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説 教ページ

2025年05月11日 野外礼拝 式順・説教

2025年5月11日 主野外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イザヤ書(이사야) 55章 8~9節
〇讃    頌    讃頌歌 569
〇祈   祷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마태복음)
         10章 26~31節
〇説   教    「一羽の雀 (한 마리의 참새)」
〇祈  祷
〇献    金   
〇感謝祈祷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478
〇祝   祷


※ 今日は竜王公園にて、野外礼拝を行いました。
  説教映像をはありません。


【 2025年 5月 11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一羽の雀」
                  マタイによる福音書 10章 26~31節


 弟子たちは汚れた霊を追い出し、あらゆる病気や患いをいやす権能をイエスさまから与えられ、イスラエルの家の失われた羊のところへとイ福音を宣べ伝えるために遣わされますが、そこには多くの困難や迫害が予想されます。そのため、イエスさまは、改めて、弟子たちに「恐れるな」と語ります。26節「人々を恐れてはならない」(26節)。
 この「人々」というのは、「体は殺しても、魂を殺すことのできない者ども」(28節)です。そのような者たちを恐れるのではなくて、「魂も体も地獄で滅ぼすことのできる方を恐れなさい」(28節)と言われます。でも、これは自分を迫害する人々も怖いけれども、魂も体も滅ぼすことができる神さまをもっと怖がりなさいというふうにも聞こえます。神さまの方がずっと恐ろしいのだから、神さまの言うことを聞きなさい、という感じです。でも、イエスさまはそのようなことを言っ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真に恐るべき方を恐れることによって、それ以外の一切のものを恐れないということです。


 今日の聖書箇所では、恐れということについて、恐怖の恐れという言葉が使われていますが、神さまに対しては、この恐怖の恐れというよりも、畏れ敬う、畏怖、この畏れの方がふさわしいと思います。神さまを畏れる。私たちが聖書から教えられる信仰。それは、人を恐れることから、神さまを畏れることへの転換ということが言えると思います。 


 そして、イエスさまは、私たちが真に畏れるべき方、つまり神さまが、どのようなお方なのか、私たちを「魂も体も地獄で滅ぼすことのできる」お方としての恐怖の対象なのかどうかなのかを、二つのたとえを用いてお話しされています。それが「雀」のたとえと「髪の毛」のたとえですね。


 雀は、イスラエルにおいても、どこでもいるような鳥でした。「二羽の雀が一アサリオンで売られているではないか」(29節)と言います。市場で食用として雀が売られていました。ガラリヤ地方は豊かな穀倉地帯でありながら、ガリラヤの領主ヘロデとユダヤ州総督のピラロの圧政、イスラエル神殿を中心とするユダヤ人権力者からの重税によって、人々は貧しい生活を強いられていました。牛や羊なんて食べることが出来ません。そのため、ガリラヤの人々にとっては、雀は重要なタンパク源となっていました。それでも、雀は食べるところが少ないので、数が必要です。最低、二羽を一組にして一アサリオンで売られていました。一アサリオンと言う貨幣は、最小の貨幣単位で、16分の1デナリオンになります。当時、労働者が一日働いて手にする賃金が、大体一デナリオンと言われていますから、今の日本ですと、日給1万円とするならば、約600円ぐらいでしょうか? 当時の労働賃金が今よりずっと低いこと考えますと、100円ぐらいになるのかもしれません。二羽でそうですから、一羽だと50円にもしなかったと思われます。私はすぐにお金に換算してしまいますが、ルカによる福音書12章6節には「五羽の雀が二アサリオンで売られているではないか」(ルカ12:6)と記されています。二羽で一アサリオンですから、四羽で二アサリオンです。五羽の雀が二アサリオンということは、残りの一羽はおまけとしてただでくれた雀だったのかもしれません。その程度の価値しかない雀だということです。今日の説教題を「一羽の雀」とつけましたのですが、この一羽の雀はおまけの一羽です。そして、その一羽の雀が、まさに私たちではなないのかという意味で「一羽の雀」と説教題を付けました。


 そして、私たちがこのようなおまけの一羽の雀であったとしても、神さまの御前に、私たちは忘れられてはいないのです。「だが、その一羽さえ、あなたがたの父のお許しがなければ、地に落ちることはないのです」(29節)。この「その一羽さえ、あなたがたの父のお許しがなければ、地に落ちることはない」というのは、その一羽も神さまにとっては大切な存在であることが言われているのです。
 ここに「お許しにならなければ」とありますが、原語のギリシャ語聖書には、この言葉はありません。ここは直訳するならば「父がいなければ」と訳されます。ですから、「その一羽さえ、あなたがたの父がいなければ、地に落ちることはない」となります。つまり、その一羽と父なる神さまは一緒に落ちてくださるということです。父なる神さまは、一羽の雀、無価値とも思えるその一羽と共にどこまでも、生も死も一緒に歩んでくださる。それほどに一羽の命を大切にしておられる、というのです。そうであるならば、神さまは、「たくさんの雀よりはるかにまさっている」あなたがた一人一人のことをどれだけ大切にしておられるだろうか、とイエスさまは語っておられるのです。


 それから、髪の毛のたとえで、「あなたがたの髪の毛までも一本残らず数えられている」(30節)とありました。それは、私たちのどんなに小さく思えるようなことまでも、そのすべてを神さまは知っておられる、気にかけておられる、ということです。だから、あなたがた一人一人に向けられた神さまの愛を覚えて、神さまを畏れつつ生きて行こうではないか、とイエスさまは言われているのです。
 皆さん、私たちは、神さまを畏れて生きる者、神さまの愛をおぼえて生きる者でありたいと願います。


【2025년 5월 11일 주일예배(요약판)】

     “한 마리의 참새” 
             마태복음 10 장 26~31절


 제자들은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질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예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많은 어려움과 박해가 예상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26절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26절).
 여기서 말하는 “그들” 이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28절)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28절) 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단순히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도 두렵지만, 몸과 영혼 모두를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훨씬 더 무섭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는 뜻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을 경외함으로써, 그 이외의 모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믿음에 이르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에서는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공포로서의 두려움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하나님에 대하여는 이 공포의 두려움이 아니라, 경외와 두려움이 어우러진 경공(敬恐)의 감정이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배워야 할 믿음이란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경외해야 할 분, 즉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우리를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분으로서의 두려움의 대상인지 아닌지를 두 가지 비유를 사용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참새”의 비유와 “머리털”의 비유입니다.


 참새는 이스라엘서도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흔한 새였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29절) 고 말씀하십니다. 시장에서는 참새가 식용으로 팔리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지방은 풍요로운 곡창지대이기는 했지만, 갈릴리의 영주 헤롯과 유대 총독 빌라도의 압정, 그리고 이스라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유대 종교 권력자들의 무거운 세금으로 인해, 사람들은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나 양 같은 고기는 먹기 어려웠고, 갈릴리 사람들에게 참새는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참새는 먹을 부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많이 필요했고, 보통 두 마리를 한 묶음으로 하여 한 앗사리온에 팔았습니다. 
‘앗사리온’이라는 화폐는 가장 작은 화폐 단위로 한 데나리온의16분의 1입니다. 당시 노동자가 하루 일하고 손에 쥐는 임금이 대략 한 데나리온이었다고 하니, 오늘날 일본의 하루 일당을 1만엔으로 본다면 약 600엔 정도가 되겠지만, 당시의 실제 생활 수준을 고려하면 한 100엔 정도였을지도 모릅니다. 두 마리가 그 정도라면 한 마리는 50엔도 안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곧 이런 것들을 돈으로 환산해 보게 되는데, 누가복음 12장 6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눅12:6). 두 마리에 한 앗사리온이기 때문에, 네 마리면 두 앗사리온입니다. 그런데 다섯 마리의 참새가 두 앗사리온에 팔렸다는 것은 나머지 한 마리는 덤으로 받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하찮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제목을 “한 마리의 참새”라고 붙였습니다. 이 한 마리의 참새는 바로 그 덤으로 받은, 아무런 가치도 없어 보이는 참새입니다. 그리고 그 한마리 참새가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닐까 하는 의미에서 이 제목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처럼 덤으로 받은 한 마리의 참새와 같은 존재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결코 잊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29절). 여기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라는 말씀은, 그 하찮은 참새 하나도 하나님께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이라고 되어 있지만, 원문인 헬라어 성경에는 이 ‘허락’ 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직역하면 “아버지 없이는” 혹은 “아버지가 아니고서는” 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정확히 번역하면 “그 한 마리조차 너희 아버지가 아니고서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냐 하면, 그 한 마리 참새와 하나님 아버지가 함께 떨어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가치 없다고 여겨질 수 있는 그 한 마리 참새와 함께, 생사를 같이 하며 어디든지 동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바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더 귀하게 여기시고, 소중히 여기시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머리털의 비유가 나옵니다. “너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30절) 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작고 하찮게 여길 수 있는 것들까지도 하나님께서는 모두 알고 계시고, 마음에 두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 품고 계신 그 사랑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자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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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日:2025年05月11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