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年06月21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6年6月21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ミカ書(미가) 4章 12~13節
〇讃 頌 讃頌歌 42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28 (詩編63編 )
〇讃 頌 讃頌歌 214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 (마태복음)
23章 13~36節
〇説 教 「自分の姿を知る
(자신의 모습을 아는 것)」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216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1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6年 6月 21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自分の姿を知る」
マタイによる福音書 23章 13~節
イエスさまは23章において律法学者やファリサイ派の人々の偽善を徹底的に批判されておられます。13節では、律法学者やファリサイ派の人々の教えそのものが「天の国を閉ざす」ものだと批判しておられます。
彼らの教えが正しければ、それを聞く人々は天の国へと導かれるはずでした。しかし、彼らの教えは、偽善であり、自分の信仰を鼻にかけて人に見せびらかすようなものでした。それでは人々を天の国に導くことは出来ません。
そればかりか、彼らは、悪人呼ばわりされないために、うそを巧妙にごまかしていました。そんなうそが人を救いに導くことなんて出来るはずもなく、むしろ、それを信じた人々が、さらに酷い過ちに陥ってしまいます。
それから、16節~22節では「誓い」の儀式について触れられています。この「誓い」というものは、神さまに自分の大事なものを献げますから、願いを聞いてくださいというものですが、それは神さまに対する強い請願を意味し、願いが叶ったら、最初に約束したささげ物を神さまに献げるというものですから、本来、その人の願い、祈りに重点が置かれているものです。
それが、彼らは「黄金」や「供え物」に強調点を置き、神殿で誓いを立てるだけでは駄目で、神さまに誓う時にはささげ物を献げて誓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います。まあ、それが神殿の収入源になるわけですが、今で言いますと、皆さんが教会で祈る時には必ず献金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うことです。そうでないと、神さまはその祈りを聞いてくださらないと、平気で言っているわけです。
それから23節と24節で指摘されるのは、そうした心を欠いたまま形式だけに拘る信仰心の本末転倒ぶりです。
献げものとしてあげられている「薄荷、いのんど、茴香」というのは、「薄荷(はっか)」はミント、「いのんど」はセリ科の植物でいわゆるハーブですね。「茴香(ういきょう)」はクミンですね。そのどれも日常の食卓で使われるもので、律法学者や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その収穫にもきちんと「十分の一」献金の掟を適用して守るようにと指導しました。 まあ、この細やかな適用そのものが悪いことではないのですが、彼ら「偽善者」によるそうした細かな適用が実に滑稽なのは、規則にどこまでも忠実であろうとする反面、最も大事なことを忘れてしまっているからです。
あなたたちは十分の一は献げるが、「律法の中で最も重要な正義、慈悲、誠実はないがしろにしている」と、イエスさまは言われます。
神さまが人に求めておられるのは、ほんの一握りのハーブではなくて、「正義、慈悲、誠実」という人の心であることは当たり前のようですけれども、信仰が形骸化してくるとこういうことが起こってきます。こういう本末転倒したあり方が、24節では「あなたたちはぶよ一匹さえも漉して除くが、らくだは飲み込んでいる」と皮肉たっぷりに表わされています。
イエスさまは「偽善」という言葉を何度も使われておりますが、私たち罪人は人前で演じているうちに、どれが本当の自分なのか、自分でもわからなくなってしまいます。そして、自分を善人だと思い込います。おそらく、ファリサイ派の人たちがそうであったのでしょう。
そのために、私たちは正しく自分の姿を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自分の姿を正しくしるために、二つのことを申し上げます。
まず第一に、神さまにあって自分の動機を良く調べることです。
たとえば、正しい行いをしようとするの場合でも色々な動機があるかと思います。ある人は、自分が他の人より優れていると見られたいがために、正しい行いをしようと考えます。またある人は、自分の利益、報酬のためにそうします。他にも、寵愛を受けたいがためにします。また、法の処罰を恐れてそうします。他にも、自分の地位を失うのを恐れてそうしたり、中には、悪事をたくらみ、相手を自分の味方につけておくためにそうします。その他もあるでしょう。
でも、これらの人たちは、その行いだけを見るならば、善い行いとして、どれも正しく見えるのです。でも、誠実と正義のためではありません。どれも自分のためなのです。
ですから、私たちは仮面の下にあるものを見る勇気を持たければなりません。私たちは自分のために次のように祈りたいと思います。「神さま。あなたの光によって私の心を照らしてください。私のうちにある汚れを、あなたの光の中で露わにしてください」と。
そして、自分の姿を正しく知るための第二のことは、御言葉と真正面から向き合うことです。聖書の御言葉は、私たちの姿を写し出す鏡です。私たちは、御言葉を通して自分の姿を正しく知り、神さまの前に貧しい心にな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自分さえも欺き、自分の罪を素直に認めないでいるなら、清めも、成長も何もありません。
ただ、自分の罪を認めるというのは、自分の内面と向き合うことですから、ごまかしがききません。そのため、多くの人が不安になり、落ち込み、敗北感を味わいます。だから、それをしたくありません。けれども、そこを通過しない限り、本当の意味での明日はないのです。
だからこそ、イエスさまは人の内側に注意を向けさせておられます。「このように、あなたたちも、外側は人に正しいように見えながらも、内側は偽善と不法で満ちている」(28節)と。
私たちは、日々、そこに関心を払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目をそむけずに。臭いものに蓋をしてしまうことなく、むしろ、それをこじあけて、そこに何があるのかを見ていく勇気が必要なのです。
私たちは普段、自分を点検するためにではなく、他人を裁くためにエネルギーを使っています。次の言葉は的を得ています。「われわれは自分自身の中に潜む利己主義と不完全さと戦うべきなのであり、他者のそれと戦うべきではない。思いにおいて、ことば、行動において他を裁くエネルギーの十分の一でも自分を裁くことに使えば、世界は今よりはるかによくなり、人間らしいものとなるだろう。」
ですから、イエスさまは人を裁くエネルギーを自分に向けるように言われているのです。
私たちは元来罪人に過ぎません。ですが、覚えておきたいことは、罪の中でも、自分をりっぱに見せようと装う偽善の罪は、非常に重い罪の部類に入るということです。自己中心で高慢なサタンの霊性に通じる罪であるからです。
だからこそ、私たちは自分の姿を正しく知り、悔い改めるべきことは悔い改め、キリストの血潮と聖霊に拠り頼む生活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そして、善を行うという時は、単純に、「隣人の善のために善を行う」ということ。また、「神さまのために、しかも、神さまと共に、神さまの力で隣人に善を行う」ということです。
そこには、自分をよく見せたいとか、自分の行いを功績として認めてもらおうといった不純な動機はありません。それこそが主イエス・キリストが求めていることなのです。
【2026년 6월 21일 주일예배(요약판)】
“자신의 모습을 아는 것”
마태복음 23장 13~36절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3장에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철저하게 책망하십니다. 13절에서는 그들의 가르침 자체가 사람들에게 천국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가르침이 올바른 것이었다면,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마땅히 천국으로 인도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르침은 위선적이었고, 자신의 신앙을 자랑하며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가르침으로는 결코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악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거짓을 교묘하게 포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거짓이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믿는 사람들까지 더욱 깊은 잘못에 빠지게 만듭니다.
또한 16~22절에서는 '맹세'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본래 맹세란 하나님께 자신의 소중한 것을 드리겠다고 약속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강한 간구를 의미하며, 소원이 이루어지면 처음에 약속했던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래의 중심은 사람의 간절한 소원과 기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금'과 '예물'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성전에서 맹세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반드시 예물을 드리며 맹세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결국 그것은 성전의 수입원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에서 기도할 때 반드시 헌금을 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23~24절에서는 마음은 빠진 채 형식만 중시하는 신앙의 전도된 모습을 지적하십니다.
본문에 나오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는 모두 일상에서 사용하는 향신료와 허브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이런 작은 수확물에도 철저하게 십일조 규정을 적용하도록 가르쳤습니다.
물론 세세하게 율법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운 이유는, 규칙에는 끝없이 충실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마태복음 23:23)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원하시는 것은 한 줌의 허브가 아니라 정의와 긍휼과 성실함이 담긴 마음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신앙이 형식화되면 이런 본말전도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24절에서 이렇게 풍자하십니다. “맹인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마태복음 23:24)
예수님께서는 '위선'이라는 말씀을 반복해서 사용하십니다. 죄인인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계속 어떤 역할을 연기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무엇이 진짜 자기 모습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을 선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아마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바르게 알기 위해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동기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선한 일을 하려고 할 때에도 다양한 동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더 뛰어나 보이고 싶어서 선한 일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익이나 보상을 위해 그렇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또 어떤 사람은 처벌이 두려워서 그렇게 합니다. 자신의 지위를 잃을까 두려워서 선행을 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악한 의도를 품고 상대를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 보면 모두 선한 행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의와 성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결국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면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를 볼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주님의 빛으로 제 마음을 비추어 주십시오. 제 안에 있는 더러움을 주님의 빛 가운데 드러내 주십시오.”
둘째, 자신의 모습을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 앞에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마저 속이며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는다면, 정결함도 성장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일이기에 결코 자신을 속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낙심하며, 패배감을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참된 의미의 내일은 결코 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시선을 사람의 내면으로 향하게 하십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태복음 23:28)
우리는 날마다 바로 그 부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냄새나는 것에 뚜껑을 덮어 버리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열어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보통 자신을 점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다음의 말은 참으로 정확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이기심과 불완전함과 싸워야지, 다른 사람의 그것과 싸워서는 안 된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데 쓰는 에너지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자신을 돌아보는 데 사용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인간다운 곳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판단하는 에너지를 자기 자신에게 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본래 죄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많은 죄 가운데서도 자신을 훌륭하게 보이기 위해 꾸미고 포장하는 위선의 죄는 매우 무거운 죄에 속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자기중심적이고 교만한 사탄의 영성과 통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바르게 알고, 회개해야 할 것은 회개하며,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선을 행할 때에는 단순히 이웃의 유익을 위해 선을 행하는 것, 또한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곳에는 자신을 좋게 보이고 싶다거나, 자신의 행위를 공로로 인정받고 싶다는 불순한 동기가 없습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