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年08月30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6年8月30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ミカ書(미가) 4章 1~3節
〇讃 頌 讃頌歌 39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48 (詩編 106編 )
〇讃 頌 讃頌歌 516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 (마태복음)
26章 47~56節
〇説 教 「友よ (친구여)」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407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1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6年 8月 30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友よ」
マタイによる福音書 26章 47~56節
今日の聖書箇所は、イエスさまが、イスカリオテのユダに先導された群衆に逮捕された場面です。
イエスさまがゲッセマネで祈られた後、イエスさまを裏切るユダがやって来ました。47節です。「イエスがまだ話しておられると、十二人の一人であるユダがやって来た。祭司長たちや民の長老たちの遣わした大勢の群衆も、剣や棒を持って一緒に来た。」(47節)
「十二人の一人であるユダ」が、やって来たというのです。この時、ユダは一人ではなく、祭司長たちや民の長老たちが遣わした大勢の群衆と一緒に、しかも剣や棒を持った群衆とやって来ました。
先週も言いましたが、マタイによる福音書の中心的なメッセージは、神さまはどんなときにも、どんなところでも、どんな人とも一緒にいてくださるということです。
「共に」「一緒に」という言葉がマタイによる福音書では多く用いられますが、ここでも「一緒に」とあります。しかし、ユダと共にいるのは、祭司長たちや民の長老たちが遣わした大勢の群衆です。「群衆と共に」です。そして、群衆は「剣や棒と共に」です。
イエスさまを捉えようと、剣や棒を持った群衆がイエスさまと十一人の弟子たちを取り囲みました。そして、イスカリオテのユダがイエスさまに近づきました。48節です。「イエスを裏切ろうとしていたユダは、『わたしが接吻するのが、その人だ。それを捕まえろ』と前もって合図を決めていた。ユダはすぐイエスに近寄り、『先生、こんばんは』と言って接吻した。」(48-49節)
いつもの親しい挨拶。それが裏切りの合図でした。「わたしはあなたを愛している、信頼している、わたしの先生だ」、そのことを言い表わす接吻を合図にユダはイエスさまを引き渡したののです。
ユダのこうした態度を見るときに、人間はこんなことまで考えるのか、と愕然とさせられます。しかし、聖書はユダのことをどこまでも「十二人の弟子の一人」と言います。イエスさまに最も近くにいて、イエスさまの言葉を聞き、イエスさまの業を見て来た人です。それ故に、ユダの罪の闇は深いのです。ユダは自分がイエスさまに愛されていることを知らなかったのでしょうか。そんなことないと思います。知っていながらユダは裏切ったのです。
そんなユダにイエスさまはこう言われています。「友よ、しようとしていることをするがよい。」(50節)
裏切ったユダに対してイエスさまは「友よ」と呼びかけられています。自分に対して罪を犯しているユダとの関係を断ち切ることなく、愛情をもって「友よ」と呼びかけられ、このユダのためにも十字架の道を歩もうとされたのです。
「友よ」の後の「しようとしていることをするがよい」という言葉は、原文は省略された文章で翻訳が難しいのですが、「友よ、あなたは接吻をもって、わたしを引き渡そうとしているが、あなたはそのことのために来たのか」というような意味合いです。
けれども、イエスさまのこうした思いをユダは受けとめず、人々はイエスさまに近寄り、手をかけて捕らえました。
十二弟子の一人のユダとのこうしたやりとりは、イエスさまは深く悲しませるのですが、なお、悲しみは続きます。51節です。「そのとき、イエスと一緒にいた者の一人が、手を伸ばして剣を抜き、大祭司の手下に打ちかかって、片方の耳を切り落とした。」
ヨハネによる福音書によれば、この大祭司の手下の耳を切り落としたのは、ペトロです。ペトロは「たとえ一緒に死ななければならなくなっても、あなたのことを知らないなどとは決して申しません。」と言いました。この時のペトロの思いに嘘はありませんでした。ですから、イエスさまが捕らえられようとしているのに黙って見ているなんて、ペトロには出来ません。思わず、イエスさまを守ろうと、彼は持っていた剣で打ちかかっていったのです。イエスさまの弟子として、そうするしかないと思ったのです。頭にかーっと血が上って、持っていた剣を振り回したのです。イエスさまと一緒に死のうとしたのかも知れません。
しかし、イエスさまはそれを止められました。52節です。「剣をさやに納めなさい。剣を取る者は皆、剣で滅びる。」(52節)
とても有名な言葉です。ただ、ここでイエスさまは「剣を取る者は皆、すべて、例外なく剣で滅びる」というような一般的な真理を語っておられるのではありません。イエスさまが望み見ておられたものは、剣などの武器を持ち、力によって支配される世界では、神さまの愛と栄光が支配する世界であったのです。
ですから、イエスさまはここでペトロに、「あなたは何に頼っているのか。わたしを捕らえに来た者たちは、剣に頼っている。剣でわたしを捕らえようとしている。この世の権力とはそういうものだ。しかし、あなたも一緒になって剣に頼ってどうする。あなたが頼らなければならないものは何か。わたしではないか。剣に頼るな。この世の力と同じになってはいけない。」そう言われ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実際、イエスさまは剣に頼らなくても、父なる神さまに願われたならば、この危機を簡単に脱することが出来たでしょう。しかし、それでは神さまの御心を果たすことが出来ません。旧約において預言された神さまの御心は成就さ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の為に、イエスさまは捕らえられ、十字架にかけられます。それが神さまの御心だからです。
この世の力によって神さまの御心が成し遂げられていくのではありません。御心に従う者によって御心は為されていくのです。
あらためて思わされることは、イエスさまを引き渡したユダだけが裏切りものであり、どこかで自分はそうではない、と思っ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言うことです。皆さん、どうでしょうか。自分は弱い人間だ、罪人だと告白しても、どこかでユダとは違うという思いを持ってはいないでしょうか。
マタイによる福音書は、ユダがイエスさまに接吻したことでイエスさまが逮捕されたことと同時に、イエスさまがどんな人とも関わりを断ち切らず、愛をもって、真実をもって関わることを教えておられたにもかかわらず、ペトロが剣で大祭司の手下の耳を切り落としたことを私たちに伝えています。そして、イエスさまが逮捕されたとき、弟子たちは一人残らず逃げてしまったと言うのです。
そしてまた、その弟子たち、また同じ弱さを持つ私たちを救い、私たちを剣ではなく、平和の道具となるために、イエスさまは十字架の死を遂げられたのだ、と言っているのです。
だからこそ、私たちは剣を頼りとしません。ただ神さまを、イエスさまだけを頼ります。その御力によってのみ、神の国は前進していくからです。イエスさまの十字架の愛、徹底した赦しを受け、そこに私たちが生きることによって福音は伝えられて行きます。そのような営みによって、聖霊の導きの中、神の国は前進していきます。私たちはこの神さまの御業に仕える者として召されているのです。
だからこそ、これからも皆さんと共に、イエスさまが十字架に架かってまで、どんな時にも、どんな所でも、愛と真実をもって、私たちに関わってくださった、そのことを真摯に証ししたいと願っています。
【2026년 8월 30일 주일예배(요약판)】
“친구여”
마태복음 26장 47~56절
오늘 성경 본문은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가 이끄는 무리에게 붙잡히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후, 예수님을 배반할 유다가 찾아왔습니다. 47절입니다.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47절)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다고 합니다. 이때 유다는 혼자 온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보낸 큰 무리와 함께, 그것도 칼과 몽치를 든 무리와 함께 왔습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마태복음의 중심적인 메시지는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어떤 사람과도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함께”, “같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됩니다. 여기에서도 “함께”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유다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보낸 큰 무리입니다. “무리와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무리는 “칼과 함께, 몽치와 함께” 있습니다.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칼과 몽치를 든 무리가 예수님과 열한 제자를 둘러쌌습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가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48~49절입니다.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하였더라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48-49절)
평소의 친밀한 인사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배반의 신호가 되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신뢰합니다. 당신은 나의 선생님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나타내야 할 입맞춤을 신호로 삼아 유다는 예수님을 넘겨준 것입니다.
유다의 이러한 모습을 볼 때, 인간은 어떻게 이런 것까지 생각할 수 있는가 하고 아연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유다를 끝까지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있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으며,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보아 온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의 죄의 어둠은 더욱 깊습니다. 유다는 자신이 예수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알면서도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그런 유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는지 행하라”(50절)
배반한 유다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친구여”라고 부르십니다. 자신에게 죄를 범하고 있는 유다와의 관계를 끊어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친구여”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 유다를 위해서도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고자 하셨습니다.
“친구여”라는 말씀 다음에 나오는 “네가 무엇을 하려는지 행하라”라는 말씀은 원문에서는 문장이 생략되어 있어 번역하기가 어려운 부분입니다. “친구여, 네가 입맞춤으로 나를 넘겨주려고 하는데, 너는 그것을 위해 온 것이냐?”라는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러한 마음을 유다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와 예수님을 붙잡았습니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유다와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깊이 슬프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슬픔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51절입니다.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51절)
요한복음에 따르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라 버린 사람은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마음에는 거짓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붙잡히려 하시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예수님을 지키려고 가지고 있던 칼을 휘둘러 달려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머리에 피가 확 올라와서 가지고 있던 칼을 휘두른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죽으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막으셨습니다. 52절입니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52절)
매우 유명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일반적인 진리를 말씀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여기서 바라보고 계셨던 것이 칼등의 무기를 가지고 힘으로 지배된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이 다스리는 세계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여기에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요? “너는 무엇을 의지하고 있느냐? 나를 잡으러 온 사람들은 칼을 의지하고 있다. 칼로 나를 잡으려고 하고 있다. 이 세상의 권력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데 너까지 그들과 함께 칼을 의지해서 어떻게 하겠느냐? 네가 의지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내가 아니냐? 칼을 의지하지 마라. 이 세상의 힘과 똑같아져서는 안 된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칼에 의지하지 않으셔도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셨다면 이 위기에서 얼마든지 벗어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수 없습니다. 구약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붙잡히시고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힘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을 넘겨준 유다만이 배반자이고, 어딘가에서는 ‘나는 유다와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나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그래도 나는 유다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마태복음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유다가 예수님께 입맞춤함으로써 예수님께서 체포되셨다는 사실과 동시에,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과도 관계를 끊지 않으시고 사랑과 진실로 관계하라고 가르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칼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랐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체포되셨을 때, 제자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도망쳤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제자들, 그리고 그들과 똑같은 연약함을 가진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칼이 아니라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칼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예수님만을 의지합니다. 그분의 능력으로만 하나님의 나라는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 철저한 용서를 받고, 그 사랑 안에서 우리가 살아감으로써 복음은 전해져 갑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는 앞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바로 이 하나님의 역사에 봉사하는 사람으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어떤 때에도, 어떤 곳에서도, 사랑과 진실로 우리와 관계를 맺어 주셨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증거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