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説 教ページ

2025年07月06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5年7月6日 創立記念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マタイによる福音書(마태복음) 28章 19~20節
〇讃    頌    讃頌歌 12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82 (フィリピ2章 )
〇讃    頌    讃頌歌 600
〇聖書奉読    コロサイの信徒への手紙(골로새서)
         3章 12~17節
〇説   教    「愛の服を着なさい (안사랑의 옷을 입으라)」
〇祈  祷
○聖 礼 典     聖餐式
〇讃   頌   讃頌歌 301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6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5年 7月 6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愛の服を着なさい」
           コロサイの信徒への手紙 3章 12~17節


 今日は、広島教会創立77周年記念礼拝として主日礼拝を守っておりますが、改めて、教会とは一体何なのか、教会の原点を少し考えたいと思います。


 今日の御言葉の12節に「あなたがたは選ばれ、聖なる者とされ、愛されているのです」(12節)とあります。
 教会というのは、主の御名のもとに人々が集ったところであり、滅びるしかなかった罪人の私たちが、主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によって罪赦され、神さまに愛される子どもとされたという、この福音を聞き、信じた者たちが、喜びと感謝をもって礼拝を献げ、恵みの福音を誰かに伝えていくのです。それが教会です。ですから、教会の会堂というものも必要なわけではありません。「福音に堅く立つ」ということがもっとも大切なことであり、それが教会の原点であるわけです。


 16節をご覧下さい。「キリストの言葉があなたがたの内に豊かに宿るようにしなさい。知恵を尽くして互いに教え、諭し合い、詩編と賛歌と霊的な歌により、感謝して心から神をほめたたえなさい。」(16節) これが教会のあり方であり、教会の礼拝なのです。
 そして、この「キリストの言葉を私の内に宿す」ために、12節から私たちの「教会生活」について、勧告がなされています。12節の冒頭に「あなたがたは」と書かれている通り、私たちは個別に信仰生活を送るのではなく、信仰者が集まる教会を我が家として信仰生活を送るのだということが勧告の前提になっています。


 さて、その内容を見て行きたいと思いますが、12節の後半に、「憐れみの心、慈愛、謙遜、柔和、寛容を身につけなさい。互いに忍び合い、責めるべきことがあっても、赦し合いなさい。主があなたがたを赦してくださったように、あなたがたも同じようにしなさい」(12-13節)とあります。
 この「憐れみの心、慈愛、謙遜、柔和、寛容」というのは、自分が努力して、訓練して、自分の能力として獲得し、体現するというものではありません。もちろん、こういったものを身につける必要はあるのですが、自分の努力で得ることが出来るものでもないのです。なぜなら、私たちの内にある罪がそれを邪魔するからです。私たちにはどこかに自分中心の考えがあり、何かあるごとに妬みや嫉みが出てきます。しかも、なかなか素直になれません。そのために他者を攻撃するということもあります。そのために人の意見に耳を傾けようとしません。それが私たちです。それを表に出すのか出さないのかの違いはあるでしょうが、素の私たち、本来の私たちの心の中というのは、皆同じです。
 そのために、ある人は、自分の信仰のなさを嘆いたり、自分自身を裁いてしまいます。それが信仰に躓くということです。


 では、どうすれば良いのか。14節でこう言っています。「愛を身につけなさい」(14節)。
 「愛を身につける」というのは、愛を服のように着るということです。そして、その「愛」というのは、私たちの中に生まれた愛ということではありません。この「愛」はキリストの愛です。私たちのために十字架にお架かりになるほどの愛です。私たちの罵りや悪意さえもすべて受け入れ、それでも赦し、ひとり十字架の道を歩まれたキリストの愛です。この愛を私たちは着るのです。


 今日の御言葉は、このキリストの愛を着なさいと私たちに勧めています。いえ、先に12節で言われていたように、私たちは「神に選ばれ、聖なる者とされ、愛されているのですから」、もうすでに、キリストの愛の服を着ているのです。キリストの愛の服は目に見え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が、私たちにはキリストの愛の服を着ているという自覚が必要なのです。

 人間は裸で生まれて来ます。親はその裸の子に服を着せます。親が子どもに初めてしてあげることが、「服を着せる」という行為なのです。もちろん、お乳を飲ませるとか、
洗ってあげるということもありますが、この「服を着せる」のは、人間の親だけがしている行動なのです。
 旧約聖書で「服を着せる」というのは「保護する、守る」という喩えでもあります。創世記の初めに、罪を犯し、裸でエデンの園を追われたアダムとエバに、神さまは革の着物を作って、彼らに着せられました。新約聖書においても、「放蕩息子の譬え」の中で、心身ぼろぼろになって家に戻ってきた息子に、父親がしたことは、まず走り寄って「抱きしめる」こと。そして、いち早く「良い服」を着せることを召使に命じます。なぜ父親はそんな行動を取ったのかと言いますと、まず何よりも父親はこの息子を保護しようとしたからです。その象徴が「良い服」を着せることだったのです。


 皆さんは、今、「キリストの愛の服」を着ています。それがどれほどもったいないことかお分かりになるでしょう。こんな私が「キリストの愛の服」を着ている。心から感謝の思いが溢れます。そのために15~17節に「感謝」という言葉が三度も出てきます。


 皆さん、私たちがもっと「キリストの愛の服」を着させてもらっているということを意識するなら、私たちの教会の交わりももっと違ったものになるでしょう。最初は、何だかぎこちないと思います。皆さんが、自分一人で服を着られるようになったのを、また、靴紐を結べるようになったのを覚えていますか。誰も覚えてないでしょう。人は成長して行く中で、当然出来るようになると思い込んでいます。でも、子どもの頃、何度も親に叱られながら、失敗しながら少しずつ出来るようになったことを忘れています。
 それが今では当然のことにように出来るようになっています。それと同じように、「キリストの愛の服」を着ることも、失敗しながら少しずつ身につけていくものなのでしょう。


 私は、主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から注がれる愛というのを肌着のようなものであると考えています。それは表面からは見えません。でも、それは見えないだけで、身体に肌着のようにぴったりとついているのです。皆さんは自分好みの肌着というものがあるでしょう。肌着が気持ち悪いと、落ち着きません。
 イエスさまが十字架に付けられた時、血を流し痛みに呻く時に、その十字架を前にして、その時は誰もそこに注がれている深い愛を、さらに神の復活の命や力を思う人はいませんでした。しかし、肌着のように見えない愛が、私たちの心と体を温めているのです。


 このキリストの愛の暖かさを、もう一度思い起こしながら、皆さんとご一緒に創立記念を喜びつつ、キリストの愛を多くの人に伝えて行きたいと願います。

 

【2025년 7월 6일 주일예배(요약판)】
 
    “사랑의 옷을 입으라” 
                             골로새서 3장 12~17절


 오늘은 히로시마 교회 창립 77주년 기념 주일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빌어 ‘교회란 과연 무엇인가’, 교회의 출발점,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의 12절에는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 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란 주님의 이름 아래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본래 멸망받을 수밖에 없던 죄인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불림을 받은 자들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응답하여, 기쁨과 감사로 예배를 드리고, 이 은혜의 복음을 다른 이에게 전하는 공동체,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꼭 건물(예배당)이 있어야 교회인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 위에 굳게 서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교회의 본질이요, 출발점입니다.


  1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이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 3:16). 이 말씀이 바로 교회의 모습이며, 예배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하기” 위해 12절 이하에서는 우리 교회 공동체의 삶에 대한 권면이 이어집니다. 12절은 “너희는”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하는데, 이는 우리 각자가 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이 모인 공동체로서 ‘교회’를 나의 집처럼 여기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기본임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내용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2절 후반부터 13절까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 3:12-13).
  이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은 단순히 노력이나 훈련으로 내 능력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런 성품을 갖추는 것은 중요하지만, 우리의 힘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있는 ‘죄’가 그것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마음이 있고, 쉽게 시기하거나 질투합니다. 솔직해지는 것도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고, 남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기도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는 있어도, 우리 안의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어떤 이들은 자신의 신앙 없음에 절망하고, 스스로를 정죄하며 신앙에 걸려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4절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사랑을 ‘더한다’, 혹은 ‘입는다’는 것은 옷을 입는 것처럼 사랑을 내 삶에 입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우리 안에서 나온 사랑이 아닙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 사랑. 우리의 조롱과 악의조차 모두 받아내시고, 그래도 용서하시며 외로운 십자가 길을 끝까지 걸어가신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입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바로 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으라’고 권면합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이미 우리는 12절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사랑하신” 존재이기에, 이미 그리스도의 사랑의 옷을 입은 자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옷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 사랑의 옷을 입었다는 자각과 인식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벌거벗은 채 태어납니다. 부모는 그런 아이에게 제일 먼저 옷을 입혀줍니다. 물론 젖을 먹이거나 씻겨주는 일도 있지만, ‘옷을 입혀주는 것’은 인간 부모만이 하는 특별한 행위입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옷을 입힌다는 것이 ‘보호한다’, ‘지켜준다’는 의미의 비유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창세기에서도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에덴에서 쫓겨날 때, 하나님께서는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주셨습니다. 신약에서는 탕자의 비유에서, 방탕하다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달려가 끌어안고 좋은 옷을 입히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왜일까요? 바로 그 아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옷은 보호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지금 “그리스도의 사랑의 옷”을 입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런 나 같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가 솟아납니다. 그래서 15절에서 17절까지 ‘감사’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더 깊이 의식하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교회 공동체의 교제도 훨씬 달라질 것입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서툴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어릴 때 혼자 옷 입는 법이나 신발 끈 묶는 법을 배운 기억이 있으신가요? 아마 대부분 기억하시지 못할 겁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은 수많은 실패와 부모의 꾸중을 거쳐 배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사랑의 옷을 입는 것도 실수하면서, 때로는 넘어지면서, 점점 익혀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속옷처럼 생각합니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몸에 꼭 맞아 붙어 있는 것처럼, 사랑도 그렇게 우리 속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맞는 속옷을 고르듯이, 그 사랑도 내게 꼭 맞는, 위로가 되는 사랑입니다. 편하지 않으면 불편해서 어쩔 줄 모르듯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피 흘리시며 고통 가운데 계셨지만, 그 앞에서 그 사랑과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을 깨달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보이지 않는 사랑이, 지금 우리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있습니다.


  오늘 창립기념일 예배를 드리며, 이 따뜻한 사랑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감사함으로, 우리 또한 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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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日:2025年07月06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