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年01月11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6年1月11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詩編(시편) 85編 9(10)~11(12)節
〇讃 頌 讃頌歌 9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2 (詩編 2編 )
〇讃 頌 讃頌歌 259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 (마태복음)
17章 14~20節
〇説 教 「からし種一粒ほどの信仰があれば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374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1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6年 1月 11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からし種一粒ほどの信仰があれば」
マタイによる福音書 17章 14~20節
今日の聖書箇所は、イエスさまの「変貌物語」の後に続く物語です。イエスさまが山から下りられると、そこには、多くの人々がイエスさまの帰りを待ちわびておりました。
その中のある人が、イエスさまの前にひざまずいて、このように言いました。「主よ、息子を憐れんでください。てんかんでひどく苦しんでいます。度々火の中や水の中に倒れるのです。お弟子たちのところに連れて来ましたが、治す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15-16節)
この父親は、イエスさまの弟子たちのところに息子を連れて来て、癒してもらおうとしました。しかし、息子は癒やされませんでした。この病は、息子だけでなく、父親も大変苦しめるものであり、生きる気力さえ奪うものでした。この親子が苦しんできた悲惨さというものは、その時代の悲惨さを表すものでもありました。
「お弟子たちのところに連れて来ましたが、治す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16節)
これは人間の精一杯の努力を表しています。でも、誰も癒やせませんでした。この親子に同情するものの誰一人としてこの親子を助けることが出来ませんでした。このことは単に病の癒やしに限らず、救いを願っても救われないという、そんな時代の悲惨さを表しているのです。
その現実に対して、イエスさまは「なんと信仰のない、よこしまな時代なのか」(17節)と、嘆き、憤り、怒りの声を発しておられます。イエスさまはそんな「信仰のない、よこしまな時代」に生きる人々に対し、「いつまでわたしはあなたがたと共にいられようか。いつまで、あなたがたに我慢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17節)とも嘆いておられます。そして、このような時代に生きる弟子たちのことを憂慮してこの言葉を発せられたのです。
肉体を持ったイエスさまは、いつまでも弟子たちと共にいることは出来ません。半年後には、イエスさまは十字架に架けられます。三日後に復活するものの、天に帰られます。ですから、弟子たちは独り立ち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だからこそ、この時、イエスさまはご自分が近くにいなくても、イエスさまの御名を信じ、信仰を発揮することを弟子たち期待されました。駄目だったとしても、すぐに諦めて欲しくなかったのです。最後まで、ねばり強く祈って対処して欲しかったのです。
イエスさまは「その子をここに、わたしのところに連れて来なさい」(17節)と言われ、すぐに癒やされてしまいました(18節)。今までの苦労は一体何だったのかと思わせるような、あっという間の出来事でした。当然、人々は、イエスさまの御力と威光に驚嘆したでしょう。
けれども、弟子たちには別の思いがありました。19節です。「なぜ、わたしたちは悪霊を追い出せなかったのでしょうか」。弟子たちは、自分たちが悪霊を追い出せなかった理由を、イエスさまに、そっと尋ねています。
そして、イエスさまのお答えは、いつもそうですが、実に簡明なものでした。20節です。「信仰が薄いからだ」(20節)。
イエスさまは、信仰が無いとは言っておられません。神さまの御業が起きるまでは至らない薄さ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イエスさまはその信仰を含めて自分ではどうしようも出来なくなった時の対応を求められていたのです。
弟子たちは自分たちの無力さにがっかりしたことでしょう。何と自分たちは駄目な弟子なのか、駄目な人間なのかと失望したことでしょう。弟子たちは、自分たちはそれなりの信仰があると思っておりました。今まで、自分たちは、イエスさまに従ってきた自負がありますし、イエスさまのためにあれをしてきたし、これもしてきた、そんな思いもあったでしょう。それなのに、イエスさまは自分たちのことを、「信仰が薄い」と言われたのです。弟子たちはさらにショックだったでしょう。
でも、だからこそ、弟子たちはその時に、自分ではどうしようも出来ないからこそ、全面的に神さまに依り頼み、イエスさまの御名を信じて、神さまの御業が起きるまで忍耐強く祈り求めるべきだったのです。
イエスさまは弟子たちに「からし種一粒ほどの信仰」を求められました。からし種というのは、小さいことの象徴です。イエスさまは弟子たちに大きくて立派な信仰を求められたのではありません。まことに小さな信仰を求められたのです。イエスさまはこの「からし種一粒ほどの信仰」があれば、山を動かすほどの神さまの御業が起きるとおっしゃっているのです。からし種ほどの小さな信仰こそ、行く手に立ちはだかる困難という山を動かす力であるのです。
皆さん、今日の御言葉から、私たち自身の信仰をふり返る必要があります。私たちも弟子たちと同じように、自分の信仰の小ささに失望するかも知れません。でも、それで良いのです。なぜなら、私たちにはからし種ほどの小さな信仰があるからです。
このからし種が重要なのです。私たちの信仰はとても小さくて自分には何も出来ないと思うかも知れません。実際、今の私たちは何も出来ません。しかし、このからし種は、大きく成長することが出来るのです。このまことに小さな種が土に植えられ、やがて芽を出し、育っていき、その枝に空の鳥が巣を作るほどに大きなものに成長するのです。
私たちの信仰も同じです。からし種ほどの信仰の種が私たちのうちに蒔かれました。やっと芽が出たばかりです。しかし、様々な困難を通して、自分の信仰が試されていくうちに、少しずつ、信仰の芽が成長して行きます。
だからこそ、私たちは自分の小さな信仰に依り頼むのではなく、どこまで、その信仰を成長させてくださる聖霊の御業に依り頼みながら、より一層神さまを信頼し行くのです。そうすれば、いずれ、後でふり返ったときに、自分の信仰が大きく成長したことに気付くでしょう。
ですから、皆さん、これからも私たちは弟子たちと同じように「自分たちはあの子ども癒やせなかった」と自分に失望するかも知れませんが、それでも、そこからが、本当の信仰の始まり、本当の信仰の出発であることを思い起こしてください。
「そうです、主よ、あなたが言う通り、自分には信仰があると思っていたけれども、信仰も何もありません」。そう言わざるを得ないような私たちにイエスさまは「からし種一粒ほどの信仰でいいから、私のもとに来なさい。私を信頼して、私と共に歩もうではないか」と呼びかけてくださっているのです。
皆さん、イエスさまのこの呼びかけに応えて下さい。イエスさまに従っていこう、この方について行って見よう。自分の無力さ、足りなさ、弱さに気づいた時、向き合えた時、そこからまことの信仰は始まるのです。
【2026년 1월 11일 주일예배(요약판)】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마태복음 17장 14~20절
오늘의 성경 본문은 예수님의 ‘변모 사건’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간청합니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15-16절)
이 아버지는 아들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데려와 고침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이 병은 아들만이 아니라 아버지까지도 깊이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었고, 살아갈 힘마저 빼앗는 병이었습니다. 이 부자가 겪어 온 비참함은 당시 시대가 지닌 비참함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16절)
이 말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고칠 수 없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부자를 안타까워했지만, 아무도 그들을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이는 단지 병의 치유 문제를 넘어, 구원을 갈망하지만 구원받지 못하는 시대의 비극을 드러내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17절)라고 탄식하시며, 슬픔과 분노가 담긴 말씀을 하십니다. 또한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17절)라고 하시며, 믿음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제자들을 향한 깊은 근심을 드러내십니다.
육신을 입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제자들과 함께 계실 수 없습니다. 몇 개월 후에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후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언젠가 스스로 서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때, 자신이 곁에 계시지 않아도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믿음을 실천하기를 제자들에게 기대하신 것입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기도로 맞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아이)를 이리로 데려오라”(17절)고 말씀하시고, 곧바로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18절). 지금까지의 고생이 무엇이었나 싶을 만큼, 너무도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분명 예수님의 권능과 위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마음에는 또 다른 질문이 남아 있었습니다. 19절입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제자들은 조심스럽게 예수님께 그 이유를 묻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언제나 그렇듯 매우 분명합니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20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에는 아직 너무 연약한 믿음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무력함에 크게 낙심했을 것입니다. 스스로를 형편없는 제자, 형편없는 사람이라 여기며 실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어느 정도 믿음이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르며 헌신해 왔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다는 자부심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자신들을 향해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 말씀하셨으니, 그 충격은 더욱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은 자기 힘으로는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며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때까지 인내하며 기도해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겨자씨는 매우 작은 것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신 것은 크고 훌륭해 보이는 믿음이 아니라, 참으로 작은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산을 옮길 만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말씀하십니다. 겨자씨처럼 작은 믿음이야말로, 우리 앞에 가로막힌 어려움이라는 산을 움직이는 능력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역시 제자들처럼 자신의 믿음이 너무 작다고 느끼며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겨자씨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너무 작아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의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작은 겨자씨는 자라날 수 있습니다. 땅에 심긴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 마침내 공중의 새들이 깃들 만큼 큰 나무로 성장하듯이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의 씨앗이 우리 안에 심어졌고, 이제 막 싹이 난 단계일 뿐입니다. 그러나 여러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믿음이 시험을 받을 때마다, 그 믿음은 조금씩 자라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작은 믿음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을 자라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의지하며,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며 걸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훗날 뒤돌아보면 우리의 믿음이 크게 자라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앞으로도 우리는 제자들처럼 “우리는 그 아이를 고치지 못했습니다”라며 자신에게 실망하는 순간을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참된 믿음의 시작이며, 참된 믿음의 출발점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저는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면 충분하다. 내게로 오라. 나를 신뢰하며 나와 함께 걸어가자.”
사랑하는 여러분, 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이분을 따르자, 이분과 함께 걸어가 보자고 결단하십시오. 자신의 무력함과 부족함, 연약함을 깨닫고 그것과 정직하게 마주할 때, 바로 그곳에서 참된 믿음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