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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年05月17日 主日礼拝式順・説教

 

2026年5月17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コリント一(고린도전서) 15章 20~21節
〇讃    頌    讃頌歌 33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22 (詩編 37編 )
〇讃    頌    讃頌歌 251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 (마태복음)
                    22章 23~33節
〇説   教    「生きている者の神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287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1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6年 5月 17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生きている者の神」
                   マタイによる福音書 22章 23~33節


 サドカイ派の人たちが、イエスさまにこんな質問をしました。「ある女性が地上で結婚を繰り返した場合、もし復活があるとすれば、復活の時、彼女は誰の妻になるのか」と。
 サドカイの人たちは現実主義者で、祭司職でありながら復活を信じない人々でありました。そのため、イエスさまに復活というものが理論的に成り立たないと主張したのです。


 このサドカイ派の質問は、ファリサイ派やヘロデ派と同じく律法に関するものです。それは申命記25章5~6節にある、いわゆる「レビラート婚」と呼ばれる古代のしきたりです。この制度は、寡婦となった女性を守るためのものと言うより、亡くなった夫の家系や財産、子孫を守るためのもので、特に子どもがいない場合に義務として行われ、夫に先立たれた妻をその夫の兄弟が娶り、名を継ぐべき子をもうけるというものです。
 サドカイ派にとって、このモーセの掟は重要であったに違いありませんが、これに復活信仰というものを加えると、おかしなことになるのではないか。だから、復活などないのだ、と言いたいのです。


 確かに、復活というものが、この地上での生活の延長というものであれば、一人の女性に何人もの夫が存在することになります。
 しかし、イエスさまははっきりとこう言われました。「あなたたちは聖書も神の力も知らないから、そんな思い違いをしている。」(29節)
 具体的には30節ですね。「復活の時には、めとることも嫁ぐこともなく、天使のようになる」と。


 サドカイ派の人たちは霊の存在、御使いの存在も認めません。モーセ五書しか聖書と認めず、しかも合理主義的な解釈のみに頼り、人間の頭で納得できることしか信じない人たちです。しかし、モーセ五書の創世記には幾度も御使いの言及もあり、モーセ五書全体には霊の存在も言及されています。そのため、イエスさまは「聖書を知らない」と言われているのです。


 また、「神の力を知らない」と言うのは、ユダヤ人の伝統的な見解では結婚して子どもをもうけることが神の力と見做されていました。この「跡継ぎをもうける」(24節)の「もうける」と訳されている言葉は、「起こす、よみがえらせる、復活させる」という意味の言葉です。サドカイ派の人々自身が、復活はまさに神の力であると言っているのに、神さまの力を限定し、復活はないという、矛盾が生じているわけですね。イエスさまはそのことをまず、指摘されています。


 そして、イエスさまはサドカイ派の人たちの質問の本題である復活については、「復活の時には、めとることも嫁ぐこともなく、天使のようになる」と、はっきりと答えておられます。
 「復活の時には」と、何世紀にも渡って亡くなった信仰者たちが起きる時が来る、復活する時が来る、ということが前提になっています。そして、今の地上のこの体ではなく、もう死ぬことのない、滅びない、神さまとの交わりの中に生きる新しい体を持つと言っています。また、「めとることも嫁ぐこともないく」というのは、この地上での血縁関係、家族構成もないということです。神さまの御国というのは、血の結びつきを超えた信仰の結びつきの世界であり、互いに神の家族として、主なる神さまを中心に兄弟姉妹として生活をするわけですね。それが「天使のようになる」ということです。


 ただ、これだけでは復活の体が具体的にどのようなものかは分かりません。それでもこの言葉を誰に語っているのかということが重要なのです。この場面では、もちろんサドカイ派の人であるわけですが、サドカイ派と限定しなくてもユダヤ人にとって生きるとは、体を持って生きること、というのが常識でした。ですから、ユダヤ人たちは霊的な復活という考えはなく、人が復活するというならば、体がなければなりません。しかし、サドカイ派の人たちは、復活を信じておりませんから、人は死んだらそれで終わりという考えです。
 そのサドカイ派の人たちに「わたしはアブラハムの神、イサクの神、ヤコブの神である」(32節)と、彼らが聖書と認める出エジプト記3章6節の言葉を引用して、復活についての新たな見識を示しています。


 「わたしはアブラハムの神、イサクの神、ヤコブの神である」の「ある」と現在形で言われています。「あった」という過去形ではありません。「ある」と現在形で表現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は、今も神さまはアブラハムやイサク、ヤコブと交流があるということです。アブラハム、イサク、ヤコブが死んだ数百年後のモーセの時代になっても、アブラハム、イサク、ヤコブは生きていて、永遠の命の神さまとの交わりを続け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つまり、アブラハム、イサク、ヤコブは今も生きている、と。それゆえに、「神は死んだ者の神ではなく、生きている者の神なのだ」と言われるのです。


 今、皆さんは、ご自分の体のことで嘆いている方がおられるかも知れません。内臓に問題があるとか、足腰がどうだとか、頭と顔の付近がどうだとか、皮膚がどうだとか。しかし、そうした悩みはやがて消え去り、栄光の体をまとうことになります。復活の体をもつのです。それは永遠に朽ちない体です。
 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者たちは、イエスさまが再びこの地上に来られる時に、復活の体に与るのです。しかも、一人一人の存在と、その尊厳、生活そのものが、御使い(天使)のようになるのです。御使いのもつ高貴さ、力と優しさを併せ持った表情、聖なる愛、神さまへの献身と賛美、迅速な行動、他者を分け隔てなく愛する愛、そうしたすべてが私たちに分け与えられ、私たちは魂も体も完全な救いに与り、天の御国での生活を営むのです。


 イエスさまは、「アブラハム、イサク、ヤコブの神」とは言われず、「アブラハムの神、イサクの神、ヤコブの神」と言われました。神さまは、私たち一人一人に出会ってくださる方であると、イエスさまは語っておられるのです。
 私たち一人一人の地上の生涯はやがて終わりの時を迎えます。しかし、その後も神さまとの関係は続くのです。永遠に続きます。復活とは、神さまとの関係は死んでも変わらない、終わらない、永遠に続くということです。私たちはこのことを希望として、この地上で生きている今この時を大切にし、命を与えてくださっている主を見上げ、主を喜び、歩んでいきたいと思います。


【2026년 5월 17일 주일예배(요약판)】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마태복음 22장 23~33절1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어떤 여자가 이 땅에서 여러 번 결혼을 했다면, 만일 부활이 있다면 부활 때에는 누구의 아내가 되는 것입니까?” 하고 말입니다.
  사두개인들은 현실주의자들이었으며, 제사장 계열이면서도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부활이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 사두개인들의 질문은 바리새인들이나 헤롯 당원들의 질문과 마찬가지로 율법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것은 신명기 25장 5〜6절에 나오는 이른바 “계대결혼(레위라트 혼인)”이라 불리는 고대의 관습입니다. 이 제도는 과부가 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죽은 남편의 가문과 재산, 후손을 지키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특별히 자녀가 없는 경우에는 의무처럼 행해졌으며, 남편이 죽으면 그 형제가 그 아내를 맞아들여 죽은 형제의 이름을 이을 자녀를 낳게 하는 제도였습니다.
  사두개인들에게 이 모세의 율법은 매우 중요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부활 신앙을 더하면 이상한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부활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확실히 부활이라는 것이 이 땅의 삶의 연장선이라면, 한 여인에게 여러 남편이 존재하게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29절)
  구체적으로는 30절 말씀입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30절)


  사두개인들은 영의 존재나 천사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모세오경만을 성경으로 인정했고, 그것도 합리주의적인 해석에만 의존하여 인간의 머리로 납득할 수 있는 것만 믿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오경의 창세기에는 여러 차례 천사에 대한 언급이 나오며, 모세오경 전체에도 영적인 존재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경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한다”는 말씀은, 유대인의 전통적인 사고 속에서는 결혼하여 자녀를 낳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상속자를 세울지니라”(24절)라고 번역된 말은 본래 “상속자를 일으키다, 다시 살리다, 부활시키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즉 사두개인들 자신도 부활이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면서, 정작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며 부활은 없다고 주장하는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바로 그 점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두개인들이 던진 질문의 핵심인 부활에 대해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천사들과 같으니라.”(30절)
  “부활 때”라는 말씀은, 오랜 세월 죽어 있던 믿음의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는 때가 온다는 것, 곧 부활의 때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땅의 몸이 아니라, 더 이상 죽지 않고 썩지도 않으며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살아가는 새로운 몸을 입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간다”는 것은 이 땅에서의 혈연 관계나 가족 구성 자체가 없어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혈연을 뛰어넘는 믿음의 공동체이며, 서로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형제자매가 되어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그것이 바로 “천사들과 같아진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 말씀만으로는 부활의 몸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완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고 계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사두개인들이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 “산다”는 것은 몸을 가지고 사는 것을 의미하는 상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단순한 영적 부활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사람이 부활한다면 반드시 몸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부활 자체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사두개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성경으로 인정하는 출애굽기 3장 6절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새로운 부활 이해를 보여주십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32절)


  여기서 “이다”라는 표현은 현재형입니다. “이었다”라는 과거형이 아닙니다. 현재형으로 말씀하신다는 것은 지금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교제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죽은 지 수백 년이 지난 모세 시대에도, 그들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영원한 생명의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지금도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지금 여러분 가운데는 자신의 몸 때문에 괴로워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내장에 문제가 있다든지, 다리와 허리가 아프다든지, 머리나 얼굴 주변의 문제, 피부의 문제 등 여러 가지 고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아픔과 고민은 결국 사라지게 될 것이며, 우리는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썩지 않는 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실 때 부활의 몸에 참여하게 됩니다. 더욱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와 존엄, 그리고 삶 자체가 천사와 같이 될 것입니다. 천사가 가진 고귀함과 능력, 그리고 부드러움, 거룩한 사랑,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찬양, 신속한 순종, 차별 없이 사랑하는 사랑이 우리에게도 주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과 몸 모두 완전한 구원에 참여하여 하늘나라에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한 번에 말씀하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각각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만나 주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우리 각자의 이 땅의 삶은 언젠가 끝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끝나지 않습니다. 영원히 계속됩니다.
  부활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는 죽음으로도 끊어지지 않으며 끝나지 않고 영원히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붙들고,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생명을 주신 주님을 바라보고 기뻐하며 걸어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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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日:2026年05月17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