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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年07月26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6年07月26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イザヤ(이사야) 53章 4~5節
〇讃    頌    讃頌歌 19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38 (詩編 92編 )
〇讃    頌    讃頌歌 379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 (마태복음)
                     26章 1~13節
〇説   教    「愚かな行為に見えることの中に
         (어리석은 행동처럼 보이는 것 속에)」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211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1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6年 7月 26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愚かな行為に見えるものの中に」
                    マタイによる福音書 26章 1~13節


 祭司長たちや民の長老たちが大祭司カイアファの屋敷に集まり、イエスさまを殺そうと相談をしております。この二日後には、イエスさまは捉えられて十字架に架けられてしまいます。そんな緊迫した中、イエスさまがベタニアのシモンという人の家におられ、食事の席についておられた時に、ある事件が起きました。
 それは、ある一人の女性がとても高価な香油が入った壺を持ってきて、その香油をイエスさまの頭に注いだのです。その香油は他の福音書を読みますと300デナリオン以上もするものであることが分かります。それを一度に使ってしまいました。300デナリオンと言いますと、人が1~2年は普通に生活することができる金額ですから大金です。


 これを見ていた弟子たちは、憤慨して彼女にこう言いました。「なぜ、こんな無駄遣いをするのか。高く売って、貧しい人に施すことができたのに」(8節)と。
 この弟子たちの反応は正しいように思います。イエスさまがそのようなことをされて喜ぶはずがない。むしろ、香油を売って、それを貧しい人に施すことをお望みのはずだ。弟子たちはこのように考えて、この女性の行為が愚かで、無駄なことのように思えたのでしょう。弟子たちは、正論を掲げてイエスさまに純粋に奉仕しているこの女性を批判しました。


 ところが、イエスさまはこの女性の行動に反応するよりも、「なぜ、この人を困らせるのか。わたしに良いことをしてくれたのだ」(10節)と弟子たちを逆に批判しました。
 「なぜ、この人を困らせるのか」と。弟子たちの彼女に対する反応や態度を責めておられます。それほど、弟子たちの言葉が彼女に悲しい思いをさせたのでしょう。イエスさまは彼女を守ってくださっています。


 ただ、疑問に思うのが、彼女がなぜこのような行動をしたのかと言うことです。マタイによる福音書の内容だけでは分かりません。ヨハネによる福音書12章には、この女性がラザロとマルタの妹マリアとあります。そうだとするなら、マリア自身がイエスさまを通して救われたことや兄ラザロを死から救ってくださったことに対する深い感謝と共に、イエスさまに対する自分の精一杯の思いをイエスさまに返したかったのでしょう。
 他の弟子たちから見たら愚かで無駄なことのように思えましたが、マリアが自分に対し、感謝のしるしを表し、一生懸命に奉仕しようとする思いを、イエスさまは大変喜ばれ、この女性の行為を大変価値のあるものと評価されたのです。


 私たちも気をつ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一生懸命に神さまに向かって奉仕をしている人を困らせるようなことをしてはなりません。それがどんな振る舞いであったとしても、そこに精一杯の、本当に真心があるならば、それをイエスさまが喜ばれるということを忘れずに、決して邪魔をしてはいけません。


 私たち人間の評価というのは色々で、人それぞれに評価基準を持っています。ですから、その基準に合わないと、「もったいないことをしている」とか「無駄なことをしている」とか、冷たい評価になってしまうことがあります。でも、私たちにとって大事なことは、イエスさまがどう思ってくださるかなのです。イエスさまがそれを喜んでくださるなら、それは善いことなのです。そこを私たちは見失わないように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ですから、私たちの奉仕も本当にイエスさまが喜ばれる奉仕であるのかどうか、ということです。人の評価を気にしての奉仕ではなく、イエスさまから「善いこと」と言ってもらえるような奉仕でなくてはなりません。


 そして、イエスさまは11節で「貧しい人々はいつもあなたがたと一緒にいるが、わたしはいつも一緒にいるわけではない。この人はわたしの体に香油を注いで、わたしを葬る準備をしてくれた」(11-12節)と言われています。それは、明らかに、自らの十字架の苦難を意識されており、これから十字架に架かる自分に勇気と慰めをくれたと言っておられるのです。
 この女性はイエスさまの埋葬の準備のために香油を注いだのではないでしょう。ただ、この女性はイエスさまに対する感謝と愛を示したかったのです。この香油は、この女性が何年もかけて自分の将来のために少しずつ蓄えて来たものです。自分にはこれしかないというものです。それを惜しみなくイエスさまに献げることによって感謝と愛を表しかったのです。この香油はこの女性の思いが一杯詰まっておりました。そして、この香油を注ぐことによって、彼女の思いが部屋中に広がったのです。


 彼女の思いは、確かにイエスさまに伝わり、イエスさまを慰めたでしょう。イエスさまはこの後、本当に死と向き合われます。十字架の苦しみを孤独の中で耐え忍ばれます。その前に、この女性の愚かな行為によって、イエスさまは深い慰めを経験なされているのです。


 13節です。「はっきり言っておく。世界中どこでも、この福音が宣べ伝えられる所では、この人のしたことも記念として語り伝えられるだろう。」(13節)
 「この福音が宣べ伝えられる所」、「この福音が」とイエスさまは言っておられます。「福音」と言いますと、イエスさまが私たちの罪の赦しのために十字架にお架かりになるほど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たという良い知らせ、それが「福音」だと理解していますが、イエスさまはここで、この女性の行為そのものが「福音」だと言われているのです。


 そして、この女性の行為とは、香油を惜しげもなくイエスさまの頭に注いだことではなく、彼女が自分に出来る最高の感謝と愛をイエスさまに献げたことなのです。それが「福音」だと。そのイエスさまとの愛の関係に生きることが記念とされる、永遠に覚えられると言うことを、イエスさまは弟子たちに伝えたかったのでしょう。


 神さまが私たち一人一人を愛されて、イエスさまもくださって、イエスさまが私たちの代わりに十字架に架かって死んでくださって、そこまでして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た。その愛に応えて生きていきたいと私たちが願うこと。そして、そのような思いを持ってイエスさまに仕えて行くこと、それが福音に生きるということです。
 まさにこの女性は、福音を体現しているのです。イエスさまに愛されたんです。この女性はイエスさまの愛に応えようと自分に出来る最善を尽くしました。香油を全部注ぎました。それが彼女のイエスさまに対する愛でした。


 「福音に生きる」または「信仰に生きる」と言っても良いんですが、それは何か、決まりを守ることでもないし、クリスチャンらしく振る舞うことでもありません。時々、私たちは信仰を誤解して、「人よりちゃんとしていなければ」とか、「決まりを一杯守らなければ」とか考え、それが信仰であるかのように考えます。
 しかし、一番大事なことは、イエスさまの愛に従って生きていきたい、イエスさまに全て献げて生きていきたいと願って、イエスさまに従うことなのです。それが信仰であり、その結果、「人よりちゃんとしている」とか、「決まりを一杯守っている」とかに見えるのかも知れませんが、それがイエスさまを喜ばせるのではないのです。イエスさまの愛に応えようとする姿、その信仰をイエスさまは喜ばれるのです。


【2026년 7월 26일 주일예배(요약판)】

   “어리석은 행동처럼 보이는 것 속에”
                             마태복음 26장 1~13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 모여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이틀 후면 예수님은 붙잡혀 십자가에 달리시게 됩니다. 그런 긴박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다니에 있는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고 계셨는데, 그 자리에서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 여인이 매우 값비싼 향유가 담긴 옥합을 가져와 예수님의 머리에 그 향유를 부은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를 보면 그 향유는 300데나리온이 넘는 값어치가 있었습니다. 한 번에 모두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큰돈이었습니다. 300데나리온은 당시 사람이 1~2년 정도 생활할 수 있는 금액이었으니,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제자들은 분노하며 말했습니다.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도 있었겠도다”(8절)
  제자들의 반응은 얼핏 보면 옳은 말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일을 기뻐하실 리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차라리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여인의 행동을 어리석고 쓸모없는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논리를 앞세워,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섬긴 이 여인을 비판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의 행동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자를 인을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10절)
  예수님은 “왜 이 여인을 괴롭히느냐”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의 태도와 말을 꾸짖으셨습니다. 제자들의 비난이 그 여인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는지를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시고 끝까지 지켜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요? 마태복음만 읽어서는 이유를 알기 어렵지만,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이 여인은 나사로와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은 은혜와, 죽었던 오빠 나사로를 다시 살려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자신이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을 예수님께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고 낭비처럼 보였지만, 예수님은 그녀가 감사와 사랑을 담아 최선을 다해 드린 그 마음을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을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이 점을 늘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진심으로 헌신하는 사람을 낙심시키거나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 행동이 우리 눈에는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그 안에 진실한 마음과 최선의 사랑이 담겨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기쁘게 받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헌신을 쉽게 판단하거나 가로막아서는 안 됩니다.


  사람마다 평가하는 기준은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아깝다”, “쓸데없는 일이다”라고 쉽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어떻게 보시느냐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그것이 바로 선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봉사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참 잘했다. 좋은 일을 하였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봉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나와 나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는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라”(11~12절)
  예수님은 이미 자신에게 다가올 십자가의 고난을 깊이 의식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의 행동을 통해 큰 위로와 용기를 얻으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이 여인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려는 의도로 향유를 부은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단지 예수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 향유는 아마도 오랜 세월 자신의 미래를 위해 조금씩 모아 온 가장 소중한 재산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예수님께 드림으로써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향유에는 그녀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향유를 붓는 순간 그 향기가 온 집 안에 퍼져 나가듯, 그녀의 사랑도 그 자리에 가득 퍼졌습니다.


  그녀의 진심은 분명 예수님께 전해졌고, 예수님께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곧 죽음과 마주하시고,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과 외로움을 홀로 감당하셔야 했습니다. 그 고난을 앞둔 순간,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어 보였던 이 여인의 행동은 예수님께 깊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13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13절)
  예수님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보통 복음이라고 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떠올립니다. 물론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동 또한 복음과 함께 기억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향유를 모두 부었다는 행동 자체가 아닙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감사와 사랑을 예수님께 드린 그 마음이 바로 복음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삶, 그것이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놀라운 사랑에 응답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복음 안에서 사는 삶입니다.
  이 여인은 바로 그 복음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에 응답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가장 귀한 향유를 아낌없이 모두 부었습니다. 그것이 그녀가 예수님께 드린 사랑이었습니다.


  '복음 안에서 산다', 또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단지 규칙을 잘 지키는 것도 아니고, 겉으로 그리스도인답게 보이려고 애쓰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때때로 신앙을 오해하여 ‘남들보다 더 바르게 살아야 한다’, ‘더 많은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의 본질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살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며 그분을 따르기를 원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그 결과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참 바르게 사는 사람’,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그 사랑에 응답하려는 마음, 바로 그 믿음을 예수님께서는 가장 기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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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日:2026年07月26日