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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年05月04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5年5月4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Ⅰコリント(고린도전서) 14章 20節
〇讃    頌    讃頌歌 34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21 (詩編34編 )
〇讃    頌    讃頌歌 456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마태복음)
         10章 16~25節
〇説   教    「蛇のように賢く、鳩のように素直に
         (목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458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6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5年 5月 4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蛇のように賢く、鳩のように素直に」
                    マタイによる福音書 10章 16~25節


 マタイによる福音書10章から、イエスさまがなさる御業をただ側で見ていた弟子たちに対して、イエスさまは実践的な教育をしていきます。そのためにイエスさまは、弟子たちの中から12人を選び、「汚れた霊を追い出し、あらゆる病気や患いをいやす」(10:1)権能を与え、神さまの救いの宣教のためにイスラエルの町や村に派遣します。その時に語られた説教が10章に記されておりますが、先週は、その前半部分をご一緒にお読みしました。今日はその続きで、イエスさまの説教の中盤部分に当たります。


 イエスさまは16節でこのように言っています。「わたしはあなたがたを遣わす。それは、狼の群れに羊を送り込むようなものだ。だから、蛇のように賢く、鳩のように素直になりなさい。」(16節)


 ここでまず、着目すべき点は、「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遣わす」とイエスさまが力強く語っておられる点です。「わたしがあなたを遣わす」、これはイエスさまが遣わしているのだから、恐れること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何かあれば、イエスさまが何とかしてくれるということでしょう。だから、先週、読みましたように、何も持たずに、ふさわしい人のもとに留まり、食事などの世話を受けなさい、と。それでも、もし誰もあなたがたを受け入れなかったら、その町を出る時に足の埃を払い落としなさいと、言っておられます。何と言いましょうか、けっこう強気な姿勢が感じられます。


 しかし、それが今日の聖書箇所では、でも「それは、狼の群れに羊を送り込むようなものだ」と言っています。宣教というものが、飢えた獣に餌を与えるような危険が伴っていると言っているのです。足の埃を払い落せば良いということではすまない危険があるわけですね。そのため「他の町へ逃げて行きなさい」(23節)と言います。「逃げなさい」って、先週の聖書箇所とは大きく違う弱気な姿勢です。この違いはどこから来るのでしょうか?


 それは、神さまの救いを受け入れる人と受け入れない人とがいるからです。そして、受け入れない人の方が大多数であり、そのような人々は受け入れないだけではなく、反発し、非難し、迫害することがしばしば起こったからです。時には、家族内にも対立が生じ、21節の「兄弟は兄弟を、父は子を死に追いやり、子は親に反抗して殺す」(21節)という悲惨な現実も起こりました。


 弟子たちにとって、宣教というのは、いつも迫害の危険が伴っていました。その中に、弟子たちは遣わされて行くのです。だからこそ、それに対処するために「蛇のように賢く、鳩のように素直に」と勧められているのです。どのような状況の中でも、賢く対処し、それと同時に神さまの言葉には素直に耳を傾けなさいということでしょう。
 でも、イエスさまの勧めの中で強調されているのは、23節の「一つの町で迫害されたときは、他の町へ逃げて行きなさい」(23節)ということだと思います。


 宣教というのは、狼の群れの中に羊が送り込まれるようなものですから、それなりの覚悟が必要です。そして、22節に「最後まで耐え忍ぶ者は救われる」とありますから、最後まで、何があっても耐え忍ばなければならないと考えます。実は、そうではないのです。逃げても良いのです。いえ、羊が狼に食べられずに生き残るためには、逃げ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最後まで耐え忍ぶ」ということと殉教することは別のことです。逃げることには抵抗を感じるでしょう。けれども、逃げることも勇気です。そこは恥じずに、素直になることが肝心です。そして、逃げることを判断し、決断するために「蛇のように賢く、鳩のように素直に」ということなのです。


 使徒言行録8章に、ステファノが最初の殉教者になったことが記されていますが、その時、他の使徒たちは、ステファノと共に最後まで抵抗し、殉教したのかと言いますと、そうではありません。ユダヤやサマリアの地方に散って逃げて行きました。
 さらに、他のクリスチャンたちも、ダマスコや、フェニキア、キプロス、アンティオキアへと逃げて行き、その地でキリストの救いを宣べ伝え、教会が生み出されていきました。ですから、逃げることは必ずしもマイナスではないのです。逃げた先に福音を宣べ伝える場所と相手を、神さまは用意してくださっているのです。仮にその場から、逃げることになったとしても、違う場所で、違う人に、必ず証しする機会と人を愛するチャンスが備えられています。
 私たちは、神さまの霊、神さまの導きを信じるのです。神さまの霊が私たちに語るべきことを教え、神さまの霊が語って下さるのです。私たちは勇気を持ってそれに委ねるだけです。私たちは逃げた先でも神さまの恵みを味わうことが出来るのです。


 そして、最後にもう一つ、ここでたとえとして語られているのは、私たちは「僕」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24節です。「弟子は師にまさるものではなく、僕は主人にまさるものではない。」(24節)
 これは、イエスさまと弟子たちの関係を表しています。師であり主であるイエスさまを越える必要はありません。弟子たちに必要なことは、主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の僕に徹することなのです。それは私たちが神になる必要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いえ、なってはならないのです。


 私たちの主であるイエスさまが神の国を建設されようとしています。そのために、イエスさまが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遣わす」と、私たちをこの世に送り込んでくださって、神の国を打ち立てようとなさっているのです。そのことを信じるところに、私たちの信仰があります。「最後まで耐え忍ぶ者は救われる」と主は言われます。終わりまで忍耐して、神の国を待ち望むのが私たちの信仰です。
 イエスさまが再び来られて、神の国が完成するのは、いつの時か分かりません。だからこそ、忍耐が必要なのです。逆に言いますと、私たちは主イエスさまが来られる時まで、忍耐して福音を語り続けなくてはならないのです。


 そして、私たちがこうした忍耐によって信仰が支えられるのは、私たちを遣わしておられる主人をよく知っているからに他なりません。そうでなければ、信仰ゆえに降りかかってくる様々な困難を乗り越えていくことはできないのです。イエス・キリストは、羊を狼から守る羊飼いとして、御自分の命を捨てて一匹の羊を守る羊飼いとして、世に来られたお方です。このお方が十字架にかかって死んでくださったことによって、私たちは神さまの御前に罪を赦していただきました。


 そして、このお方だけが、私たちの命を最後まで握っていてくださいます。ですから、私たちの命は、たとえ時代が悪くて狼の餌食にされようとも、キリストの内に保たれて傷つくことがありません。その恵みと真理に生かされているからこそ、最後まで耐え忍ぶ力が与えられます。
 信仰そのものが神さまからの賜物であるとすれば、聖霊が私たちの信仰を最後まで保たせてくださるということです。生涯の終わりまで私たちは神さまに守られているのです。


【2025년 5월 4일 주일예배(요약판)】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태복음 10장 16~25절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동안 곁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지켜보기만 했던 제자들에게 이제 실제적인 교육을 시작하십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 12명을 택하시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10:1) 권능을 주시어,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이스라엘의 여러 마을과 도시로 파송하십니다. 그때 이야기하신 설교가 10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지난주에는 그 전반 부분을 함께 읽었습니다. 오늘은 그 다음으로 예수님의 설교의 중반 부분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16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계십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16절).

 여기서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내가 너희를 보낸다”고 예수님께서 힘있게 말씀하신다는 점입니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이것은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예수님께서 어떻게든 해 주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지난주 읽은 말씀처럼,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합당한 사람의 집에 머물며, 식사 등 필요한 도움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만약 아무도 너희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마을을 떠날 때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뭐라고 할까요, 상당히 강경한 자세가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성경 부분에서는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교라는 것이 굶주린 짐승에게 먹이를 주는 것과 같은 위험이 수반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면 된다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동네로 피하라”(23절)고 합니다. “피하 라”는 말씀은 지난주 성경 부분과는 크게 다른, 다소 소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 태도입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반면,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개는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더 많으며, 그들은 단순히 거부하는데 그치지 않고, 반발하고, 비난하고, 박해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가족 내에서도 갈등이 발생하여, 21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21절) 라는 비참한 현실도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에게 선교라는 것은 언제나 박해의 위험이 뒤따랐습니다. 그 속으로 제자들은 파견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에 대처하기 위해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혜롭게 대처하고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순히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예수님의 권면 가운데 강조되는 것은 23절의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23절) 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교라는 것은 양을 이리 무리 속에 보내는 것과 같은 것이니까 그 나름의 각오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22절에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끝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참고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도망쳐도 괜찮습니다. 아니, 양이 이리에게 잡아 먹히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도망쳐야만 합니다.
  “끝까지 견딘다”는 것과 순교하는 것과는 별개의 일입니다. 도망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망치는 것 또한 용기입니다. 그 점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도망칠지를 판단하고 결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권면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는 스데반이 최초의 순교자가 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다른 사도들이 스데반과 함께 끝까지 저항하며 순교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져 도망갔습니다. 
 또한 다른 크리스천들도 다마섹과 베니게와 구부로와 안디옥 등지로 피신하였고,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파하며 교회가 세워져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망치는 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피신한 그곳에도 복음을 전할 장소와 상대를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시는 것입니다. 비록 그 자리를 떠나야만 하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람에게 반드시 증거할 기회가 마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말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시고, 또 직접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그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도망친 곳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기서 비유로 말씀하신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종” 이라는 사실입니다. 24절입니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성전 같으면 족하도다”(24절)
 이 말씀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제자는 스승이자 주님이신 예수님을 넘어설 필요는 없습니다.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일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 아니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보내겠다고 히시며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주시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입니다. 주님께서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인내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그 날이 언제 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인내하며 복음을 계속 전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인내로 믿음을 지켜 나갈 수 있는 것은, 우리를 보내신 주인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 때문에 닥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양을 이리로부터 지키시는 선한 목자로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 한 마리의 양을 지키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이 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직 이 분만이 우리의 생명을 끝까지 붙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은, 비록 시대가 악하여 이리의 먹잇감이 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보호받으며 상처 입지 않습니다. 그 은혜와 진리 안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끝까지 견디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면, 성령께서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지켜 주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이 끝나는 날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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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日:2025年05月04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