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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年08月16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6年8月16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出エジプト(출애굽기) 24章 6~8節
〇讃    頌    讃頌歌 23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44 (詩編 100編 )
〇讃    頌    讃頌歌 518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 (마태복음)
                     26章 26~35節
〇説   教    「主の聖餐とペトロの離反
         (주님의 성찬과 베드로의 배반)」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290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1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6年 8月 16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主の聖餐とペトロの離反」
                    マタイによる福音書 26章 26~35節


 今日の聖書箇所は、イエスさまが聖餐を制定された食事の場面と、それに続く、ペトロの離反を予告された場面です。
 マタイによる福音書では、それぞれ違う場面での話となっていますが、ルカによる福音書では、同じ食事の場面でなされています。どちらが正しいのだろうかと疑問の残るところではありますが、私はこの二つの出来事を、一つの物語として捉えるべきだと思っています。
 それは、主の最後の晩餐に招かれた人々が、ユダであれ、ペトロであれ、また、他の弟子たちであれ、そこには、イエスさまを裏切り捨てていく人しかいなかったからです。


 ではまず、「主の聖餐」の場面ですが、イエスさまは祝福してからパンを裂いて「取って食べなさい。これはわたしの体である」と言われました。そして、続けてぶどう酒の入った杯を取り、感謝をささげてからこう言われました。「皆、この杯から飲みなさい。これは、罪が赦されるように、多くの人のために流されるわたしの血、契約の血である」と。
 イエスさまはパンとぶどう酒を「これはわたしの体」「わたしの血」と言われました。これは、これは、イエスさまにつまずくであろう弟子たち、イエスさまを裏切るであろう弟子たちに自分の命そのものを与えると、イエスさまは言われているのです。


 そして、十字架を前にして、最後に自分のすべてを託し、福音の御業を全世界へ、すべての人間に伝えるために、ご自身の後継者として弟子たちを選び、この御言葉を伝えているのです。
 しかし、イエスさまが自分の命そのものを託した相手というのが、その夜のうちに自分をおいて逃げて去って行ってしまうような者たちであったのです。もちろん、イエスさまの十二弟子たちが特別に出来の悪い弟子たちだったというわけではありません。この弟子たちは、私たちの代表としてここにいるのです。


 それにしても、イエスさまにしてみれば、この最後の食卓は、悲しい食卓であったと言わざるを得ないほど、ご自分が命をかけて愛した弟子たちは不十分な相手でした。その中には銀貨三十枚で自分を裏切る者もおり、他の弟子たちもみんなこの後逃げ去って行ってしまうのです。


 確かに、ペトロは言いました。「自分はそんなことはしない」と。33節です。「たとえ、みんながあなたにつまずいても、わたしは決してつまずきません。」(33節)
 ペトロには自信がありました。自分がどれほど主イエスを愛しているか。他の弟子たちには負けない愛があると、力を込めて語ることが出来ました。


 このペトロの言葉を聞いたイエスさまはどのようなお気持ちだったのでしょうか。恐らく、ペトロがそう言ってくれて嬉しかったのだろうと思います。それが、たとえ口先だけの言葉であったとしてもです。なぜなら、この時、ペトロは本当にそう思って「自分はイエスさまを愛していますから、そんなことはしません」と言っているからです。
 しかし、イエスさまにはそのペトロの言葉を喜んだと同時に、悲しみもあったのです。それはペトロの限界、人間の弱さをご存じであったからです。


 イエスさまは悲しみと苦しみを覚えながら、ペトロに告げ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34節です。「はっきり言っておく。あなたは今夜、鶏が鳴く前に、三度わたしのことを知らないと言うだろう。」(34節)
 イエスさまはがご自身の命を捨ててでも愛したいと思っていたペトロです。さらにペトロは「あなたはメシア、生ける神の子です」(マタイ16章16節)と、はじめて信仰告白した人物です。そのペトロに、「あなたは今夜、鶏が鳴く前に、三度わたしのことを知らないと言うだろうと」と言わ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す。


 当然、ペトロは反論します。「たとえ、御一緒に死なねばならなくなっても、あなたのことを知らないなどとは決して申しません。」(35節)
 ペトロは自信を持って答えました。それほどまでに、ペトロはイエスさまに対する信仰を確実なものとしていたのです。
 私たちは、自分に自信がある時があります。このことはやり遂げることができると確信を持って言うことができる時があります。これまでの経験から判断してみても、やり通すことができると思える時があります。


 一方、自分に自信のない部分があります。私を裏切る者がいると言われて、自分の心が見透かされたような思いになることがあるのです。
 この自信のある部分と、自信のない部分。どちらも私たちです。イエスさまは弟子たちであれ、私たちであれ、私たち以上に、私たちのそういった部分をよく知っておられるのです。
 ユダも、ペトロも、そのほかの弟子たちも、誰一人として、イエスさまの愛に正しく応える力を持っておりませんでした。けれども、そのことを承知の上で、イエスさまはご自分の命をお与えになられたのです。


 この主の晩餐の時に、イエスさまは「これはわたしの体である」「これは、罪が赦されるように多くの人のために流されるわたしの血、契約の血である」と言われました。
 この「契約の血」という言葉ですが、「契約」と言えば、お互いが守るべき約束事を意味しています。しかし、イエスさまがここで言われている「契約」というのは、人間に約束を守ることを期待して言われているのでありません。神さまがここで契約をしようとしておられるのは、不確かな人間です。自分は絶対大丈夫だと自信をもって言うことができても、実際にどうなるかわからないのです。そういう不確かな弟子たちと、また、私たちと契約を結ぼうとしても、私たちが神さまとの約束を守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ら、この約束は無効になってしまう、というものであれば、誰一人として新しい契約の中に招かれることなどできません。この神さまの「契約」というのは、「主イエス・キリストの血を流すことによって、これであなたがたの罪を赦すのだ」と一方的に宣言なさっていることなのです。
 しかも、イエスさまはこうも言われています。32節です。「しかし、わたしは復活した後、あなたがたより先にガリラヤへ行く。」(32節)


 イエスさまは、この晩餐において神さまの宣言をなさいました。「あなたがたのためにわたしは死ぬ。わたしの命ががあなたがたの罪を赦す」と言われます。けれども、「あなたがたは弱いのですぐにわたしから逃げてしまうでしょう。そんなことは分かっている。分かっているけれども、大丈夫だ。それでももう一度あなたがたを招きます。わたしはあなた方の先回りをしてガリラヤに行っているから、そこで再会しようではないか。」そう言われたのです。


 私たちの弱さも何もかも御存じで、主の方で先回りしてくださると約束を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これもまさに神さまの一方的な宣言です。この神さまの思いに答えるかどうかは、人間に委ねられています。しかし、このイエスさまの招きがここであったから、イエスさまを捨ててしまった弟子たちはもう一度ガリラヤに行って、復活の主とお会いすることができたのです。


 この最初の主の晩餐、この小さな晩餐での出来事は、人間の弱さと、主イエスの言葉の届かない悲しみに満ちた食卓でした。ここに招かれている人々にあるのは、ただ不信仰と、弱さだけです。けれども、イエスさまはそのような者をお招きになられたのです。そして、あなたがたの罪を、その弱さを、その不信を克服されるのだと、イエスさまは約束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


 この主イエス・キリストは、今、私たちを主の食卓に招いてくださるのです。「あなたのためにもわたしは十字架で死んだのだ。あなたの弱さも、不信仰も全部分かっている。私を裏切ってしまうことも、自分には出来ると言ったのに、できないことも全部分かっている。けれども、わたしはあなたを愛しているのだ。あなたにわたしの命を与えたいのだ」と。そう言って私たちを招いていてくださるのです。この主に招かれて私たちは今ここで礼拝を捧げ、そして、この一週間、主と共に歩むのです。


【2026년 8월 16일 주일예배(요약판)】

    “주님의 성천과 베드로의 배반” 
                               마태복음 26장 26~30절


  오늘 성경 본문은 예수님께서 성찬을 제정하신 식사의 장면과, 이어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을 예고하시는 장면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두 이야기가 각각 다른 장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같은 식사 자리에서 이 일이 일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남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두 사건을 하나의 이야기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마지막 만찬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유다이든, 베드로이든, 다른 제자들이든, 그곳에는 결국 예수님을 배반하고 버리고 떠나갈 사람들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주님의 성찬”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그리고 이어서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께서는 떡과 포도주를 가리켜 “이것은 내 몸이다”, “이것은 내 피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으로 말미암아 실족하게 될 제자들, 그리고 자신을 배반하게 될 제자들에게 자신의 생명 그 자체를 내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시며, 복음의 역사를 온 세상에,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자신의 뒤를 이을 사람들로 세우시고 이 말씀을 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 그 자체를 맡기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바로 그날 밤 예수님을 두고 도망쳐 버릴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특별히 형편없는 사람들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제자들은 바로 우리의 모습을 대표하여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 마지막 식탁은 참으로 슬픈 식탁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사랑하셨던 제자들이지만, 그들은 너무나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은 삼십에 예수님을 배반할 사람도 있었고, 다른 제자들도 모두 이 일이 있은 후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쳐 버릴 것입니다.


  분명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33절입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베드로에게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지, 다른 제자들에게는 뒤지지 않는 사랑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힘주어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 베드로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아마 베드로가 그렇게 말해 준 것이 기쁘셨을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입으로만 한 말이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 베드로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니 그런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말을 기뻐하시는 동시에 슬퍼하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한계와 인간의 약함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슬픔과 고통을 느끼시면서도 베드로에게 말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3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사랑하고 싶어 하셨던 사람이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더욱이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 처음으로 신앙고백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 16장 16절)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셔야 했습니다.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


  당연히 베드로는 반박했습니다. 35절입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베드로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만큼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한 자신의 믿음에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자신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돌아보아도, “나는 끝까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자신이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나를 배반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마치 내 마음속을 꿰뚫어 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자신 있는 모습과 자신 없는 모습, 그 두 모습 모두가 바로 우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든 우리들이든, 우리 자신보다도 우리의 그런 모습을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유다도, 베드로도,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그 누구도 예수님의 사랑에 올바르게 응답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모두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명을 그들에게 내어주셨습니다.


  이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내 몸이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여기서 “언약의 피”라는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언약”이라고 하면 서로가 지켜야 할 약속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언약”은 인간에게 약속을 지킬 것을 기대하시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기서 언약을 맺으시는 대상은 확실하지 않은 인간입니다. 우리는 “나는 절대로 괜찮습니다. 나는 반드시 지킬 수 있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 불확실한 제자들과, 또 우리들과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신다고 생각해 봅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그 언약이 무효가 되어버리는 것이라면, 과연 누가 새로운 언약 안으로 초대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언약”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선언하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흘림으로써 내가 너희의 죄를 용서하겠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으시는 언약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2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예수님께서는 이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너를 위하여 내가 죽겠다. 나의 생명이 너의 죄를 용서할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약하기 때문에 곧 나를 버리고 도망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괜찮다. 그래도 다시 너를 부르겠다. 내가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곳에서 다시 만나자.”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약함도, 우리의 모든 모습도 알고 계시면서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가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 역시 철저하게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언입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에 우리가 응답할 것인지는 인간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예수님의 초대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버리고 떠났던 제자들은 다시 갈릴리로 돌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처음 있었던 주님의 성찬, 이 작은 식탁에서 일어난 사건은 인간의 약함과 주님의 말씀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듯한 슬픔으로 가득한 식탁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있었던 것은 오직 불신앙과 연약함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초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죄를, 너의 약함을, 너의 불신앙을 이겨낼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우리를 주님의 식탁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너를 위해서도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다. 나는 네가 얼마나 약한지 알고 있다. 네가 얼마나 믿음이 부족한지도 알고 있다. 네가 나를 배반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네가‘나는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결국 하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너에게 나의 생명을 주고 싶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며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 그 주님의 초대를 받아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간도 우리보다 먼저 앞서가시는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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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日:2026年08月16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