀어 가는 열쇠가 주어진다는 것은, 곧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16절입니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16절)
  즉 “너희 눈은 지금 나를 보고 있으니 복이 있고, 너희 귀는 지금 내 말을 듣고 있으니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이지만, 우리의 눈에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심을 보고 들음으로써, 그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의 숨결을 알게 됩니다. 사람은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주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와 반복해서 들어야 합니다. 비유가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것입니다. 언제나 새롭게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한 번 기억해도 복습하지 않으면 1시간 뒤에는 거의 절반을, 한 달 뒤에는 80%를 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잊을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힘들고 괴로운 일도 한 달쯤 지나면 80%는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든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래도 20%는 기억 속에 남는다는 뜻입니다. 그 20%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있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당시 사람들의 마음 속에 ‘20%의 기억’으로 새겨졌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에도 전해집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손길, 곧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오는지가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의 기억은 사라지고 잊혀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기억하시고, 사람의 마음에 참된 것을 다시 일으키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손 안에서 생명이 다시 살아나고 연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라고 예수님은 주를 믿는 사람들을 이렇게 축복하십니다. 이 축복을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비유가 어려워서 고민하고 실족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기쁨을 누리며 살아갑시다.

カテゴリー:

投稿日:2025年08月17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