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年07月05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6年7月5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箴言(시편) 4章 20~21, 25~26節
〇讃 頌 讃頌歌 8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81 (エフェソ4章 )
〇讃 頌 讃頌歌 600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 (마태복음)
25章 1~13節
〇説 教 「拒自分の灯火を灯す
(거절당해도 끝까지 베푸시는 사랑)」
〇祈 祷
〇聖 礼 典 学習式・洗礼式
聖餐式
〇讃 頌 讃頌歌 178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1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6年 7月 5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自分の灯火を灯す」
マタイによる福音書 25章 1~13節
今日の聖書箇所のテーマは、「人生に自分の灯火を灯す」ということです。私たちの人生は明るい時ばかりではありません。むしろ暗い時の方が多いかもしれません。だからこそ、暗い道を前に進むために自ら灯火を持たないといけません。どこまでも己の掲げた灯火を頼り前に進んで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うことです。それが、一度限りの人生を、本当に意味ある人生として生きる確かなる方法かと思うのです。
さて、今日の聖書箇所は、イエスさまが語った「十人のおとめの譬え」話です。この譬えによると、天の国、つまり神さまの働きは、花婿を迎える乙女のようなものだ、と言います。この譬えに花嫁は登場しません。ここに登場するのは、花婿と花婿を迎える乙女たちだけです。そして、この花婿は主イエス・キリストを意味し、乙女たちは私たちのことを意味しています。花婿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を、花婿を迎える乙女として私たちがどのような態度でお迎えするのかが、問題となっているのです。
夜、花婿を迎えるために十人の乙女が灯火を灯して待っていました。ところが、花婿はいつまでたってもなかなか来ません。真夜中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乙女たちは十人とも眠ってしまいました。その時、突然「花婿だ。迎えに出なさい」と叫ぶ声が響き、びっくりして飛び起きました。
その時、灯火の火がすでに消えていました。それでも「賢いおとめ」と呼ばれる5人の乙女たちは予備の油を用意していましたから、すぐに火をつけ直すことが出来、無事に花婿を迎え、宴会場に入ることが出来ました。
しかし、「愚かな乙女」と呼ばれる5人の乙女たちは、慌てて油を買いに行ったものの花婿の到着には間に合わず、花婿を迎えることが出来ませんでした。しかも婚宴会場に入ることも許されなかったと言うのです。
それにしても「愚かな乙女たち」はかわいそうですよね。この乙女たちも灯火を準備していたのです。でも、花婿が来るのが遅かったせいで、油がなくなり、灯火が消えてしまったわけで、愚かな乙女たちの責任を追求するにはあまりにもかわいそうです。
愚かな乙女たちは賢い乙女たちに油を分けてくれるように頼みました。賢い乙女たちは「店に行って、自分の分を買って来なさい」と冷たくあしらいます。こんな理不尽なことを愛の神さまがなさるのは、どうも納得いきません。じゃ、この譬え話にはどんな意味があるのでしょうか。
まず、「花婿の来る時」というのは、「神さまが私の人生に働かれる時」のことです。そして、この譬え話が言いたいのは、その「花婿の来る時」が神さまの定める時ですから、人間の思い通りにはいかないと言うことです。まだかまだか、遅い遅いと私たちは自分勝手に思ってしまうのです。
しかし、神さまの来られる時、私に働いてくださる時と言うものが、必ず訪れるのです。私たちには、その時がはっきり分からないから、やきもきするし、信じられないと言うし、この譬え話のように、眠り込んでしまったりするわけです。
神さまは、突然、私の人生に来られます。神さまはいつも私たちの側におられ、守ってくださっておられるのですが、神さまの御計画の内に、ある時、直接的に深く関わってくださる時があるのです。そして、その時がいつであるのか、私たちには分かりませんから、「突然のように」と私たちは思うわけですね。
その時、十人の乙女たちは二つに分けられました。それが「賢い乙女」と「愚かな乙女」です。この両者の違いは何だったのかと言いますと、予備の油を持っていたか、どうかと言うことです。両者とも眠り込んでしまい、持っていた灯火の火は消えてしまっていました。しかし、予備の油を持っていた賢い乙女たちは、花婿が突然来た際に、火をすぐにつけ、花婿を迎えることが出来ました。
人間、「まだかまだか」「まだだまだだ」と、まどろんでいるうちに、自分の命の火が消えそうになっているのです。
「木こりのジレンマ」という話があります。ある木こりが、がんばって木を切っていました。通りがかった旅人がその様子を眺めていましたが、斧を振るう勢いのわりに、なかなか木が切れていません。よく見ると木こりの使っている斧が刃こぼれしているようなので、旅人は「斧を研いだほうがいいのでは?」と言いました。すると、木こりは「わかっちゃいるんだけどね、木を切るのに忙しくて、それどころじゃないよ」と言ったという話です。
この話は、人生忙しく働くままに、自分の命の手入れをしないうちに、自分の命の火が、消えそうになっていることを表しています。
皆さん、暗いこの世の中で、生きることに慣れてしまった私たちは、いつの間にか心が乾ききってしまっていて、何も感じなくなってしまっ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そして、ある時、「一体私は何をしてきたんだ」と思うのです。
ところが、賢い乙女は、油の用意をしていました。予備の油を持っていた、というのです。人生の油、この時のため、という自分のために蓄える油、そういうものがあるのです。
それは「分けてください」と誰かに頼んでも、借り物では間に合わない、自分の人生があるのです。自分が蓄えるしかありません。自分で掴むしかないのです。
それでは、人生のための油とは何でしょうか。
それは、私たちが暗闇を一人歩む時も、その傍らで共に歩んでくださる主イエス・キリストのことです。主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信仰という灯火を灯して、先の見えない暗闇の道であっても、灯火の光に頼りつつ、一歩一歩前に歩んで行くのです。
「私のとなり」をいつも共に歩んでくれる主がおられます。この主こそ、人生の油なのです。そして、それは永遠に尽きることのない命の油なのです。
私たちは今日、教会創立78周年を祝いながら礼拝を守っていますが、この78年の間、主が私たちのとなりをいつも歩んでくださいました。まさに婚宴会場として、広島教会が祝福の場になって来ましたけども、じゃ、私たち一人一人が自分の灯火を灯して、主イエス・キリストをお迎えしているのか、もう一度私たちは考える必要があります。
主イエス・キリストという人生の油、永遠に尽きることのない命の油を、ぜひ、皆さん、用意してください。私たちの人生がいくら暗かろうとも、前を明るく照らしてくださる主イエス・キリストに依り頼みながら歩むならば、確実に前へと進むことが出来るのです。
【2026년 7월 5일 주일예배(요약판)】
“자신의 등불을 밝히라”
마태복음 25장 1~13절
오늘 말씀의 주제는 “인생에 자신의 등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밝은 날만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둡고 힘든 시간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두운 길을 걸어갈 때 스스로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 자신이 들고 있는 등불을 의지하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참으로 의미 있게 살아가는 가장 확실한 길일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서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는 신랑을 맞이하는 열 처녀에 비유됩니다. 흥미롭게도 이 비유에는 신부는 등장하지 않고 신랑과 신랑을 맞이하는 처녀들만 등장합니다. 여기서 신랑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처녀들은 우리를 가리킵니다. 결국 이 비유는 우리가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자세로 맞이하느냐를 묻고 있는 말씀입니다.
어느 날 밤, 열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등불을 켜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랑은 좀처럼 오지 않았고, 어느새 한밤중이 되었습니다. 기다리던 처녀들은 모두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보라, 신랑이 오신다. 맞으러 나오라!”라는 외침이 들렸습니다. 처녀들은 놀라 급히 일어났지만, 등불의 불은 이미 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미리 예비 기름을 준비해 두었기 때문에 곧바로 등불을 다시 밝힐 수 있었고, 무사히 신랑을 맞아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반면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사러 갔지만 신랑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지 못했습니다. 결국 신랑을 맞이하지도 못했고, 혼인 잔치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미련한 처녀들이 참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등불을 준비했습니다. 다만 신랑이 예상보다 늦게 오는 바람에 기름이 다 떨어져 불이 꺼진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그들의 책임만을 묻기에는 너무 가혹하게 느껴집니다.
또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누어 달라고 부탁했을 때, 슬기로운 처녀들은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말합니다. 얼핏 보면 너무 차갑고 인정 없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왜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비유가 전하려는 뜻은 무엇일까요?
먼저 신랑이 오는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특별히 역사하시는 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때는 하나님의 시간이지 우리의 시간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왜 아직도 오시지 않는가?”, “왜 이렇게 늦으시는가?”라고 조급해하며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찾아오시는 때는 반드시 있습니다. 다만 그때를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초조해하고, 믿음을 잃기도 하며, 비유 속 처녀들처럼 영적으로 잠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삶에 갑작스럽게 찾아오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어떤 때에는 특별하고 깊은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역사하시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시기를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갑작스럽게 찾아오시는 것처럼 느끼는 것입니다.
그 순간 열 처녀는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입니다. 두 부류의 차이는 단 하나였습니다. 예비 기름을 준비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두 부류 모두 잠이 들었고, 등불도 모두 꺼졌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예비 기름이 있었기에 신랑이 왔을 때 곧바로 다시 등불을 밝히고 신랑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아직이겠지”, “조금 더 있다가” 하며 살아가는 사이에 어느새 생명의 불꽃이 꺼져 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나무꾼의 딜레마”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나무꾼이 열심히 나무를 베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여행자가 보니, 힘껏 도끼를 휘두르는데도 나무가 좀처럼 잘리지 않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도끼날이 무뎌져 있었습니다. 여행자가 “도끼날을 먼저 갈아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자, 나무꾼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요. 하지만 나무를 베느라 너무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바쁘게 살아가느라 정작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못한 채, 어느새 인생의 불빛이 꺼져 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두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어느새 마음이 메말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라고 되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예비 기름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위해 미리 쌓아 두는 기름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기름은 다른 사람에게 “조금만 나누어 주세요”라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으로 대신할 수도 없습니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준비해야 하고, 자신이 붙잡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인생을 위한 기름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어두운 인생길을 홀로 걸어갈 때에도 언제나 우리 곁에서 함께 걸어 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이라는 등불을 밝힌 채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그 빛을 의지하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곁에는 언제나 함께 걸어 주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바로 그 주님이 우리 인생의 기름이십니다. 그리고 그 기름은 결코 마르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기름입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 창립 78주년을 감사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난 78년 동안에도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걸어오셨습니다. 이 교회는 마치 혼인 잔치와 같은 축복의 자리로 세워져 왔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과연 내 믿음의 등불을 밝히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생의 기름, 결코 다하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기름을 꼭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이 아무리 어둡다 할지라도, 앞길을 환히 비추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걸어간다면 우리는 반드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