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年09月06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6年9月6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テサロニケ 一(데살로니가전서) 5章 9~10節
〇讃 頌 讃頌歌 42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50 (詩編 116編 )
〇讃 頌 讃頌歌 151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 (마태복음)
26章 57~68節
〇説 教 「主イエスの沈黙 (주 예수님의 침묵)」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299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1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6年 9月 6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主イエスの沈黙」
マタイによる福音書 26章 57~68節
ゲッセマネの園で捕まったイエスは、大祭司カイアファの屋敷に連行され、そこで裁判が行われました。しかし、その裁判は律法学者や長老たちがイエスさまを死刑にするために開いたもので、全く不当なものでした。
正しい人を陥れるために、偽証する者が何人も現れました。偽証は明らかに律法違反であり、神さまに対する大きな罪です。律法からすれば、殺害計画を練り、それをたくみに実行しようとした裁判を司る彼らこそが、殺人罪のゆえに全員死刑の身分だったのです。
しかし、悪を働く権力者たちには神さまへの畏れがありませんから、自分が正しい事をしていると信じて疑いません。「生ける神に誓え」だとか「神を冒涜した」と、いかにも神さまの側に立っているように語っていますが、神さまの名を口にしながらサタンの暗闇の業に加担しています。
彼らにとっての神は、もはや自分自身でしかありません。正しい人間を罪に定めても良心の呵責も感じません。この世の中の暗さは、真の裁き主である神さまを畏れないで自分自身をその地位にまで押し上げてしまう、人の心の闇が作り出したものです。
イエスさまはこの間、ひたすら沈黙しておられます。ただ一度だけ、大祭司の問いに答えて「人の子が全能の神の右に座り、天の雲に乗って来る」(64節)と、終わりの時について語っておられます。それが人の子イエスさまに定められた神さまの決定であり、イエスさまを裁く者たちが聞くべき神さまの裁きの告知でした。しかし、イエスさまは神さまの小羊として自らを犠牲にするため、沈黙してこの苦難を引き受けて行かれたのです。
ユダヤの権力者たちが、自分たちの正当性を主張するために採用したのが、二つの証言でした。
まず、60節です。「この男は、『神の神殿を打ち倒し、三日あれば建てることができる』と言いました」という証言です。彼は神殿を破壊する危険人物だ、というわけです。この証言はイエスさまがかつて言われたことを曲解したものです(ヨハネ2章19節)。
イエスさまがその時言われた神殿というのは、ご自身の体のことでした。自分は殺されるけれども三日目によみがえるという預言だったのです。
しかし、この時、イエスさまは反論することなく、沈黙を守ったままでした。この裁判自体が全く不当なものであり、出てくる証言も偽証であり、いくらでも反論できたはずです。それでもイエスさまは一切反論することなく、すべてを主権者であられる父なる神さまに委ね、沈黙を守られました。
イエスさまが沈黙を守ったままでしたから、これ以上話が進みません。そこで、大祭司自ら、決定的な質問をしました。63節です。「生ける神に誓って我々に答えよ。お前は神の子、メシアなのか。」
当時、ユダヤの裁判において、被告に対して、有罪に定める質問を発し、その答えを強要することは禁じられておりました。だから、イエスさまはこの時、黙秘権を行使することが出来ました。
しかし、イエスさまはこの大祭司の問いに対し、裁判の席であるかどうかに関係なく、真実を告げるためにこう言われました。64節です。「それは、あなたがたが言ったことです。しかし、わたしは言っておく。あなたがたはやがて、人の子が全能の神の右に座り、天の雲に乗ってくるのを見る。」
イエスさまのこの答えは、ただ真実を告げただけでした。イエスさまは明らかに、ダニエル7章13~14節に啓示されている終わりの日に登場するメシヤをご自分に当てはめておられます。
このメシアが全世界を裁くお方、と彼らも知っておりましたから、自分たち全世界の裁き主を裁くという愚かなことをしている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当然、そんな主張を彼らは受け入れることは出来ません。大祭司たちは自分の服を引き裂きながら怒り狂い、神さまへの冒涜だと決めつけ、死刑判決を下します。
そこには、確かな判決根拠も何もありません。彼らにあったのはイエスさまに対する憎しみだけです。彼らは自分たちが神さまを裁いていることも知らず、イエスさまを偽メシア、偽預言者と決めつけ、死刑判決を下し、さらにイエスさまの顔に唾を吐きかけ、殴り、冒涜しました。こうした行為は旧約時代、預言者たちに対してユダヤ人たちが行った愚かな行為と同じです。イエスさまはこの侮辱行為の間も口を開くことなく、沈黙を守ります。
このイエスさまの沈黙を私たちは心に刻まなければなりません。私たちは過ぎた自己主張を繰り返してはいないでしょうか。ちょっとでも気に入らないことがあると声を大にして訴える。そこまでいかなくとも、私の権利、私が、私に、私を、というこの私が鳴り止みません。私のプライドが許さないのです。しかし、その一方で、口を開かなければならない時に、口を閉ざしてしまう。人から何と思われるだろうか、と体面を気にしてしまいます。
ですから、私たちは今日の御言葉を単に祭司長たちがひどいことをイエスさまにしたとか、イエスさまは何とかわいそうな立場に置かれたと思って、終わりにしてはいけません。
なぜ、イエスさまはこのような仕打ちを受けられたのか。それは誰のせいなのでしょうか。誰が悪いのでしょうか。
イエスさまがこのような侮辱を受けられたことの責任を問うなら、まず私たちは自分の罪を思うべきです。
イエスさまはこのような仕打ちを何よりも私たちのために甘んじて受けてくださったのです。やがて天の雲に乗って栄光の内に現れる方がご自分を無にして、言葉に絶するこのような虐待をも一つ一つ耐え忍んでくださいました。
私たちは、これをイエスさまがこの私を救うためにしてくださったこととして見て、イエスさまの前にひれ伏し、またイエスさまに自らの罪を告白し謝罪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イエスさまの沈黙は、この私の身代わりを果たすための犠牲であったことを見て、この方の前に額ずき、心からの感謝の礼拝を献げ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して、この方がやがて栄光の内に天の雲に乗って来られる日を待ち望む生活へ導かれたいと願います。私たちがその日を恐れることなく、むしろ楽しみに待つことが出来るのです。なぜなら、私たちの罪がこの方の身代わりよって、全て裁かれたからです。イエスさまが私たちの代わりに、私たちが受けるべき苦しみと死をすべて受けてくださり、処理してくださったからです。
ですから、テサロニケの信徒への手紙一5章9節では、主の再臨の日を指してこう言われています。「神は、わたしたちを怒りに定められたのではなく、わたし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による救いにあずからせるように定められたのです。」(テサロニケ一5章9節)
主イエス・キリストは、今すでに、父なる神さまの右の座でこの世界をすべて治めておられます。そしてやがて、終わりの日に私たちを救うために再び来られて、ご自身の主権と栄誉に満ちた永遠の御国に導き入れてくださいます。
皆さん、その日をいつも見上げて、待ち望む希望の生活に導かれたいと願います。そして主イエス・キリストが払ってくださった尊い犠牲に信頼して、終わりの日には喜びをもって栄光の御国に入る者とされる歩みに導かれたいと願います。
【2026년 9월 6일 주일예배(요약판)】
“주 예수님의 침묵”
마태복음 26장 57~68절
겟세마네 동산에서 붙잡히신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가셨고, 그곳에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재판은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전혀 부당한 재판이었습니다.
의로운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거짓 증언을 하는 사람들이 여럿 나타났습니다. 거짓 증언은 분명한 율법 위반이며, 하나님께 대한 큰 죄입니다. 율법에 따른다면, 살해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교묘하게 실행하려고 했던 이 재판을 주도한 사람들이야말로 살인죄로 인해 모두 사형에 처해져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악을 행하는 권력자들에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라”거나 “하나님을 모독하였다”고 말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면서도 실제로는 사탄의 어둠의 일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일 뿐입니다. 의로운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어둠은 참된 심판주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그 자리에까지 끌어올려 버리는 인간의 마음의 어둠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과정에서 오직 침묵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단 한 번, 대제사장의 질문에 대답하시면서 “인자가 전능하신 이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64절). 그것이 바로 인자이신 예수님께 정해진 하나님의 결정이며, 예수님을 심판하려는 자들이 들어야 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선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시기 위해 침묵하시며 이 고난을 받아들이고 걸어가셨습니다.
유대의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내세운 것이 두 가지 증언이었습니다.
먼저 60절입니다. “이 사람의 말이 우리가 들으니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라는 증언입니다. 즉, 이 사람은 성전을 파괴하려는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이 증언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셨던 말씀을 왜곡한 것이었습니다(요한복음 2장 19절).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은 자신의 몸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죽임을 당하지만 사흘째 되는 날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예수님께서는 반박하지 않으시고 계속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이 재판 자체가 전혀 부당한 것이었고, 그들이 내놓은 증언도 거짓 증언이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반박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반박하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주권자이신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시며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속 침묵하고 계셨기 때문에 더 이상 재판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이 직접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63절입니다.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당시 유대의 재판에서는 피고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기 위한 질문을 하고 그 대답을 강요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이때 묵비권을 행사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의 질문에 대하여, 그곳이 재판정인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진실을 말씀하시기 위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64절입니다.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예수님의 이 대답은 그저 진실을 말씀하신 것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다니엘 7장 13~14절에 계시된 마지막 날에 나타나실 메시아를 자신에게 적용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메시아가 온 세상을 심판하실 분이라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온 세상의 심판주를 심판하는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들은 그러한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자기 옷을 찢으며 분노하고,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라고 단정하며 사형 판결을 내립니다.
그곳에는 확실한 판결의 근거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었던 것은 예수님에 대한 증오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심판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예수님을 거짓 메시아요 거짓 선지자라고 단정하고 사형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며 모욕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구약 시대에 유대인들이 선지자들에게 행했던 어리석은 행동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모욕을 당하시는 동안에도 입을 열지 않으시고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침묵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우리도 지나친 자기주장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큰소리로 주장합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나의 권리”, “내가”, “나에게”, “나를”이라는 이 ‘나’의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입을 열어야 할 때 오히려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며 체면을 신경 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의 말씀을 단순히 “대제사장들이 예수님께 너무 심한 일을 했다”, 또는 “예수님께서 얼마나 불쌍한 처지에 놓이셨는가”라고 생각하고 끝내서는 안 됩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일을 당하셔야 했습니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누가 잘못한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이러한 모욕을 당하신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먼저 우리는 자신의 죄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바로 우리를 위하여 이러한 일을 기꺼이 당해 주셨습니다. 장차 하늘 구름을 타고 영광 가운데 나타나실 분께서 자신을 비우시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이러한 학대까지도 하나하나 참고 견디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예수님께서 바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침묵이 바로 이 ‘나’를 대신하기 위한 희생이었다는 사실을 바라보면서, 그분 앞에 머리를 숙이고 마음으로부터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분께서 장차 영광 가운데 하늘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고 소망하는 삶으로 인도받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그날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기다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가 이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모두 심판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가 받아야 할 고난과 죽음을 모두 받으시고, 그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전서 5장 9절에서는 주님의 재림의 날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데살로니가전서 5장 9절)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이미 아버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셔서 이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장차 마지막 날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다시 오셔서, 자신의 주권과 영광으로 충만한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여 들이실 것입니다.
여러분, 그날을 언제나 바라보며 기다리는 소망의 삶으로 인도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귀한 희생을 신뢰하며, 마지막 날에 기쁨으로 영광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가 되도록 인도받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