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年06月14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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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年6月14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ヘブライ人への手紙(히브리서) 4章 12~13節
〇讃 頌 讃頌歌 39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26 (詩編50編 )
〇讃 頌 讃頌歌 287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 (마태복음)
23章 1~12節
〇説 教 「サーヴァントリーダーになろう
(사번트 리더가 됩시다)」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327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1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6年 6月 14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サーヴァント・リーダーになろう」
マタイによる福音書 23章 1~12節
「わが子よ、私の言葉を聞きなさい。そして実行しなさい。しかし、私の振る舞いに倣ってならない。」
これは、あるユダヤ人の父親が自分の子どもに語った言葉と伝えられています。この言葉は、子どもを持つ親であれば、誰もが共感する言葉であろうかと思います。親は、子育ての中で、子どもをよりよく育てたいと思い、多くを学びます。そして、その学んだ中から、子どもたちに良き言葉や生きるために必要な方法を教えます。しかし、自分の言葉と日常の振る舞いの間に隔たりがあるのをどこかで感じています。
今日のイエスさまの言葉は、まさにそんな私たちに語っているように思います。
マタイによる福音書23章は、律法学者やファリサイ派の人たちに対する徹底したイエスさまの批判です。13節以降には、律法学者やファリサイ派の人たちに対し、「あなたたちは不幸だ」と、イエスさまは7回も呪いの言葉を発しておられます。今日は、その中の12節までの言葉を見て行きますが、ここで、律法学者やファリサイ派の人たちは、信仰の反面教師とされています。
「律法学者と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福音書の中では多くの場合「悪人」呼ばわりされており、イエスさまの批判は徹底しています。それでも、律法学者とファリサイ派の人々すべてが悪い人ではありません。以前にも言いましたが、彼らの中には、イエスさまから「あなたは神の国から遠くない」と褒められる人もおりましたし、アリマタヤのヨセフのように、イエスさまが十字架で息を引き取られた後、墓に葬ったサドカイ派の高官もいました。ただ、民衆にとっては、彼らは総じて自分たちの上に立つ人、「リーダー」のような存在であったわけです。
当時のリーダーたちは、7節の「先生」と呼ばれる人たちです。この「先生」は「ラビ」という言葉であり、もともとは「わが師、わが主人」という意味で、これはまさに「上に立つ」人への敬意を表す言葉でした。ラビたちは報酬を一切受け取らず、聖書とタルムードと言われる「口伝律法(昔からの言い伝え)」を教えました。彼らは生計を立てるために別の職業に就いていました。
ですから、彼らは別に悪人ではないのです。しかし、彼らは律法を守ることばかりに囚われ、律法をきちんと守って、規律ある生活を送るようにと人々に指示し、それを守っているかどうかを監視するわけですね。そこには寛容とか柔軟性がありません。人間関係のおおらかさもありません。
その一方で、彼らは律法の専門家ですから、律法の抜け道も知っているので、人には厳しく律法を守るように言いながらも、自分には寛容な人もいたようです。そのため、イエスさまは「背負いきれない重荷をまとめ、人の肩に載せるが、自分ではそれを動かすために、指一本貸そうともしない」(4節)と、彼らを批難しておられるのです。
それが当時のリーダーたちでした。「言うだけで実行しない」リーダーたちの心にあるものが、5節にこう見抜かれています。「そのすることは、すべて人に見せるためである。」(5節)
彼らの振る舞いは見栄であって、人の上に権威を振るうことを喜びとしています。そのため目立つように、「聖句の入った小箱を大きくしたり、衣服の房を長くしたり」(5節)して、いかにも自分が信仰深いようなふりをしていたのです。
そして、彼らが大事にしていたのは、見栄であり、権威を振るうことでしたので、「宴会では上座、会堂では上席に座ることを好み、また、広場で挨拶されたり、『先生』と呼ばれたりすることを」(6-7節)好みました。
このようなことを大っぴらに指摘されれば、大変恥ずかしい人の思いなのですが、それに執着している人は、自分が恥ずかしいことをしていることに気付かないのです。自分が信仰から外れていることに気付かないばかりか、むしろ自分が神さまに従う信仰深い人間だと勘違いしているのです。このような人たちがリーダーですと大変ですよね。
今の教会の中で「リーダー」と言いますと、牧師であり、長老、勧士にあたる人であるわけですが、ファリサイ派の人たちを反面教師として、そこから学ばなければなりません。
教会のリーダーというのは、支配型リーダーではなく、奉仕型リーダーが求められております。いわゆる「サーヴァント・リーダー」と呼ばれるものです。今、一般企業でもこの「サーヴァント・リーダー」となる人材が求められています。
サーバントとは本来、「使用人」や「召使い」という意味を持つ言葉です。それだけで従来の支配型リーダーとは対極にある言葉ですが、「サーヴァント・リーダー」はより具体的には「支援型リーダー」「奉仕型リーダー」と呼ぶことができます。
このリーダーに求められる資質や特徴は何かと言いますと、「傾聴、共感、癒し、説得、気づき、概念化、先見力、執事役、成長促進、コミュニティの育成」等の働きであると言います。
このように言いますと、どれも重く、難しく聞こえるかも知れません。しかし、人間や社会にとって不可欠な働きであるのは確かです。そして、イエスさまが、弟子たちに求めている働きは、まさにそれなのです。
10節をご覧下さい。「あなたがたの教師(ラビ)はキリスト一人だけである。あなたがたのうちでいちばん偉い人は、仕える者になりなさい。」(10-11節)
「仕える者」とは、「サーヴァント・リーダー」のことなのです。既にイエスさまは二千年前、それを口にしておられたのです。
しかし、「そんな重い仕事を、私なんかにできる訳がない」と思う人がおられるかも知れません。でも、それは全部自分でしようとするから、自分に出来ると思えないのです。
皆さん、その中の働きの全部でなく、自分も出来そうな何か一つを、やってみてどうでしょうか。イエスさまの言われる「リーダー」は、決して一人で立つ人ではありません。私たちには、真のリーダーであられる主イエス・キリストが、聖霊と共に常におられます。私たちには主が共におられるわけですから、私たち皆が「リーダー」となれるのです。いえ、な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私たち一人一人がリーダーとして、互いに助け合い、補い合って行くのです。重荷も皆で一緒に引っ張れば、それ自体は大変ですけど、そこに喜びが生まれて来るのです。それが「仕える人」への報酬なのです。
「あなたがたのうちでいちばん偉い人は、仕える者になりなさい。だれでも高ぶる者は低くされ、へりくだる者は高められる。」(11-12節)
皆さん、私たちの信仰は、見せかけではありません。主イエス・キリストが私たちの教会の交わりの中で生きておられることを心から信じて、その教えに生かされるところに信仰があります。教会は、人からの評価を求めて競うような生き方から、解放される場所です。どうか、これからイエスさまの御言葉に従い、互いに仕え合い、喜びも苦しみも分かち合って行きましょう。本当の兄弟姉妹としての交わりを、ここに与えられたいと願います。
【2026년 6월 14일 주일예배(요약판)】
“서번트 리더가 됩시다”
마태복음 23장 1~12절
“내 아들아, 내 말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나 내 행동은 따라 하지 말아라.”
이 말은 어느 유대인 아버지가 자녀에게 했다고 전해지는 말입니다.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말일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그 배운 것들 가운데 좋은 가르침과 삶의 지혜를 자녀들에게 전해줍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말과 실제 삶의 모습 사이에 간격이 있음을 느끼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그런 우리를 향해 주시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마태복음 23장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철저한 비판이 기록되어 있는 장입니다. 특히 13절 이후에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일곱 번이나 “화 있을진저”라고 선언하십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12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려고 하는데, 여기에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믿음의 반면교사로 등장합니다.
복음서에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대체로 부정적으로 묘사되며, 예수님의 비판도 매우 강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악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그들 가운데에는 예수님께 “당신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는 칭찬을 들은 사람도 있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뒤 장례를 치러 드린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같은 인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백성들의 눈에 그들은 자신들 위에 있는 사람들, 곧 ‘지도자’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당시 지도자들은 7절에 나오는 “랍비”이라 불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서 ‘랍비’는 ‘선생’이라는 말인데, 원래는 “나의 스승”, “나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윗사람에게 존경을 표하는 호칭이었습니다. 랍비들은 보수를 받지 않고 성경과 탈무드라 불리는 구전 율법을 가르쳤으며, 생계를 위해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모두 나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일에 지나치게 집착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규율 있는 생활을 하라고 가르쳤으며, 그것을 잘 지키는지 감시하기도 했습니다. 그 안에는 관용이나 유연함이 부족했고, 인간적인 따뜻함도 부족했습니다.
반면 그들은 율법 전문가였기 때문에 율법의 허점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엄격하게 율법 준수를 요구하면서도, 자신들에게는 관대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4절)고 책망하셨습니다.
이것이 당시 지도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지도자들의 마음속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5절)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래서 눈에 띄기 위해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5절), 마치 자신이 매우 경건한 사람인 것처럼 꾸몄습니다.
또한 그들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체면과 권위였기 때문에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6~7절)을 좋아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공개적으로 지적받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이 신앙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오히려 하나님께 잘 순종하는 경건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만일 이런 사람들이 지도자가 된다면 얼마나 큰 문제가 되겠습니까?
오늘날 교회에서 지도자라고 하면 목사와 장로, 권사와 같은 직분자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리새인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배워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지배형 리더가 아니라 섬기는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오늘날 ‘서번트 리더(Servant Leader)’라고 부릅니다. 최근에는 일반 기업에서도 이러한 서번트 리더십을 갖춘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서번트’란 본래 ‘종’, ‘섬기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기존의 지배형 리더와는 정반대의 개념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원형 리더’, ‘봉사형 리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리더에게 요구되는 자질로는 경청, 공감, 치유, 설득, 통찰, 비전 제시, 청지기 정신, 성장 촉진, 공동체 형성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들으면 매우 어렵고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인간과 사회에 꼭 필요한 덕목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모습도 바로 이러한 모습입니다.
10절과 11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여기서 “섬기는 자”가 바로 서번트 리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2천 년 전에 이러한 리더십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그렇게 무거운 일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 모든 역할을 다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 가운데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지라도 실천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지도자는 결코 혼자 서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참된 지도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함께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는 만큼 우리 모두는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니,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각 사람이 서로를 돕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거운 짐도 함께 나누어 지면 여전히 힘들지만, 그 안에 기쁨이 생겨납니다. 그것이 바로 섬기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입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11~12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겉모습을 꾸미는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우리 교회 공동체 가운데 살아 계심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데 참된 신앙이 있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평가를 받기 위해 경쟁하며 살아가는 삶으로부터 해방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서로 섬기고, 기쁨과 고난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야 합니다. 참된 형제자매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더욱 풍성하게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