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年02月01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6年2月1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ヨハネ(요한복음) 10章 14~15節
〇讃 頌 讃頌歌 15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8 (詩編 14編 )
〇讃 頌 讃頌歌 535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 (마태복음)
18章 1~14節
〇説 教 「小さな者への祝福
(사작은 자에게 주시는 축복)」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289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1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6年 2月 1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小さな者への祝福」
マタイによる福音書 18章 1~14節
今日の聖書箇所には、三つの物語が記されていますが、そのどれもが「小さな者」というキーワードをもとに語られております。
最初の1~5節の話は、弟子たちがイエスさまに「いったいだれが、天の国でいちばん偉いのでしょうか」と質問したことから始まっていますが、この質問は、弟子たちの無理解、愚かさというものをよく表しております。この直前、イエスさまは弟子たちにご自分の十字架の死と復活を予告されました。この予告は二回目です。弟子たちは「非常に悲しんだ」(17:23)と言いますが、その「悲しみ」は何だったのでしょうか。十字架の道を歩まれるイエスさまを前にして、「誰が一番偉いのか」などと質問をしているのです。
これが私たちの現実かと思います。私たちの救いのために苦難の道を歩まれるイエスさまの側におりながら、その傷み、苦しさを共有することなく、「自分が一番になりたい」と考えている人間の愚かさです。
そんなことを考えている弟子たちにイエスさまは、はっきりとこう言われています。「はっきり言っておく。心を入れ替えて子供のようにならなければ、決して天の国に入ることはできない。自分を低くして、この子供のようになる人が、天の国でいちばん偉いのだ。」(3節)
当時のユダヤ社会では、子どもは無力で、社会的な責任を負うことのできない半人前の人間であり、無価値なものと考えられていました。ですから、「心を入れ替えて子供のようにならなければ」というのは、自分が一番偉い者になって、神さまに近づこうという傲慢な考えを悔い改めて、自分が無価値なものであることを認めることです。変なプライドを捨てて、神さまに依り頼む者になると言うことでしょう。そんな人が一番だとイエスさまはおっしゃったのです。
ただ、イエスさまは信仰者として一番になることよりも弟子たちに悟って欲しかったことは、次の5節の御言葉なのです。「わたしの名のためにこのような一人の子供を受け入れる者は、わたしを受け入れるのである。」(5節)
一人の無価値な者(小さな者)を、無価値、小さな者と見做されている人を受け入れる。これが神さまの御旨であると強調しておられます。
ところで、小さな子供がいる家族が旅行する時、子供はあそこに行きたい、見たいと言うかもしれません。でも、子供がそのために自分で旅行の計画をし、新幹線のチケットを買ったり、ホテルを予約す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ただ親の行くところについて行くだけです。多くの場合、子供は実際どんな所に行くのかも分かっていないことも多いでしょう。ません。それでも、家族と旅行すること自体にわくわくし、行った旅先で楽しみます。
私たちの信仰生活というものも、まさに私たちが子どものように神さまと、また、神さまの家族と共に人生という旅行をしているのです。その旅先での経験が、その子供を成長させます。私たちの信仰生活のおいても、様々な経験がその人を成長させます。そして、「小さな者」たちへと目を向けさせるのです。
この「小さな者を受け入れる」時の注意点が6~9節で言われています。それは「小さな者の一人をつまずかせてなならない」と言うことです。ここで「つまずかせる」というのは、単に転んでけがをする、ということではなくて、躓いて死んでしまうことを意味しています。つまり、小さな一人の信仰者の信仰を奪うようなことを意味するのです。
そのため8~9節で、イエスさまは、大変厳しい言葉をおっしゃっています。それを要約すると、「つまずかせるぐらいなら、手や足を切ってしまえ。片方の目をえぐり出して捨ててしまえ」と言うことです。それほど、この「つまずき」には注意が必要だということですね。
ですから教会は、人の信仰を失わせるような罪に十分に気をつ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深い配慮が必要だと言うことです。
イエスさまはなぜこれほどまでに「小さな者」にこだわっておられるのかと言いますと、私たち自身がその「小さな者」であるからです。この「小さな者」である私たちが神さまの子どもであるとおっしゃりたいのです。
私たちは本来、天の国に行く権利も価値も持ち合わせていません。私たちは誰も一人で天に昇ることのできるものはありません。神さまが、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者たちを、イエスさまと一緒にご自分の子どもとして認めて受け入れてくださるから、私たちには天の国が約束されているのです。そこでは誰が一番だとか問題ではありません。
イエスさまはこの「小さな者」がつまずくのは避けられないと言われます(7節)。だからこそ、私たちは自分自身や人がつまずくこのとに対し、もっと真剣に考える必要があります。そして、私たちがつまずくことなく、天の国へと導いてくれるのは、神さまの憐れみのみであることを知る必要があります。私たちに対する神さまの愛が私たちを天の国へと連れて行ってくれます。それについておっしゃっているのが、次の12~14節の「迷い出た羊のたとえ」話なのです。
この譬え話は、羊飼いが99匹を山の上に残してでも、迷い出た一匹の羊を探すという話です。この譬え話の羊飼いは神さまのこと、また、群れから迷い出た一匹の羊は、先ほどの「小さな者」すなわち私たちのことを意味します。それほどもまでに神さまは私たちのことを大切に思い、愛しておられるということです。
もし、皆さんがこの羊飼いの立場であったならどのように行動するでしょうか。99匹を残して一匹を探しに行くでしょうか。リスク計算をしますよね。捜しに行っている間に残った羊が何匹か迷い出てしまうかも知れません。簡単に捜しにはいけません。しかし、神さまは迷うことなく、そのたった一匹の羊を捜しに行くのです。それほどその失われた一匹の羊がとても大切であり、群れから迷い出た一匹を連れ戻すために神さまは力を尽くされるのです。
そして、見つかれば九十九匹が手元にいるということよりも、その一匹が見つかったことが嬉しくて仕方が無いのです。その羊飼いの気持ちが分かりますかと、イエスさまは問うておられるのです。
ここにいる私たちは、この迷い出た一匹の羊に自分を置き換えるより、残された99匹の羊のように思っているところがあります。私たちは信仰生活をしていても、時には山の上に残された羊のように不安になることがあります。私は見捨てられたのだろうかと思うときもあります。
しかし、決して、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もし、失われた一匹の羊を捜し出ている間に、私自身が群れから迷い出たならば、戻ってきた神さまは、迷いでは一匹の私のために、神さまは捜しに来てくださるのです。私たちは、この羊飼いである神さまをもっと信頼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皆さん、この私を必死で捜し求めてくださった神さま。私は神さまに愛され喜ばれた者。今日は、このことを覚えたいと思います。
【2026년 2월 1일 주일예배(요약판)】
“작은 자에게 주시는 축복”
마태복음 18장 1~14절
오늘의 성경 본문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모든 이야기는 “작은 자”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먼저 1~5절의 이야기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고 질문한 데서 시작됩니다. 이 질문은 제자들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잘 보여 줍니다. 바로 직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셨습니다. 이것은 두 번째 예고였습니다. 제자들은 “심히 근심하더라”(17:23)고 했지만, 그 근심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는 예수님 앞에서 그들은 “누가 가장 큰가”를 묻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고난의 길을 걸어가시는 예수님 곁에 있으면서도 그 아픔과 괴로움을 함께하지 못하고, 오히려 “내가 가장 크고 싶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3~4절)
당시 유대 사회에서 어린아이는 무력하고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없는 미완성의 존재로 여겨졌으며, 가치 없는 존재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씀은, 내가 가장 큰 자가 되어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는 교만한 생각을 회개하고, 자신이 아무 자격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리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믿음의 서열에서 1등이 되는 것보다 더 깨닫기 원하셨던 말씀은 이어지는 5절입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가치 없다고 여겨지는 한 사람, 작은 자로 취급받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예수님은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이 여행을 갈 때, 아이는 어디에 가고 싶다, 무엇을 보고 싶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 여행 계획을 세우거나 기차표를 사고 호텔을 예약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부모가 가는 길을 따라갈 뿐입니다. 많은 경우 아이는 어디로 가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가족과 함께 여행하는 것 자체에 설레어 하고, 도착한 곳에서 기뻐하며 즐깁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하나님과, 그리고 하나님의 가족과 함께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 여행 속의 경험들이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다양한 경험이 사람을 자라게 하고, 결국 “작은 자”에게 눈을 돌리게 합니다.
이 “작은 자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중요한 주의가 6~9절에 나옵니다. 그것은 “작은 자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실족하게 한다”는 것은 단순히 넘어져 다친다는 뜻이 아니라, 넘어져 멸망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곧, 작은 한 사람의 신앙을 무너뜨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8~9절에서 예수님은 매우 엄중한 말씀을 하십니다. 요약하면 “실족하게 할 바에는 손이나 발을 찍어 버리고, 눈을 빼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 ‘실족’의 문제는 심각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의 믿음을 잃게 만드는 죄에 대해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깊은 배려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작은 자”에 집착하시듯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작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작은 자인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본래 천국에 들어갈 권리도 가치도 없습니다. 누구도 스스로 하늘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예수님과 함께 자신의 자녀로 받아 주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천국이 약속된 것입니다. 거기에는 누가 더 크냐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작은 자가 실족하는 일은 피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7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이 실족하는 문제를 더욱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실족하지 않고 천국으로 인도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천국으로 이끄십니다. 그것을 말씀하시는 이야기가 12~14절의 “잃은 양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목자가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서라도 잃은 한 마리를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목자는 하나님을 의미하고, 길을 잃은 한 마리 양은 “작은 자”, 곧 우리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목자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한 마리를 찾으러 가겠습니까? 우리는 위험을 계산할 것입니다. 찾으러 간 사이에 남은 양들 중 또 길을 잃는 양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쉽게 떠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망설이지 않으십니다. 그 단 한 마리 양을 찾으러 가십니다. 잃어버린 그 한 마리가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길 잃은 한 마리를 되찾기 위해 힘을 다하십니다.
그리고 찾게 되었을 때, 아흔아홉 마리가 곁에 있다는 사실보다 그 한 마리를 되찾은 기쁨이 더 큽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목자의 마음을 아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잃은 한 마리 양이 아니라 남겨진 아흔아홉 마리 가운데 하나로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산 위에 남겨진 양처럼 불안해질 때가 있습니다. 나는 버려진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잃은 한 마리를 찾으러 가신 사이에 내가 길을 잃는다 해도, 돌아오신 하나님은 또다시 나 한 사람을 찾으러 오십니다. 우리는 이 목자 되신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해야 합니다.
여러분, 나를 필사적으로 찾아 주신 하나님.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기쁨이 되는 존재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