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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年09月27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6年9月27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ローマの信徒への手紙(로마서) 3章 22~24節
〇讃    頌    讃頌歌 20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64 (詩編 148編 )
〇讃    頌    讃頌歌 251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 (마태복음)
                     27章 11~26節
〇説   教    「罪人の解放 (죄인의 해방)」
〇祈  祷
○聖 礼 典     洗礼式
〇讃   頌   讃頌歌 272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1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6年 9月 27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罪人の解放」
                   マタイによる福音書 27章 11~26節


 今日の聖書箇所は、イエスさまの裁判がローマ総督ポンテオ・ピラト前で行われた場面です。
 イエスさまの裁判が始まると、ユダヤ指導者たちは訴えました。彼らは、イエスさまがローマ帝国に対して危険人物であると、嘘の証言で訴えたのです。そこで、ピラトはイエスさまに質問しました。「お前はユダヤ人の王なのか」(11節)と。
 イエスさまは、そこに連れて来られる前に、カイアファの屋敷で、屈辱の言葉を浴びながら打ち叩かれてボロボロの姿でした。血で滲んだ傷とあざだらけで、服も破けてボロボロの姿でした。ピラトは、そんなイエスさまの姿を見て、皮肉って、「お前はユダヤ人の王なのか」と尋ねたのです。


 すると、イエスさまは「それは、あなたが言っていることです」(11節)とだけ答えられました。イエスさまは自分が王であることを否定なさいません。イエスさまはユダヤ人の王どころか、聖書の証言によれば、全世界の王であり、天の御国の王であります。


 イエスさまは、ユダヤの宗教裁判において、ずっと沈黙を守られました。ただ、大祭司たちの「お前は神の子、メシアなのか」(26章63節)と、あなたは誰かというこの質問に対してだけは、「それは、あなたが言ったことです」と答えられましたが、このピラトの裁判においても同様に答えられただけで、あとは沈黙を守られております。
 ローマの裁判において被告人には、訴えに対して弁明する権限がありました。けれども、イエスさまは死罪が確定してしまうかもしれないローマの裁判においても沈黙を守っておられたのです。


 総督ピラトは、イエスさまの沈黙に驚くと同時に、困惑してしまいます。なぜなら、イエスさまは無罪であると認識していたからです。ユダヤ教の指導者たちの訴えは事実無根で、ねたみのためであると分かっておりました(18節)。
 ピラトは自分が直接取り調べた結果「この男には、死刑に当たる犯罪は何も見つからなかった」という結論に至りました(ルカ23章22節)。万が一にも、無実の人を死刑にしてしまえば、ピラト自身の立場と身に危険が及ぶと考えたピラトは、イエスさまを釈放しようと「二つの策」を考えました。


 その一つ目の策は、「鞭で懲らしめて釈放しよう」(ルカ23章16節)というものでした。 そのことがルカによる福音書23章16節に記されています。「鞭で懲らしめて」と言っても、単なる鞭打ちではありません。ムチの先には金属、ガラス、鋭利な石などが付けられおり、兵士が力尽きるまで打ち続けるような惨たらしいものです。死ぬこともあります。それでも、イエスさまが鞭で打たれて血を流せば、ユダヤの指導者や民衆は納得するだろうしと考えたのです。


 そして、もう一つの策は、過越の祭りの慣習を利用することでした。過越の祭りの期間は、民衆が望む囚人を一人釈放できるという、年に一度の恩赦が当時ありました。ちょうどそのころ、バラバ・イエスという名の知れた囚人が捕らえられていました。
 バラバは、反ローマ暴動の首謀者として名が知られており、殺人の罪で仲間と捕まっていて、死刑が執行されるのを待っていました。このバラバは、誰が見ても明らかに罪人でした。ピラトは、「バラバとイエスのどちらかを釈放するか」を民衆に尋ねれば、もちろん彼らはイエスを釈放するだろうと考えたのです。


 しかし、ユダヤの群衆はイエスさまを「十字架につけろ」と激しく叫びました。それでも、総督ピラトはイエスさまを助けようとして、「いったいどんな悪事を働いたというのか」(23節)と、イエスさまを弁護しています。ピラトがそう言ったのは、彼の妻が見た夢も関係していました(19節)。
 ピラトは妻の夢を聞いて、イエスさまを弁護する気持ちになったのでしょう。でも、ピラトは、それを押し通し切れません。結局、ピラトは保身に走り、イエスさまに死罪を言い渡すことになります。


 この判決を下したピラトの罪は重いのです。自分では無罪であるとわかっていたと言い訳しても話になりません。ピラトは言い訳の一つとして、「群衆の前で手を洗う」という行為によって、イエスさまを十字架につける責任は私にはないということを表わしました。「この人の血について、わたしには責任がない。」(24節)
 しかし、ピラトのこの行為は、空しいパフォーマンスに終わってしまいました。ピラトの罪は、2000年経った今でも覚えられ、毎週、教会の礼拝の中で告白されております。


 一方、イエスさまを十字架に追いやった陰謀者たちの罪はさらに重いのです。ヨハネによる福音書19章11節で、イエスさまはピラトに対して、「わたしをあなたに引き渡した者の罪はもっと重い」(ヨハネ19章11節)と言っておられます。
 群衆たちの罪も同じです。彼らは「十字架につけろ」叫び続けました。「その血の責任は、我々と子孫にある」(25節)とまで言っております。本当は、血の責任なんか取りたくありません。うそも方便です。
 しかし、神さまはこの血の責任を、さっそく紀元70年に取らせます。エルサレムはローマ軍によって占拠され、神殿は破壊され、市民は虐殺され、また捕虜となりました。


 そして、「十字架につけろ、十字架につけろ」と腹いせに叫んだ群衆の罪は、私たちの罪でもあるのです。人間の罪とは、神さまを十字架に追いやり、自分たちを王座につけようとするものです。自分の欲望を押し通し、罪を犯したい者にとって、聖なる神さまは邪魔な存在でしかありません。表面的に神さまを敬うような態度をしても、その本心は、ご利益だけ与えてくれていれば、それで良いと思っているのです。「十字架につけろ」と。 しかし、十字架につ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は、私たちの方なのです。


 ところでこの時、バラバは、仲間の二人の囚人共に、死刑が執行されるのを待っており、そのために、三本の十字架が準備されていました。恐らく、三本の十字架の真ん中にバラバつけられる予定だったのでしょう。
 自分の罪のゆえの死刑が執行されるのを待ちながら、イエスさまの裁判の成り行きをジッと見つめているバラバは、あなたの姿なのです。
 聖書は、「正しいものはいない。一人もいない」(ローマ3章10節)、「人は皆、罪を犯して神の栄光を受けられなくなっています」(ローマ3章23節)と言っています。しかし、神さまの御計画は、「キリスト・イエスの贖いの業を通して、神の恵みにより無償で義とされる」(ローマ3章24節)ことでした。


 主イエス・キリストが「バラバの十字架」に身代わりでお架かりなったので、バラバは自由の身となったのです。
 それとまったく同じことが、あなたにも起こりました。主イエス・キリストは、「あなたのために準備されていた十字架」に身代わりで架かってくださいました。イエスさまの受けた打ち傷があなたを癒やし、その流された血があなたの罪を洗い清め、十字架で命が捧げられたことで永遠の命があなたのものとなりました。ある日突然、あなたは本当に自由とされたのです。


【2026년 9월 27일 주일예배(요약판)】

     “죄인의 해방” 
                           마태복음 27장 11~26절


  예수님의 재판이 시작되자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고발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로마 제국에 위험한 인물이라고 거짓 증언을 하며 고발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11절)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곳으로 끌려오기 전에 가야바의 집에서 모욕적인 말을 들으시며 매를 맞아 온몸이 상하고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피로 얼룩진 상처와 멍투성이였고, 옷도 찢어져 너덜너덜한 모습이었습니다. 빌라도는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비꼬듯이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가 말하였느니라”(11절)라고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왕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일 뿐만 아니라, 성경의 증언에 따르면 온 세상의 왕이시며 하늘나라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유대의 종교 재판을 받으실 때에도 계속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다만 대제사장들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26장 63절)라고,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만 “네가 말하였느니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빌라도의 재판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대답하셨을 뿐, 그 외에는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로마의 재판에서는 피고인에게 자신을 고발하는 내용에 대해 변론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형이 확정될 수도 있는 로마의 재판에서도 침묵을 지키고 계셨던 것입니다.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의 침묵에 놀라는 동시에 당황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의 고발은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그들이 예수님을 고발한 것은 시기심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18절). 


  총독 빌라도가 심문한 결과, “이 사람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이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누가복음 23장 22절). 만일 조금이라도 죄가 없는 사람을 사형에 처하게 된다면, 빌라도 자신에게도 위험이 닥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때려서 놓아 주겠다”(누가복음 23장 16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누가복음 23장 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때려서 놓아 주겠다”고 했지만 단순히 매를 몇 대 때리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채찍 끝에는 금속이나 유리, 날카로운 돌 등이 달려 있었고, 병사가 힘이 빠질 때까지 계속해서 때리는 끔찍한 형벌이었습니다.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게 되면 유대 지도자들과 군중들이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유월절의 관습을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월절 기간에는 군중이 원하는 죄수 한 사람을 풀어 줄 수 있는, 일 년에 한 번의 사면 관습이 당시 있었습니다. 마침 그때 바라바 예수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유명한 죄수가 붙잡혀 있었습니다.
  바라바는 반로마 폭동의 주모자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으며, 살인죄로 동료들과 함께 붙잡혀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바라바는 누가 보아도 명백한 죄인이었습니다. 빌라도는 “바라바와 예수 중 누구를 놓아줄 것인가?”라고 군중에게 물으면, 당연히 그들은 예수님을 풀어 달라고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유대 군중은 예수님을 향하여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격렬하게 외쳤습니다. 그럼에도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살려 주려고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23절)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변호했습니다. 빌라도가 그렇게 말한 데에는 그의 아내가 꾼 꿈도 관계가 있었습니다(19절).
  빌라도는 아내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을 변호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없었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하게 됩니다.


  이 판결을 내린 빌라도의 죄는 무거운 것입니다. 자신은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변명한다고 해서 책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빌라도는 변명의 하나로 군중 앞에서 손을 씻는 행동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책임은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24절).
  그러나 빌라도의 이 행동은 헛된 연극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빌라도의 죄는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되고 있으며, 우리는 매주 예배 가운데 신앙고백을 하면서 그의 이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편 예수님을 십자가로 몰아간 음모자들의 죄는 더욱 무겁습니다. 요한복음 19장 11절에서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요한복음 19장 11절).
  군중들의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심지어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25절)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사실 피의 책임 같은 것은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거짓말도 상황에 따라서는 방편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피의 책임을 곧바로, 주후 70년에 그들에게 지게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로마 군대에 의해 점령되었고, 성전은 파괴되었으며, 시민들은 학살당하고 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분풀이하듯 외쳤던 군중들의 죄는 바로 우리의 죄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죄란 하나님을 십자가로 몰아내고, 자신을 왕좌에 앉히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관철시키고 죄를 짓고 싶은 사람에게 거룩하신 하나님은 방해가 되는 존재일 뿐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속마음으로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필요한 복만 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이때 바라바는 다른 두 명의 죄수와 함께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을 위해 세 개의 십자가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세 개의 십자가 가운데 가운데 십자가에 바라바가 달릴 예정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사형이 집행되기를 기다리면서 예수님의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바라바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장 10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장 23절).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로마서 3장 24절)는 것이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라바의 십자가’에 대신 달리셨기 때문에 바라바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똑같은 일이 여러분에게도 일어났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준비되어 있던 십자가”에 대신 달려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상처가 여러분을 치유하였고,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가 여러분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었으며,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 주셨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이 여러분의 것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여러분은 참으로 자유롭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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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日:2026年09月27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