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年07月27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5年7月27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エフェソ(에베소서) 4章 22~24節
〇讃 頌 讃頌歌 19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39 (詩編95編 )
〇讃 頌 讃頌歌 263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마태복음)
12章 43~45節
〇説 教 「心の空白は危ない
(마음의 공백은 위험하다)」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288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6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5年 7月 27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心の空白は危ない」
マタイによる福音書 12章 43~45節
今日の聖書箇所では、「汚れた霊」の働きについてイエスさまは語られておりますが、イエスさまの言葉を正しく理解するためには、これまでの文脈からその意味を聞き取る必要があります。
まず、イエスさまがこの言葉を語られたのは、ファリサイ派の人々との対話の中だと言うことです。それは12章22節から始まる「ベルゼベル論争」であり、聖霊の働きが問題となっているわけです。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イエスさまを通して働かれる聖霊の働きを「悪霊の頭ベルゼベルの力」と見做し、イエスさまの御業による「しるし」も、また、イエスさまが語られた言葉も受け入れませんでした。
それに対し、イエスさまは「預言者のヨナのしるし」や「南の国の女王」の話を持ち出して、信仰にとって必要なことを教えられました。それが先週の聖書箇所(12章38~42ですね。信仰にとって必要なことは、確かな「しるし」ではなく、ヨナの言葉を神さまの言葉として受け止め、悔い改めたニネベの人々のように、また、一国の女王が遠い旅をしてまで「ソロモンの知恵(神の言葉)」を求めたように、神の言葉をひたすら求め、神の言葉を聞き、それを謙遜に受け止め、素直に悔い改めることです。そして、神さまの言葉に、自分の人生を懸けてみることが必要です。
それに対し、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律法を厳格に守り、宗教的な儀式を大切にしていたものの、その信仰は表面的なものであり、神の言葉を聞こうとする謙遜さに欠けておりました。また、彼らは他の人々のように汚れた者ではなく、すっかり清められて正しく生きていると思い込んでいる人たちです。そのために、彼らは、素直に神の言葉を聞けず、神さまの御心を理解することが出来ません。むしろ、彼らの心は「あらゆる不義、悪、むさぼり、悪意に満ち、ねたみ、殺意……」(ローマ1章29節以下参照)などの悪い思いで満ちていました。
イエスさまがファリサイ派の人々を批判されますので、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よっぽど悪い人間だと捉えがちですが、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誰よりも信仰熱心でした。毎日聖書を読んでおり、それこそ、暗記するほどにその言葉に習熟していました。それなのに彼らはイエスさまに躓き、神さまの御旨を理解出来ません。
それは何故かと言いますと、彼らの心が空白になっていたからです。
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神さまからの恵みを受けるには聖書を読み、律法を守ることだと信じておりました。それ自体は間違いではありません。確かに、彼らは律法を守り、表面的な行いは立派で清い生活を送っていました。しかし、彼らの心はきれいになりすぎて、空っぽになっていたのです。しかも、彼らは自らの行い、すなわち律法を守ることで、自分の心から悪霊を追い出していると思っていたのです。そこに神さまの霊が入ろうとしても入ることは出来ません。彼らは自分とは考えの違うものを「汚れたもの」として拒むからです。
彼らの心は空白のままです。でも、心の空白は何かで埋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のためにもっと汚れた霊が彼らの心に簡単に入り込むことが出来るのです。
45節に「この悪い時代」とありますが、これはイエスさまの時代だけを意味す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今の時代」でもあります。ですから、イエスさまの今日の御言葉は、ファリサイ派の人々にだけ語られたものではなく、「今の時代」に生きる私たちにも語っておられるのです。
この「今の時代」に対するイエスさまの警告は、教会の内でも外でも真剣に受け止めら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今の時代」を生きる私たちの心の空白を何によって埋めるのか、そして、どのように行動するかが問われているのです。
皆さんは、どのような思いで礼拝に出席し、牧師の説教を聞いておられるでしょうか。教会で行われる説教は一体何のために行われるのでしょうか。恵みを受けるため、とよく言われます。イエス・キリストにそこで出会って慰めを得るためとも言われます。それを説教者もよく心がけていて、力の及ぶ限りキリストの恵みと慰めを伝えたいと願ってもいます。けれども、説教を聞いて家に帰るとき、「ああ、今日の説教は良かった」とか「今日は慰めがなかった」などと話をしている時、私たちはニネベの人々のように神の言葉を聞いたのでしょうか。そもそも礼拝の初めから、神の言葉を是非自分の耳で聞きたいという思いで、南の国の女王のようにこの場へ向かって来たのでしょうか。
私たちの信仰生活というのは、無理に力んでするものではなく、もっと自由に私たちの心に聖霊が吹き込まれて、内からの促しによって、信仰生活を歩むものだと思います。けれども、いつしか私たちの言葉に「今の時代」の空虚さや軽薄さが現れるようになってはいないか、問いなおすことは必要です。
「今の時代」はイエスさまが言われる「悪い時代」と同じです。この話に出てくる「家」とは人の心を表しておりますが、二千年前も今も変わっておりません。単に悪いものを心から取り除くだけではなく、そこに神さまの霊を迎え入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私たちの心は、「空白」のままではいられません。何かで必ず満たされることが大切です。だからこそ、そこに神さまの聖霊が宿ることが大切なのです。
聖書は、「神の霊によって生きること」の大切さを繰り返し教えています。元ファリサイ派の人で、のちにクリスチャンとなったパウロはガラテヤの信徒への手紙5章16節でその大切さを語っています。
「霊の導きに従って歩みなさい。そうすれば、決して肉の欲望を満足させるようなことはありません。」(ガラテヤ5:16)
神さまの聖霊が私たちの心に満ちるとき、私たちは本当に新しく生き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ります。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悪霊が追い出されるときには、心が空き家となるのではありません。聖霊が住んでくださる宮となるのです。
私たちの心を神さまの聖霊で満たし続けるためには、日々の祈りと聖書の御言葉が欠かせません。ですから、神さまの御言葉である聖書を読み、祈り続けましょう。きっと、私たちの心は神さまの愛で満たされるでしょう。
それでも、私たちが一人で信仰を持ち続けるのは難しいことです。だからこそ、教会の交わりが必要です。
それから、良い習慣を身につけることも大切です。悪い習慣をやめるだけではなく、聖霊が結ぶ実に注意を払うことです。パウロは聖霊の結ぶ身についてこう語っています。
「霊の結ぶ実は愛であり、喜び、平和、寛容、親切、善意、誠実、柔和、節制です。これらを禁じる掟はありません。」(ガラテヤ5:22-23)
これらの実が自分の内に実っているか、いつも点検することが大切です。実りがないのを知って失望するためではなく、実りが豊に与えられるようにと聖霊の助けを謙虚に求めることが大切です。
今日は、「心の空白」は危険であることをお話しましたが、皆さんの心は今、何で満たされているでしょうか。
もし、心に空白を感じるなら、それをただ何かで埋めようとはしないで、神さまがその空白を埋めてくださるよにと祈り求めてください。そうすればどんな状況の中でも、揺るがない平安と喜びを持つ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ります。どうか神さまの霊が、あなたの心を豊かに満たしてくださいますようにとお祈りいたします。
【2025년 7월 27일 주일예배(요약판)】
“마음의 공백은 위험하다”
마태복음 12장 43~45절
오늘의 성경 부분에서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의 사역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이어져 온 문맥을 바탕으로 그 의미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배경은 바리새인들과의 대화 중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12장 22절부터 시작되는 이른바 “바알세불 논쟁”이며, 주된 논점은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를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으로 여겼고, 예수님의 기적과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과 “남방 여왕”의 이야기를 들어, 참된 믿음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지를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이 지난주 본문(마태복음 12장 38-42절)입니다. 믿음에 있어 중요한 것은 명백한 “표적”이 아니라, 요나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회개했던 니느웨 사람들처럼, 또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솔로몬의 지혜(즉 하나님의 말씀)를 구했던 여왕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구하고 그 말씀을 듣고 겸손히 받아들여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인생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종교적인 의식을 소중히 여기고 있었지만, 그들의 믿음은 외형적인 것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겸손함이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된 자’로 여기며 바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마음은 “모든 불의, 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와 살인과…”(로마서 1장 29절 이하 참고)와 같은 악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비판하셨다고 해서, 그들이 매우 악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바리새인들은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성경을 읽었고, 암송할 정도로 성경 말씀에 익숙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께 걸려 넘어졌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의 마음이 공허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읽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길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것 자체는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그들은 율법을 지키며 겉으로는 바르고 깨끗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너무 정결하게 비워진 나머지, 텅 비어버린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행위, 즉 율법을 지킴으로써 악한 영을 쫓아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오려고 해도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것은 ‘더러운 것’으로 여기고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공허한 상태였고, 그 공백은 반드시 무언가로 채워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사악한 귀신이 쉽게 그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45절에 나오는 “이 악한 세대”란 표현은 예수님의 시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이 시대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단지 바리새인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이 경고는 교회 안에서든 교회 밖에서든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금 이 시대’에서, 우리 마음의 공백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그리고 그에 따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하게 묻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예배에 참여하고 계신가요? 또 목사의 설교를 듣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흔히 은혜를 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만나 위로를 얻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물론 설교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위로를 전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설교를 듣고 돌아갈 때 ‘오늘 설교는 참 좋았다’거나 ‘오늘은 별로 위로가 없었네’ 같은 말로 끝나버린다면, 우리는 니느웨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이 아니라, 단지 감상하고 지나간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예배에 오면서, 남방 여왕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꼭 듣고자’ 왔던 것일까요?
우리의 신앙생활은 억지로 애써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으로 불어오셔서, 내면으로부터 우러나는 자극을 통해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의 말과 행동 속에 ‘지금 이 시대’의 공허함과 가벼움이 스며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악한 세대”는 지금 이 시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집”은 바로 인간의 마음을 뜻합니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악한 것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마음 안에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모셔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공허한 상태로 남겨두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무언가로 채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바로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거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으로 사는 삶”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이었다가 그리스도인이 된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라디아서 5:16).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마음에 충만히 임하실 때, 우리는 진정으로 새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악한 영이 쫓겨날 때, 그 마음은 단지 빈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우리 마음을 항상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기도와 말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기도를 계속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혼자서 신앙을 지켜나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의 교제가 꼭 필요합니다.
또한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나쁜 습관만 끊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가 맺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바울은 성령의 열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서 5:22-23).
이 열매들이 내 안에 맺히고 있는지를 늘 점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실이 없는 것을 알고 절망하기 위함이 아니라, 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달라고 성령의 도우심을 겸손히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은 ‘마음의 공백은 위험하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습니까?
만일 공허함을 느낀다면, 그 공백을 그저 아무 것으로나 채우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 공백을 채워주시도록 기도하며 구하십시오.
그러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의 마음을 풍성하게 채워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