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年12月21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5年12月21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イザヤ書(이사야) 7章 14節
〇讃 頌 讃頌歌 122[1, 4節]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119 (聖誕節 [1] )
〇讃 頌 讃頌歌 104
〇聖書奉読 ルカによる福音書 (누가복음)
2章 8~21節
〇特別讃揚 もろびとこぞりて Nhiều người tất cả
〇説 教 「今日、あなたがたのために
(오늘 너희를 위하여)」
〇祈 祷
〇聖 礼 典 聖餐式
〇讃 頌 讃頌歌 126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125[4節]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5年 12月 21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今日、あなたがたのために」
ルカによる福音書 2章 8~20節
イエスさまの両親であるヨセフとマリアは、ローマ帝国の徴税と徴兵を行うことを目的とした住民登録のために、住んでいたナザレの町から、出身地であるベツレヘムの町に行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身ごもっていたマリアを伴う旅は、大変な旅でした。そして、その旅先で、マリアは初めての子どもを産んだのです。その生まれた赤ちゃんがイエス・キリストでした。
マリアは命がけでイエスさまを出産したことでしょう。出産を間近にして旅を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こと。「宿屋には彼らの泊まる場所がなかった」(7節)と、彼らには安心して身を任せ、身体を伸ばせる場所もありません。しかもマリアは初産です。出産は現代でも命に関わる一大事です。マリアはどれほど不安だった事でしょうか。ヨセフはどんなに途方にくれた事でしょうか。マリアが初めての子を生んだのは、そのような大変危うい現実の只中のことでした。
神さまはこの危うさの中に敢えて幼子キリストを置かれました。そして、キリストは何とかその危機を乗り越えて生まれます。幼子キリストが無事に産声をあげられた背景には、聖書にははっきり書かれてはいませんが、おそらく何人もの名の知れない人々の優しさと支えがあったに違いありません。それがあって初めて、幼子キリストは無事お生まれになったのだと思います。すべての人をお救いになる神さまの出来事は、大切な命に向き合う名もなき人々の優しさと勇気、知恵と働きがつなぎ合わされて実現するのです。
18節に記されている羊飼いたちの話を「聞いた者」というのは、おそらく、そのような人たちだっ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彼らは自分たちが関わったささやかな出来事が、神さまの祝福の知らせである「民全体に与えられる大きな喜び」に繋がっていることを知って「不思議に思った」のです。
生まれたばかりの幼い子をマリアとヨセフが見守り、そんな彼らを羊飼いたちが訪ね、羊飼いたちの話を何人もの人が聞きました。ここには名の知れない幾人もの人たちがいます。そのつながりの中に、今、私たちもいます。人々は喜びと不思議な気持ちの入り混じった思いで幼子キリストを見つめています。驚きと喜びをもって見つめています。天使たちを通して、いと高き神、天の神さまがすべてを覆い守っておられます。
このようにして、この日、苦しい時代の中、懸命に生きている名の知れない人々を見守り救ってくださる神さまの出来事が起こりました。その中心におられたのが、「飼い葉桶に寝ている乳飲み子」イエスさまです。
名も知れない人々が、居場所のないマリアたちを見守っていた頃、羊飼いたちは「野宿をしながら、夜通し羊の群れの番をし」ていました。深い闇の中、夜の寒さに凍えながら羊の群れの命を守っていました。そんな彼らにとって町の賑わいは無縁です。仕事柄、定められた礼拝を守れず、律法の戒めも守れない羊飼いは、罪深い者と見なされており、人として認められておらず、住民登録の対象でさえなかったようです。
そんな彼らに、真っ先に、「今日ダビデの町で、あなたがたのために救い主がお生まれになった。この方こそ主メシアである」(11節)という知らせが届けられます。
羊飼いたちに「主の天使が近づき、主の栄光が周りを照らし」ました。主の天使を通して神さまが彼らに近づいて来てくださったのです。「自分の町」と呼べる故郷のない羊飼いたちのところに、「主の天使が近づ」きます。羊たちを守るために夜通し働いている貧しい人たちに「主の天使が近づ」いてきます。そして彼らに、「今日ダビデの町で、あなたがたのために、救い主がお生まれになった」と告げます。これが世界で最初のクリスマスメッセージです。
それはまったく思いがけない出来事でした。当然、羊飼いたちは驚き、恐れました。そのため天使は羊飼いたちに「恐れるな」と言います。そして「あなたがたのために」、「あなたがたへ」と繰り返します。この出来事がほかの誰かではなく、あなたのためのものだと天使は告げます。
天使を通して神さまが届けたいのは、恐れではなく平安です。裁きではなく救いです。闇ではなく光です。屈辱ではなく栄光です。悲しみではなく喜びです。それを今、神さまはまず羊飼いに与えられます。だから天使は言うのです。
「今日ダビデの町で、あなたがたのために、救い主がお生まれになった。」(11節)
そして、この「不思議な出来事」を知らせる天使に「天の大群が加わり、神を讃美」する歌声が響き渡りました。「いと高き所には栄光、神にあれ、地には平和、御心に適う人にあれ。」(14節)
天の大群が羊飼いに向けて「御心に適う人」と力強く声高らかに讃美したのです。羊飼いたちはどんなに嬉しかったことでしょう。自分たちが神さまの「御心にかなう人」と天使たちから言われたのです。
羊飼いたちはそれまでずっと神さまの御心に適う者ではないと言われてきました。悔しいけれど、もしかしたらそうなのかもしれないと、半ば諦めていた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天使はそんな自分たちにはっきりと告げるのです。あなたがたは「御心に適う者である」と。
この知らせは、この日キリストがお生まれになり、羊飼いたちに告げられて以来、多くの人々を慰め、励まし、導いて、今日私たちに一人ひとりに向けて告げられています。
神さまが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私たちにお与えくださるのは、罪深く、誤りに満ちた私たちへの赦しと憐れみと愛です。
羊飼いたちは、すぐに「主が知らせてくださったその出来事を見よう」と「ダビデの町」ベツレヘムへ向かいました。
天使を通して神さまの声を聞いてすぐに行動を起こす人々がいます。このようにして、その夜、天を行き交う者たちと、この地上を生きる者たちが、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一つに結び合されて、喜びを分かちあいました。この時以来、天と地は出会い、神さまと人とは深く繋がり、喜びを分かち合いながら、2000年余りの時を歩んできています。そして今日、私たちはその歴史の中に、新しい一歩を踏み出すのです。
私たちが歌う讃美の歌は、あの夜、天使たちが讃美した歌と共に歌われています。「神さまに栄光がありますように」「地の上には平和がありますように」そして、私たちが「拙くてもこの世界に平和を創り出す者、御心に適う者として歩めますように」と。それが、今日、幾多の悲しみ、辛い現実、苦しみに満ちているこの世界を生きている私たちの祈りです。この祈りを、神さまは必ず受け止め、お応えくださいます。それを信じて、私たちは希望と勇気と知恵を、すなわち信仰をもって歩みます。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を生んだおとめマリアに勇気を与え、彼女を活かし励ましたのと同じ神さまの恵みを、私たちもいただいているからです。
【2025년 12월 21일 주일예배(요약판)】
“오늘 너희를 위하여”
누가복음 2장 8~20절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로마 제국이 세금 징수와 징병을 목적으로 실시한 호적 등록 때문에, 살고 있던 나사렛에서 자신의 본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습니다. 아이를 잉태한 마리아와 함께하는 여행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 중에, 마리아는 첫 아이를 낳게 됩니다. 그 아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마리아는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낳았을 것입니다. 출산을 앞둔 몸으로 길을 떠나야 했다는 사실, 또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7절)는 말씀처럼, 몸을 편히 누이고 마음 놓고 쉴 자리조차 없었습니다. 게다가 마리아는 초산이었습니다. 출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명이 오가는 큰 일입니다. 마리아의 불안은 얼마나 컸을까요? 요셉은 또 얼마나 막막했을까요?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순간은 바로 그런 위태롭고 절박한 현실의 한가운데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위태로움 속에 어린 그리스도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위기를 넘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갓 태어난 아기 예수님이 무사히 울음을 터뜨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름조차 남지 않은 여러 사람들의 친절과 돌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도움과 손길이 있었기에, 어린 그리스도께서 무사히 태어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소중한 생명 앞에 선 이름 없는 사람들의 친절과 용기, 지혜와 수고가 이어지며 이루어집니다.
18절에 나오는 목자들이 말한 것을 “듣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러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관여했던 작고 사소한 일이, 하나님의 복된 소식인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고, 놀라워했을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갓 태어난 아기를 지켜보고, 그들을 찾아온 목자들이 있었으며, 또 그 목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연결 속에 오늘의 우리도 서 있습니다. 사람들은 기쁨과 놀라움이 뒤섞인 마음으로 어린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놀라움과 기쁨으로 그분을 바라봅니다. 천사들을 통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하늘의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덮어 보호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하여, 고단한 시대를 살아가던 이름 없는 사람들을 지켜보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중심에 계셨던 분이 바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12절), 예수님이십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이 거처 없는 마리아 일행을 지켜보고 있을 때, 목자들은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8절) 들판에서 밤을 새우고 있었습니다. 깊은 어둠과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그들은 양들의 생명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도시의 번화함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직업상 정해진 예배를 지키기 어려웠고, 율법의 규례도 온전히 지키지 못했던 목자들은 죄인으로 여겨졌으며, 사람 대접조차 받지 못했고, 호적 등록의 대상에서도 제외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그들에게 가장 먼저 전해진 소식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11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9절),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그들에게 가까이 오신 것입니다. ‘자기 동네’라 부를 고향조차 없던 목자들에게, 밤새 일하며 살아가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의 사자가 가까이 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처음 전해진 성탄의 메시지입니다.
그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놀라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때 천사는 말합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그리고 반복해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에게”라고 전합니다. 이 사건이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너희를 위한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전하시고자 하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이며,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어둠이 아니라 빛이며, 수치가 아니라 영광이고, 슬픔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선물을 가장 먼저 목자들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천사는 말합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11절)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하는 천사들에게 “하늘의 군대”가 더해져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14절)
천사들은 목자들을 향해 힘차게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이라 찬송했습니다. 목자들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들이라고 선포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그동안 줄곧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은 존재로 여겨져 왔습니다. 억울했지만, 어쩌면 정말 그런가 보다 하며 체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천사는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뜻에 합한 사람들이다라고.
이 소식은 그날 목자들에게 전해진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이끌어 왔고, 오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죄 많고 허물투성이인 우리를 향한 용서와 긍휼과 사랑입니다.
목자들은 곧바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15절) 하며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으로 달려갔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즉시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밤, 하늘을 오가는 존재들과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하늘과 땅은 만나고, 하나님과 사람은 깊이 연결되어, 기쁨을 나누며 2천 년이 넘는 시간을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 역사 속에서 다시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은, 그 밤 천사들이 불렀던 찬송과 함께 울려 퍼집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이 땅에 평화를.” 그리고 비록 서툴지라도 이 세상에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 하나님의 뜻에 합한 사람으로 살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것이 슬픔과 고통, 아픔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그 사실을 믿기에 우리는 소망과 용기와 지혜, 곧 믿음을 가지고 걸어갑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처녀 마리아에게 용기를 주시고 그녀를 붙드시고 살게 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의 은혜를, 오늘 우리도 함께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