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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年05月24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6年5月24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ヨハネ(요한복음) 3章 5~8節
〇讃    頌    讃頌歌 34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135 (聖霊降臨① )
〇讃    頌    讃頌歌 184
〇聖書奉読    使徒言行録 (사도행전)
                    2章 1~13節
〇説   教    「聖霊が一人一人の上に
         (성령이 각 사람 위에)」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185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1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6年 5月 24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聖霊が一人一人の上に」
                        使徒言行録 2章 1~13節


 聖霊降臨日に起こった不思議な出来事が、使徒言行録2章1~13節に記されています。その時の状況については、ここを読めば知ることが出来ますが、その前段階にまず注目しなければならないかと思います。
 その一つは、復活されたイエスさまが「エルサレムを離れず、前に私から聞いた、父の約束されたものを待ちなさい」(1:4)と言い残されたことですね。「エルサレムから離れないで」というのは、弟子たちにとっては辛いことであったと思われます。なぜなら、迫害の恐れがありますし、出来れば、ガリラヤに帰って安心出来る前の生活に戻りたいと思っていたと思います。
 それに、復活のイエスさまに出会えたとはいえ、エルサレムは屈辱の十字架と迫害の現場であり、自分たちがイエスさまを見捨てた罪の現場でありますから、そこから早く離れたいと思っていたわけですね。それなのに、イエスさまは「エルサレムから離れず、神さまが約束されたもの(聖霊が与えられること)を待ちなさい」と言われました。これは「聖霊を受けるためには、苦しい所、痛ましい所、悲しい所、寂しい所、辛い所に留まりなさい」と、イエスさまはおっしゃっているわけです。


 それから、二つ目のことですが、弟子たちは復活のイエスさまと出会い、イエスさまが復活されたことは知っているわけですが、実は、弟子たちはイエスさまが復活されたこの意味を未だに理解していないのです。
 使徒言行録1章6節を見ますと、イエスさまが天に上げられる直前、弟子たちはイエスさまにこのような質問をしています。「使徒たちは集まって、『主よ、イスラエルのために国を建て直してくださるのは、この時ですか』と尋ねた。」(使徒1:6)


 相変わらずイスラエルの再建のためのイエスさまなんですね。イエスさまの復活や十字架が何を意味するのか、何のためのものなのか、何も分かっておりません。分かっていないので、喜びがないのです。イエスさまは天に上げられます。イエスさまが自分たちの側からいなくなる。自分たちやっていくしかありません。それは弟子たちにとったら、不安でしかありません。そこに喜びなんてないのです。気になるのは、イスラエル、ユダヤ民族がどのように再建されるのか、自分はそれのどのポジションにいられるのかということです。弟子たちは、イエスさまが十字架に架けられる前と全く同じでしょ。イエスさまの十字架と復活を経験しているのに、弟子たちは何の変化もありません。


 イエスさまは弟子たちのそういう意識について、はっきりと方向転換を命じておられます。それが1章8節ですね。「あなたがたの上に聖霊が降ると、あなたがたは力を受ける。そして、エルサレムばかりでなく、ユダヤとサマリアの全土で、また、地の果てに至るまで、わたしの証人となる。」(1:8)
 世界に向かって伝道するんだ、ということです。それでも、弟子たちは天に上げられたイエスさまから離れられず、弟子たちは天を見上げておりましたら、二人の天使が「ガリラヤの人たち、なぜ天を見上げて立っているのか」と、弟子たちが新たな道を歩むよう促しています。


 それから、三つ目のことですが、1章14節に「彼らは皆、婦人たちやイエスの母マリア、またイエスの兄弟たちと心を合わせて熱心に祈っていた」とあります。11人の弟子たちとイエスさまの家族が心合わせて祈っていたわけですが、弟子たちにしてみれば、イエスさまを見捨てた自分たちが、恥ずかしいと言いますか、悔いても悔い切れない感情がありますし、イエスさまの家族にしてみたら、イエスさまを見捨てた恨みみたいな感情があったはずです。ところが、弟子たちと家族が一緒になって、心を合わせて熱心に祈っていたのです。
 これは、教会というのはこういうところだと、こういうところに聖霊が下るんだ、ということを聖書は語っていると思うのです。


 そこには深い罪の悔い改めと共に、家族からの温かい赦しの言葉があったと思います。お互いに涙しながらに、一緒になって聖霊を待ちながら祈っていた。こういうところに教会の姿があるのかと思います。憎しみによって分裂するのではなく、お互いの罪を十字架の下で赦し合いながら、一つになっていく教会が、ここに示されているのです。そのようなところに聖霊降臨が始まったのです。


 聖霊降臨の様子が今日の聖書箇所である2章1~13節に記録されていますが、今日は3節の御言葉に注目したいと思います。「炎のような舌が分かれ分かれに現れ、一人一人の上にとどまった。」(3節)


 先ほど、言いましたように、弟子たちが祈っておりましたら、炎のような舌が分かれ分かれに現れました。「炎のような舌」というのは、聖霊の働きの一つを表していますが、力強くイエスさまのことや聖書のこと、信仰のことを伝えることを意味します。しかも、色々な国の言葉で伝えるわけですね。
 そして、聖霊が「一人一人の上に留まった」というところが大事なのです。私たちは、今、広島教会に属しながら、イエスさまを信じ、その救いを信じ、信仰生活をしていますが、その私たち一人一人は、それぞれ違う信仰を持っていると思うんです。当然、信仰にとって大事なところは共通しますが、「聖霊が一人一人の上に留まった」とあるように、一人一人が聖霊から与えられる独自の信仰があるはずなのです。


 なぜなら、それぞれ違う自分の人生を歩んでいるからです。それぞれの人生の痛みやら、辛さやら、淋しさやら苦しみを越えて、聖霊から与えられる尊い御言葉の賜物は違って当たり前です。そこにはワンパターンな信仰なんてありません。一人一人が生きてきた人生の歩みの中で、聖霊の賜物を受けて、私の信仰を与えられたわけです。ですから、聖霊降臨というのは、そのようにして一人一人に個性的な信仰を与えて下さる時であったのです。


 皆さん、この個性的な信仰というものを大切にしてください。これまで弟子たちはイエスさまにおんぶに抱っこでした。しかし、イエスさまが天に帰られましたので、弟子たちは自立するしかありません。聖霊によって生きるということは自立するということなんです。自立するというのは、そこに責任が伴います。それは誰かから与えられた信仰ではなく、自分の信仰を持って、聖霊の導きの中で、自分で考え、決断していくという信仰です。それが、自由に生きるということなんです。聖霊を受けることによって、私たちは本当に自由にされます。もちろんイエスさまに対する信仰は変わりませんけれど、霊によってイエスさまとの交わりはますます深く、個性的な人生を生きていくわけです。そこに力が湧くわけです。


 そして、聖霊を受けた一人一人が全く違った言葉を語り始めました。あの「バベルの塔」に象徴されるように、人間の奢り高ぶりの罪から、人は違う言葉を話すようになり分裂して行きました。聖霊降臨というのは、そのバラバラになってしまった人間の言葉が、それぞれの言葉を話しながら互いに通じ合うようになった出来事なのです。そこに本当の一致があります。生きた一致が与えられるということなんです。
 私たちはそれぞれ違う信仰を持っています。それで良いのです。しかし、それが聖霊の働きだからこそ、そこに本当の一致、生きた一致が与えられるのです。


 今日の聖霊降臨日の礼拝の中で、皆さん一人一人に聖霊が注がれ、広島教会の使命を担いつつ、聖霊によって生きるこれからの道を、心からの祝福をもってお祈り致します。


【2026년 5월 24일 주일예배(요약판)】

     “성령께서 각 사람 위에”   
                            사도행전 2장 1~13절


  성령강림절에 일어난 놀라운 사건이 사도행전 2장 1〜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은 이 본문을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만, 그에 앞서 먼저 주목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1:4) 라고 말씀하셨다는 점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은 제자들에게 매우 괴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박해의 두려움이 있었고, 가능하다면 갈릴리로 돌아가 이전의 평안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루살렘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는 해도, 치욕의 십자가와 박해의 현장이었고, 자신들이 예수님을 버렸던 죄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그곳을 떠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성령이 주어지는 것)을 기다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괴로운 곳, 아픈 곳, 슬픈 곳, 외로운 곳, 힘든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 부활의 의미를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까?”(행 1:6)


  여전히 제자들의 관심은 이스라엘의 재건에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니 기쁨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이제 예수님이 자신들의 곁을 떠나시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자신들끼리 살아가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그것은 불안 그 자체였습니다. 거기에 무슨 기쁨이 있었겠습니까.
  그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이스라엘과 유대 민족이 어떻게 재건될 것인가,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이 어떤 자리에 서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하고도 아무 변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의 의식을 분명하게 방향 전환시키십니다. 그것이 1장 8절의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승천하시는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두 천사가 나타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라고 말하며, 제자들이 새로운 길을 걸어가도록 촉구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1장 14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르지 기도에 힘쓰더라.” 열한 제자들과 예수님의 가족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을 버렸던 자신들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럽고, 아무리 후회해도 다 씻을 수 없는 감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가족들에게는 예수님을 버린 제자들에 대한 원망 같은 감정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함께 마음을 같이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런 곳이 교회이며, 바로 이런 곳에 성령이 임하신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곳에는 깊은 죄의 회개와 함께, 가족들의 따뜻한 용서의 말이 있었을 것입니다. 서로 눈물 흘리며 함께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교회의 참된 모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움으로 분열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죄를 십자가 아래에서 용서하며 하나 되어 가는 교회. 바로 그곳에 성령강림이 시작된 것입니다.


  성령강림의 모습이 오늘 본문인 2장 1〜13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은 특별히 3절 말씀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3절)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자들이 기도하고 있을 때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나타났습니다.
  “불의 혀”라는 것은 성령의 역사 가운데 하나를 나타냅니다. 곧 예수님과 성경과 믿음에 대해 담대하게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여러 나라의 언어로 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성령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우리도 히로시마 교회에 속하여 예수님을 믿고 그 구원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신앙에서 중요한 본질은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였다”는 말씀처럼, 각자에게 성령께서 주시는 고유한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삶 속에는 아픔과 괴로움과 외로움과 고난이 있습니다. 그 모든 시간을 지나며 성령께서 주시는 귀한 말씀의 은사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에는 똑같은 틀에 박힌 모습이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걸음 속에서 성령의 은혜를 받아 “나의 믿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강림은, 그렇게 각 사람에게 개성 있는 믿음을 허락하시는 사건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개성 있는 믿음을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제자들은 예수님께 의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기에 이제는 스스로 서야만 했습니다. 성령으로 산다는 것은 곧 자립한다는 뜻입니다.
  자립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받은 믿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믿음을 가지고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며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그것이 자유롭게 산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을 받음으로 우리는 참으로 자유롭게 됩니다. 물론 예수님에 대한 믿음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예수님과의 교제는 더욱 깊어지고, 우리는 각자 고유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거기에서 힘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벨탑”에 상징되듯이, 인간의 교만과 죄로 인해 사람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결국 분열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강림은, 흩어졌던 인간의 언어가 각자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서로 통하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거기에 참된 일치가 있습니다. 살아 있는 일치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 안에는 참된 일치, 살아 있는 일치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강림절 예배 가운데,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성령이 부어져, 히로시마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며 성령으로 살아가는 앞으로의 길 위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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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日:2026年05月24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