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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年06月08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5年6月8日 聖霊降臨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ヨハネによる福音書(로마서) 14章 16~17, 26節
〇讃    頌      讃頌歌 42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136 (聖霊降臨② )
〇讃    頌      讃頌歌 190
〇聖書奉読    ルカによる福音書(마태복음)
         11章 1~13節
〇説   教      「聖霊を求めよ
           (주님의 탄식과 신음)」
〇祈  祷
○聖 礼 典        聖餐式
〇讃   頌   讃頌歌 196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6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5年 6月 8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聖霊を求めよ」
                    ルカによる福音書 11章 1~13節


 今日の聖書箇所は、ある弟子がイエスさまに「どのように祈れば良いのか教えてください」と言ったところ、イエスさまは「主の祈り」を教え、譬えを用いながら、何を求めて祈るのかを教えてくださっています。


 「主の祈り」については、皆さん良くご存じだと思いますが、何を求めて祈るのかについては、様々ご意見があるかと思います。自分や家族、あるいは親しい友人が病を患っていれば、その癒しを祈り求めるでしょう。また、家庭の平安、幸せを求めることもあるでしょうし、仕事の成功を求めたり、物質的な豊かさを求めることもあるでしょう。それが私たちの持つ素直な願いです。


 けれども、求めたことが必ずその通りに実現するとは限りません。いえ、むしろ求めたとおりにならないことの方が多いかも知れません。事が重大であるほど、また私たちの力が及ばないものであるほど、求めた通りのものは与えられず、私たちは現実の厳しさや人生の悲しみを味わうことになります。だとしたら、求めたのに与えられず、祈りは聞かれ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しょうか。いいえ、そうではないのです。
 その時、私たちはイエスさまから求められるのです。「探しなさい」と。父なる神さまが、あなたに与えてくださったものは何か、探すことを求められるのです。


 イエスさまはここで一つの例え話を語れました。このような話です。
 ある夜更け、しきりに戸を叩く音に目が覚めました。門を開けると、そこには旅姿の旧友が立っています。聞けば、長旅の途中に立ち寄ったとのこと。何か出してあげようにも心づもりがなく、何もありません。
 急いで近所に走り、寝静まったある家の戸を恐る恐る叩いてお願いした。「友よ、パンを三つ貸してください。旅行中の友達が私のところに立ち寄ったが、何も出すものがないのです」(5-6節)。すると家の中から迷惑そうな声が聞こえてきます。「面倒をかけないでください。もう戸は閉めたし、子どもたちは私のそばで寝ています。起きてあなたに何かあげるわけにはいきません」(7節)。

 もし、私たちがパンを借りに行った人の立場に立ったら、この返事をどう受け止めるでしょうか。事情があるとはいえ、真夜中に人に食べ物を借りに行くのは非常識なことです。当然、断られても仕方がないと引き下がろうとするでしょう。


 これに似た引け目を「主の祈り」を祈りながら感じることがあります。「私たちの罪を赦してください、私たちも自分に負い目のある人を、皆赦しますから」(4節)という個所です。赦し難いことをされた人を前にすると、赦せない自分がいることに気づかされます。ですから、そう簡単に「皆赦しますから」とは祈れなくなり、戸惑いというか、引け目というものを感じます。
 神の独り子イエスの命という途方もない犠牲によって赦された私たち。にもかかわらず、その自分がどこまででも人を赦そうとはしない。そういう自分がこの祈りを祈ることはとうていできないと、諦めようとするのは自然なことです。


 しかし、イエスさまは、そういう私たちの常識を覆す、思いがけないことを言われました。8節です。「しかし、言っておく。その人は、友だちだからということでは起きて何かを与えるようなことはなくても、しつように頼めば、起きて来て必要なものは何でも与えるであろう。」(8節)
 イエスさまは、諦めようとする私たちに待ったをかけておられるのです。「引き下がるな、祈り続けよ」と。そして、言われました。「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与えられる。探しなさい。そうすれば、見つかる。門をたたきなさい。そうすれば、開かれる。」(9節)


 口にすることが苦しいその祈りを、それでも祈り続けて生きていく時、天の父はそれを必ず開いてくださると言うのです。祈ることが出来なくなったその地点こそが、実は主の祈りを真に祈って生きる出発点なのです。
 そして、祈ることが出来なくなったその地点で、苦闘しながら祈り続ける時に、与えられるもの、それが聖霊なのです。


 11節を見てください。「あなたがたの中に、魚を欲しがる子供に、魚の代わりに蛇を与える父親がいるだろうか。また、卵を欲しがるのに、さそりを与える父親がいるだろうか。このように、あなたがたは悪い者でありながらも、自分の子どもには良いものを与えることを知っている。」(11-13節)
 そのとおりです。ならば「まして天の父は求める者に聖霊を与えて下さ」らないはずはないと、イエスさまは言われました(13節)。


 では、なぜ、求める私たちに与えられるのものが、聖霊なのかと言いますと、それは、主の祈りを実現する主体は、私たち自身ではなく、聖霊だからです。イエスさまを通して主の祈りを与えてくださった神さまは、祈る私たちに聖霊として臨み、ご自身の御力でその祈りを私たちの上に実現して下さるのです。


 「主の祈り」というのは、どの一言をとってみても、私たちから自然に出てくるものはありません。イエスさまにこう祈れと言われて、はじめて祈ることが出来る祈りです。しかも、そうして与えられて見れば、これこそが私たちが祈るべき本当の祈りであることがわかります。
 神さまに何を求め、祈ればいいのか、私たちは何も知りませんでした。それを知っておられた、ただ一人のお方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が、一つひとつ教えてくださり、その祈りを聖霊が必ず実現すると約束して下さったのです。


 ですから、皆さん、私たちは、祈ることをやめてはいけません。聖霊の恵みを祈り求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たとえ、主の祈りの一言一言に立ち止らざるを得ない今日であっても、それでも祈って、明日に向かわねばならないのです。そのために「聖霊を下さい」と祈るのです。


【2025년 6월 8일 주일예배(요약판)】

     “성령을 구하라”  
              누가복음 11장 1~13절


  오늘의 성경 말씀은,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요청하자,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고, 이어서 비유를 들어 무엇을 구하며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는 장면입니다.


  ‘주기도문’은 많은 분들이 잘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할 때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자신이나 가족, 또는 친한 친구가 병에 걸렸다면, 당연히 그 치유를 구하게 될 것입니다. 또 가정의 평안이나 행복을 구하기도 하고, 일이 잘 되기를 바라며 기도하거나, 물질적인 풍요를 구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솔직한 바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구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니, 오히려 구한 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그 일이 너무 중요하거나, 우리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일수록,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고, 현실의 냉혹함이나 인생의 슬픔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구했지만 받지 못했다는 것은 기도가 들리지 않았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때, 오히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찾으라”고 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을 설명하시기 위해,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밤,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문을 열어보니, 멀리서 여행하던 옛 친구가 방문해 있습니다. 여행 도중 들렀다고 말하지만,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내어줄 음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급히 이웃집으로 달려가, 밤중에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며 부탁합니다. “벗이여, 떡을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을 것이 없노라”(5-6절).
  그러자 안에서 귀찮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7절).


  이 상황에서 우리가 떡을 빌리러 간 사람의 입장이라면, 이 대답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사정이 있다고는 해도, 한밤중에 누군가에게 음식을 빌리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입니다. 그러니 거절당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물러서고 싶어질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주기도문을 드릴 때도, 이와 비슷한 마음의 부담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4절), 이 구절을 기도하다 보면, 과거에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 사람을 진심으로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라는 이 기도를 쉽게 기도할 수 없게 되고, 기도하면서도 마음이 걸리고, 자신이 기도를 드릴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께서 자기 생명을 희생하시기까지 우리를 용서해 주셨지만, 정작 우리는 끝까지 다른 사람을 용서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우리 자신이 이 기도를 드리는 것이 옳은가, 도무지 기도할 수 없겠다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8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8절).
  예수님은 포기하려는 우리를 향해, “잠깐, 물러서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계속 기도하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9-10절).


  기도하는 것이 괴롭고 힘들지라도, 우리가 계속해서 기도를 이어갈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문을 열어 주십니다. 기도가 막히고, 더 이상 기도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그 자리, 바로 그 자리가 우리가 진심으로 주님의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과 함께 걷기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눈물과 고통 가운데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고 붙들고 씨름할 때, 그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바로 성령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절입니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11-13절).


  그렇다면, 왜 우리가 구할 때 주어지는 것이 바로 성령일까요? 그 이유는, 주님의 기도를 이루시는 분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드리는 우리 안에 성령으로 임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기도를 우리 삶 가운데 이루어 가십니다.


  ‘주기도문’은 어느 한마디도 우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기에, 비로소 우리는 이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를 받아들이고 바라보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심으로 드려야 할 기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해야 할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아시고 계신 유일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나하나 가르쳐 주셨고, 그 기도를 반드시 이루시는 분으로 성령님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는 기도를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은혜를 구하며,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비록 오늘, 주기도문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멈추게 되는 날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일을 향해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기 위해, “성령을 주옵소서”라고 간절히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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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日:2025年06月08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