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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年07月13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5年7月13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コロサイ(골로새서) 3章 15~16節
〇讃    頌    讃頌歌 14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35 (詩編84編 )
〇讃    頌    讃頌歌 250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마태복음)
         12章 33~37節
〇説   教    「愛のある言葉を語る
          (사랑이 있는 말을 말하다)」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295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6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5年 7月 13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愛のある言葉を語る」
         マタイによる福音書 12章 33~37節


 イエスさまは、人の心と言葉がちょうど木と実の関係にあると、譬えておられます。33節です。木が良ければその実も良いとし、木が悪ければその実も悪いとしなさい。木の良し悪しは、その結ぶ実で分かる。」(33節)


 そして、イエスさまは聖霊を冒涜したファリサイ派の人々を容赦なく批難しています。彼らを「蝮の子ら」(34節)と言い、「あなたたちは悪い人間であるのに、どうして良いことが言えようか」(34節)と言われ、あなたたちは良い実を結ばない悪い人間だ、と断定しておられます。

 それから35節では、「善い人は、良いものを入れた倉から良いものを取り出し、悪い人は、悪いものを入れた倉から悪いものを取り出してくる」と、善い人の心は良いもので満たされているが、悪い人の心は悪いもので満たされていると語られました。


 「倉」というのは、「宝」とか「富」を蓄えて置く場所のことですが、6章20節にありました「富を天に積みなさい」というその「富」を蓄えるところですね。ですから、善い人の心は天の神さまのもとにあって、そこから幾らでも良いものを持ち出すことが出来ると言われているのです。
 パウロは、コリントの信徒への手紙第二の4章で、キリストを信じる私たちは、土の器に宝を収めている、と言い、その宝とは、イエス・キリストに顕わされた神の栄光を悟る光だと言っています。つまり、聖霊のことですね。土の器である人間の心に、宝である聖霊の恵みを収めるていることが言われています。
 ですから、35節でイエスさまが言われる「善い人の倉」には、天から注がれた聖霊の恵みが満たされていて、その心の内に蓄えられた神の知恵と知識が、聖霊の実りとしての良い言葉に溢れていることを意味しています。
 そして、「善い人は、良いものを入れた倉から良いものを取り出す」というのは、聖霊の恵みによって可能になる話です。ですから、この善い言葉を生みだすのは聖霊のお働きなのであって、これを拒んだ人々のような人のところでは善い実は期待できない、ということです。


 これは単純に、キリスト者は悪い言葉を吐かない、未信者の方々は善い言葉を語ることが出来ない、ということではありません。一般的な善し悪しの話でもありません。神さまの目に適う善悪の問題なのです。
 36節には、「人は自分の話したつまらない言葉についてもすべて、裁きの日には責任を問われる」とあります。「つまらない言葉」とは、「無益な言葉」「不注意な言葉」とも翻訳される言葉ですが、直訳しますと「怠惰な言葉」です。つまり、人の口から出る悪い言葉とは、聖霊の働きに対して怠惰な言葉になります。神さまの願っていることを果たさないのです。逆に、善い言葉とは、私たちの耳に心地いいかどうかが基準ではなく、きちんと神さまの御旨の適った言葉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ある注解者は、「つまらない言葉」とは、「愛の業を生みだすことのないような言葉」だと言っています。善い言葉は聖霊に用いられて人の内に愛を育みます。


 このように、自分の言葉に対する人の責任は重大であるとイエスさま語られておられます。誰もが自分の語った言葉の責任を、最後の審判の時に問われます。
 人に悪口を言った人は、時が経つと、そのことをすっかり忘れるかもしれません。でも、言われた方は、いつまでも忘れないと思います。もしかしたら、言われた人もいずれ忘れてしまうかもしれません。でも、神さまは決して忘れることなく、裁きの日に、その言葉について、責任を問われるのです。


 私たちの言葉というのは、私たちの心にあるものが漏れ出たものでもあります。今日の御言葉の中では、心は清らかだけれども、言葉は悪くて仕方がないとか、心は真っ黒だけれども言葉では綺麗事を言うというような、心と言葉の捻じれた関係については問題にしていません。つまり、神さまが人に求めておられることは、善い心から良い言葉が出てくるという真っすぐな両者の関係です。それに適わない者はすべて、終りの裁きの前に立たされると言っているのです。


 ノアの洪水の後に、神さまはノアに「人が心に思うことは、幼い時から悪いのだ」(創8:21)と言われました。これは性悪説を言っているのではなくて、罪に支配された人間は、日毎に善いものを願いますけれども、悪い実を実らせてしまう木のような存在であることを言っているのです。そして、人は自分で善い言葉を生みだしたから、それで正しいと認められる訳ではないのです。罪に支配された私たちの心には、善いものと悪いものが入り混じっています。神さまはそのような私たちを御覧になっていて、私たちが悪い木でありながらも切り倒さずに生かすことにしてくださいました。そして、私たちのためにキリストが十字架にかかってくださって、罪の贖いを果たしてくださいました。ですから、私たちは、そのキリストによって神さまに義と認めていただきます。悪い実を結ぶ木なのですけれども、それを活かしておいて、良い実を結ぶように特別な手入れをしてくださっておられるのです。


 良い実を結ぶようになるのは、信仰者の内に働く聖霊によるのです。信仰を通して私たちに約束されているのは、私たちは元々悪い木であってもキリストに接木された善い木となり、必ず良い実を結ぶことが出来ることです。私たちの言葉についての責任は、もはや裁きを恐れて沈黙したり、言葉を美しく飾ったりす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聖霊の働きを願いながら、心と言葉を一つにして神さまにささげることが、私たちに求められている務めです。


 言葉の罪については、マタイによる福音書15章18節でもイエスさまは言われており、次の19節では「悪意、殺意、姦淫、みだらな行い、盗み、偽証、悪口」と具体的な例が挙げられております。また、使徒パウロも手紙の中で、言葉と心から出てくる悪い実について語っております。例えば、ローマの信徒への手紙1章29~31節でこう言っています。「あらゆる不義、悪、むさばり、悪意に満ち、ねたみ、殺意、不和、欺き、邪念にあふれ、陰口を言い、人をそしり、神を憎み、人を侮り、高慢であり、大言を吐き、悪事をたくらみ、親に逆らい、無知、不誠実、無情、無慈悲です。」(ローマ1:29-31)


 パウロが具体的に人間の罪について語るのは、私たちが自分の言葉に注意深くなるためであり、自らの心を吟味させるためです。
 コロサイの信徒への手紙3章15節に、「キリストの平和があなたがたの心を支配するようにしなさい」とあります。同じくコロサイの信徒への手紙3章16節には、「キリストの言葉があなたがたの内に豊かに宿るようにしなさい」ともあります。
 「キリストの言葉が心に宿る」というのは、キリストの言葉が私たちの心を支配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


 インドのスラム街で貧しい人々に尽くしたシスター、マザー・テレサはこのようなことを言いました。「思考に気をつけなさい、それはいつか言葉になるから。言葉に気をつけなさい、それはいつか行動になるから。行動に気をつけなさい、それはいつか習慣になるから。習慣に気をつけなさい、それはいつか性格になるから。性格に気をつけなさい、それはいつか運命になるから。」


 私たちの心にあることが言葉になります。その言葉がいつか行動となり、習慣となります。そして、知らないうちにそれが性格となり、ついには運命となります。その最初のステップである自分の心を絶えず見つめ直しながら、神さまの愛と赦しに感謝して歩んでいくのです。自分の口から嘘を取り除き、相手を思いやり、悔い改めて祈る信仰を持ちながら、愛の言葉を語れるように努力するのです。私たち自身の力では出来ないかも知れません。しかし、聖霊なる神さまが助けてくださいます。そのために、私たちの心の倉を、神さまの言葉で満たして行きましょう。そして、いつか私たちの言葉が、人の心を温め、人を生かす言葉として、神さまが用いて下さることを信じて、愛の言葉を語りながら歩んで行きましょう。


【2025년 7월 13일 주일예배(요약판)】

      “사랑이 있는 말을 말하다” 
                               마태복음 12장 33~37절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과 말이 마치 나무와 열매의 관계와 같다고 비유하셨습니다. 33절입니다.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모독한 바리새인들을 가차 없이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34절)라고 부르시고, “악한 너희가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34절)라고 말씀하시며, 35절에서는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라고 하십니다. 곧, 선한 사람의 마음은 선한 것으로 채워져 있고, 악한 사람의 마음은 악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창고’는 보물을 쌓아두는 장소, 즉 ‘보화’를 가리키는데요, 마태복음 6장 20절에서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하신 바로 그 보물을 두는 곳입니다. 그러니 선한 사람의 마음은 하늘에 속해 있고, 그 안에는 하나님의 좋은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 안에서 얼마든지 선한 것을 꺼내 쓸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4장에서 “우리는 질그릇에 이 보배를 가졌으니”(고후 4:7)라고 하며, 그 보배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즉 성령을 뜻한다고 말합니다. 질그릇 같은 인간의 마음에 성령이라는 보배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35절에서 말씀하신 “선한 사람의 창고”에는 하늘로부터 부어진 성령의 은혜가 가득 차 있으며, 그 마음에 쌓인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성령의 열매로서 좋은 말로 흘러나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느니라”는 말은, 바로 성령의 은혜로 가능한 일입니다. 이 선한 말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 성령이시기에, 성령을 거부한 자들에게서는 선한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그리스도인은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비신자들은 좋은 말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도덕적인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눈에 합당한 선과 악의 문제입니다.
  3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여기서 ‘무익한 말’은 ‘쓸모없는 말’, ‘부주의한 말’이라고도 번역되며, 문자적으로는 ‘게으른 말’이라는 뜻입니다. 즉,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나쁜 말은 성령의 역사에 게으르고 무감각한 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않는 말,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는 말이기에 그렇습니다.
  반대로 ‘선한 말’은 단지 우리가 듣기 좋고 기분 좋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주석가는 “무익한 말”이란 “사랑의 행위를 낳지 못하는 말”이라고 설명합니다. 선한 말은 성령에 의해 사용되어 사람의 마음속에 사랑을 길러냅니다.


  이처럼, 사람은 자신의 말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나 자신이 한 말에 대해 마지막 심판 날에 책임을 지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했던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들은 사람은 그 말을 쉽게 잊지 못합니다. 혹은 시간이 지나 결국은 들은 사람도 잊어버릴지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잊지 않으시고, 심판의 날에 반드시 그 말에 대해 책임을 물으십니다.


  우리의 말은,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이 흘러나온 결과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마음은 깨끗하지만 말은 나쁘다’거나, ‘마음은 악하지만 입으로는 좋은 말을 한다’는 식의 마음과 말의 불일치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선한 마음에서 선한 말이 나오는 정직하고 일치된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태에 이르지 못한 자는 누구든지 결국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고 하십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 8:21). 이는 인간의 본성이 본래 악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죄에 지배당한 인간이 날마다 선을 바라면서도 결국 악한 열매를 맺는 존재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좋은 말을 했다고 해서 곧바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선한 것과 악한 것이 뒤섞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보시고도, 나무를 찍어버리지 않고 살려 두시며,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악한 나무이던 우리를 좋은 열매를 맺도록 특별한 손질을 해 주신 것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은, 믿는 이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께서 가능하게 하시는 일입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약속된 것은, 우리가 본래는 악한 나무였지만,
그리스도에 접붙여져 선한 나무가 되었고,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의 책임이란, 이제는 심판을 두려워하여 침묵하거나 말만 그럴듯하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하심을 간구하며, 우리의 마음과 말을 하나로 모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말의 죄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15장 18절에서도 예수님께서 언급하시고, 이어서 19절에서는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비방” 등의 구체적인 예도 제시하십니다. 사도 바울도 그의 편지들에서 말과 마음에서 비롯되는 악한 열매들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합니다. 예를 들어 로마서 1장 29~31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꾀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1:29-31)


  바울이 이처럼 구체적으로 인간의 죄를 열거한 이유는, 우리가 자신의 말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에서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하며, 16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이 거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마음에 거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인도의 빈민가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섬긴 마더 테레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각을 조심하세요, 그것은 언젠가 말이 됩니다. 말을 조심하세요, 그것은 언젠가 행동이 됩니다. 행동을 조심하세요, 그것은 언젠가 습관이 됩니다. 습관을 조심하세요, 그것은 언젠가 인격이 됩니다. 인격을 조심하세요, 그것은 언젠가 운명이 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 말로 드러나고, 그 말이 행동이 되며,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성품이 되고, 결국 인생 전체를 결정짓게 됩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자기 마음을 항상 돌아보며,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에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입술에서 거짓을 버리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회개하며 기도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마음의 창고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가야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의 말이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생명을 살리는 말로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될 것을 믿으며, 사랑의 말을 하며 걸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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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日:2025年07月13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